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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호피지, 말부츠지

by 정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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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2 년 만에 두둥 나타난 것은 명산이던 동네 산이던 새순에서 푸름으로 자라 알록달록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 생 최고의 사치를 부리는 어느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지친 몸을 끌며 나의 베이스캠프에 막 도착했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달랑 2개 있는 방 중 침대 하나로 꽉 채운 침실로 날아올라 침대가 흔들리도록 요란스럽게 착지를 한다. 큰 대자로 뻗고 누워서 두 눈을 꼭 감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퍼질러 있다.

오늘은 특히나 더 힘든 날이었다.

가을이면 연례행사인 '운동회'가 새내기 선생의 일상을 마구마구 헤집고 다닌다.

이러다 그냥 잠이 들어서 자정에 눈을 뜨고 씻고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다시 구겨진다.

다음 날 아침 거울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아이가 팅팅 부은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이런 날들이 나무의 사치스러운 향연이 끝나고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본래의 울음을 우는 늦가을, 초겨울이 되어야 겨우 끝이 나는 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띵똥!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세요?"

"..............."

휭 바람소리만 난다.

누가 집을 잘못 찾았나? 장난으로 누르고 도망간 아이들인가?

다시 무거운 눈을 감는데,

"띵띵 똥똥"

벨소리도 기이하게 누른다.

뭐야? 물에 젖은 솜을 겨우 일으켜 문을 열었다.


'호피 무늬'

첫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호피무늬 원피스에 말부츠를 신고 사람 키만 한 캐리어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언니, 오랜만이야."

"어어어, 너 너 너. 이게 뭔 일이야."

버선발로 뛰어 나갔다는 말이 뭔 말인 지 알게 된 첫날이었다.

그녀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사춘기를 호되게 앓는 중에 집안 경제의 어려움으로 방황의 끝판왕을 벌이던 동생은 2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애가 사랑했던 남자에게 호되게 버림을 받고 힘들어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증발할 줄은 몰랐다.

나는 시골 깡촌에서 생활하고 동생은 부산에서 살았기에 마음만 보낼 뿐 실제로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애의 힘듦과 좌절과 상처를 제대로 헤아려 주지 못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SNS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상대가 연락을 끊으면 찾을 길이 없었다.

엄마와 나는 가슴에 납하나 달고 사는 세월이 무려 2년이었다.

그랬던 동생이 나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호피무늬 원피스와 말부츠를 신고, 엉덩이까지 덮는 흑단 같은 머릿결을 나부끼며 전쟁에서 승리한 여전사처럼......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냥 살아서, 그것도 화보에서 튀어나온 듯한 멋진 가을 여자가 되어서 등장한 것이 고맙고 장할 뿐이었다.

혼자 울었을 긴긴밤, 혼자 거닐었을 낯선 도시의 밤, 혼자 버텨냈을 숱은 시간들을 모두 뒤로 하고 호피무늬와 말부츠를 신고 화려하게 부활한 내 동생.

상처를 딛고 아픔을 치유하며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올랐다.

그 이후, 나는 가을만 되면 호피무늬와 말부츠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때부터 나의 호피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날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하게 각인되어 가을이면 호피무늬 옷을 꺼낸다.

동생과 달리 폼은 덜 나지만?

마음만은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내 동생을 보듯이 호피무늬 옷을 입는다.

말부츠는 몇 개 사놓았지만 숏다리의 비애로 자주 애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버리지도 못하고 긴 박스에 담긴 채 신발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사할 때마다 버리라는 주위의 성화에도 꿋꿋하게 버리지 않는 것은 말부츠가 동생 같기 때문이다.

아픈 청춘을 잘 이겨내고 돌아와 준 동생을 보듯이 말부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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