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의 추억
겨울이 오면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지 그 당시는 아주 고역이었다.
바로 '난로'이다.
나무 프레임의 창문은 삼베로 바람막이 정도밖에 안되니 교실이나 바깥이나 온도차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 시절은 삼한 사온을 야무지게 이행하는 착실한 자연의 법칙으로 지붕 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한겨울의 장식품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으른 행세도 버거운데 아이들 앞에 선 선생이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궂은일도 해내야만 했다.
그중의 극한 작업 중의 하나는 바로 '난로에 불 피우기'였다.
수은주가 초겨울을 알리면 학교 아저씨가 교실마다 난로를 설치해 주었다.
긴 연통을 연결하는 작업까지 있었으니 아저씨들의 노고도 만만치 않았다.
교실 한가운데에 주물로 만든 난로가 떡 버티고 있는 순간 나의 가슴도 턱 막혔다.
이제 이 난로에 불을 피워서 추위에 떠는 어린양들을 따뜻하게 해 줘야 하는 사명이 생긴 것이다.
도서실에서 지난 호 잡지책을 여러 권 선점해 놓는 일이 중요했다.
불쏘시개 역을 담당하는 마른 종이는 많을수록 좋았다.
발령받은 첫 해는 교실 온도 0도를 찍으면 장작을 나누어 주었다.
그 당시 아이들은 힘이 세고 학급일에 참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기에 앞다투어 장작을 받으러 가려는 아이들은 차고도 넘쳤다.
요즘 아이들에게 장작 받아 오라고 시키면 바로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받고, 아이들도 내가 왜 해야 하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할 것이다.
그다음은 내가 나설 차례이다.
작은 장작을 캠프 파이어 하듯이 장작을 쌓는다.
모아 둔 폐지에 불을 붙인 후 장작의 중앙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다.
불이 잘 붙지 않으면 아주 살살 부채질을 해 준다.
이때 재가 날리며 콧구멍에 재 테러를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숨을 안 쉴 수가 없으니 콧구멍이 굴뚝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이다.
처음 불이 붙을 때 매캐한 연기가 교실의 공기를 흐려 놓는다.
콜록콜록 재채기 소리와 함께 눈을 공격한 매연 때문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런 수고의 시간이 지나고 난로 안에서 불이 확 붙을 때 내 머릿속에도 전구 백 개가 동시에 켜진다.
이렇게 한 번 불이 붙기만 하면 동장군은 근처도 못 오고 우리의 교실은 따스한 봄날이 된다.
난로 위에 양은 도시락을 쌓아 놓고 쉬는 시간마다 위치를 바꾸어 주는 수고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점심시간을 따스함으로 채워 주기 위한 나의 사랑이다.
가끔 난로의 열기가 너무 세서 밥이 누룽지가 되는 부작용이 우리를 웃게 하였다.
우리를 따스하게 데워 준 책임을 다하고 전사한 회색빛 재를 치우는 것도 큰일이었다.
삽으로 재를 뜨서 양동이에 붓는 작업 중에 재가 날리고 머리카락이나 옷에 비듬처럼 쌓였다.
하지만 애송이 선생이 못 미더운 장정 같은 남학생들이 나를 지켜 주는 천사가 되어 주었다.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서로 나서는 녀석들 때문에 매번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다.
코를 찔찔 흘리면서 "가위바위보"를 매일 외치던 말썽쟁이 현석이, 무거운 재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버리고 온 괴력의 창민이,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의 위치를 바꾸어 주던 다정한 경순. 가끔 불이 잘 붙지 않으면 책받침으로 마구마구 부쳐 주어서 온 교실을 재로 뒤덮이게 한 열정의 민호. 장작을 받기 위해서 항상 1등으로 등교하던 츤데레 재영. 내 옷에 묻어 있던 재를 무심히 툭툭 털어주던 심쿵맨 원우. 동네의 폐지는 다 모아 온 듯 기적처럼 폐지를 제공하던 순애, 샛별.
모두 모두 잘 지내고 있지?
너의 날들도 난로처럼 따스하고 회색빛 재처럼 장렬하기를.
우리에게는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 난로가 있었기에 우리의 겨울은 결코 시리지 않았음을 기억하길.
그래서 때때로 삶의 혹한기를 지날 때라도 우리가 온 마음으로 피워 냈던 '난로'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는 유년 시절을 잊지 말길.
콧구멍이 굴뚝같았지만 마음만은 순백이었던 선생님이 간절히 빈다. 나와 같이 늙어 갈 제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