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로 건물주된 사연
요즘 알게 된 동네 친구가 내가 선생 출신이라는 걸 알고 첫마디가,
"야, 돈봉투 많이 받아서 부자 되었겠네."
헉!
이게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니 2 연타를 날린다.
"왜~우리 애들 국민학교 시절에 선생들에게 봉투 꽤나 갖다 바쳤잖아. "
어금니를 꽉 깨물고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고 한마디 했다.
"응, 교직 생활 45년 동안 5000원 봉투 딱 한 번 받아서 건물주 되었어. 그리고 껌 세 통 받아서 평생을 잘 씹었잖아"
돈봉투를 주려면 팔자를 고칠 정도의 억 소리나는 돈을 주면서 쥐어 박던지.
참 애먼 소리도 많이 들었던 그 때 그 시절.
최초이자 마지막 돈봉투 사건은 산을 4번이나 넘고 반쯤 넘은 기억 저편에서 일어났다.
유치원 겸직을 하던 그 해.
유치원 아이들과 2학년 아이들을 함께 거느리고 소풍을 갔다.
물론 유치원수당 반을 뚝 떼어가신 교감 선생님과의 동행이기에 가능했다.
떠오르는 해님도 한껏 부풀어 있는 소풍날 아침이 밝았다.
소풍 가방을 메고 터질듯한 웃음을 가득 담고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유치원을 전담하기로 했다.
매일 오후에 등원하다가 아침에 등원하려니 힘들었나 보다.
30분이나 먼저 와서 재잘거리는 2학년에 비해서 등원한 유아들의 숫자가 적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1명의 아이가 아직 오지 않았다.
안 온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20분이 지나서 아이의 손을 잡고 헐레벌떡 교문을 들어서는 엄마가 반가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이에게 달려갔다.
운동장 중간쯤에서 극적인 상봉을 했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해요. 지환이가 늦잠을 자서요. 아무리 두들겨 깨워도 안 일어나지 뭐예요."
"네, 지금이라도 왔으니 괜찮아요."
지환이 엄마의 손은 예고도 없이 개나리색으로 한껏 꾸민 내 점퍼 주머니에 쑥 들어왔다.
어, 하는 순간 빛의 속도로 냅다 교문으로 달려가 쌩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비비안 리가 울고 갈 지경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기에 얼떨결에 받고 말았다.
아이들을 인솔하고 소풍을 가는 내내 주머니가 신경 쓰였다.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장착한 듯 주머니에 손을 넣기가 꺼려졌다.
바깥에서 만져보니 봉투가 분명했다.
점심시간에 제각기 싸 온 도시락을 까먹고 삼삼오오 자유 시간을 갖고 있을 때 슬며시 뒤로 돌아 봉투를 열어 보았다. 5000원권 지폐 한 장이 무섭게 나를 쳐다 봤다.
누가 보기라도 하듯이 후다닥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둥글게 앉아 손수건을 놓고 가는 게임, 과자 따먹기 게임. 소풍의 백미인 '보물찾기'까지 재미있게 마쳤다.
이제 마지막 행사인 환경보호활동을 시작했다.
주위에 떨어진 휴지와 내가 만든 쓰레기를 고사리 손으로 주웠다.
쓰레기를 한 군데 모아놓고 불을 피워 다 태우고 오는 것이 소풍의 마무리였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그때는 당연한 절차였다.
교감선생님이 불을 붙이는 순간 귀신에 홀린 듯이 나는 만지기도 꺼려하던 봉투를 꺼내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 순간, 아! 이건 돈이잖아. 쓰레기가 아니잖아!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내가 무슨 뇌물 배척에 대한 고결하고 강직한 의도로 그 봉투를 불에 던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봉투를 그대로 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불쏘시개로 시원하게 던진 것이다.
이렇게 교직생활 중 유일했던 돈봉투는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당시 화폐 가치로 따지면 5만원 정도의 돈이 재로 변한 것이다.
처음 놀라고 절망한 것과는 달리 뭔지 모를 쾌감이 훅하고 가슴을 뜨겁게 했다.
차라리 잘 태워 버렸어. 아니면 나는 또 악마의 유혹에 머리카락을 얼마나 쥐어뜯었을지.
내가 청렴결백하게 돈봉투를 거절할 용기가 있었을까? 머리를 젓는다.
이런 타락한 초임을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