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처뿐인 굴욕

환경 미화 심사

by 정유스티나


교실의 앞면_요즘



발령 첫 해.

3월 1일 자로 발령을 받아서 첫 근무지에 부임하여 나와 1년 동안 생활할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벅찬 3월 초가 숨 가쁘게 지나면 넘어야 할 큰 산이 나의 시름을 깊게 한다.

"환경 미화 심사"

그 당시는 이렇게 이름 짓고 불렀다.

교실을 아름답게 꾸민 것을 심사한다는 뜻이다.

교실의 앞면은 최대한 간결하게, 뒷면은 아이들의 작품 위주로 꾸미기에 환경 정리가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뒷면은 테트리스급 쪼개기 작업이었다. 각종 부서별 코너, 독서 오름길, 생일판, 학습판, 그 외 교사의 취향대로 몇 개의 코너를 더 추가한 다음 아이들의 작품은 엄선해서 몇 장만 전시했다.

앞면은 또 어떤가? 학교 교육 목표를 위시하여 학급 교육 목표와 학급 규칙, 이 달의 행사, 학교 소식 등 주로 공적인 내용으로 빼곡하게 채웠다.

요즘은 '환경 정리'라는 용어로 불리며 '심사'는 빠졌다.

그런데 그 옛날에는 그야말로 '심사'였다.

교장, 교감 선생님을 필두로 전 직원이 함께 각 교실을 순방했다.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을 살피며 검지 손가락으로 창틀도 쓰윽 닦았다.

미처 닦지 못한 구석진 곳에서 먼지가 까맣게 묻어나면 교실 주인은 쥐구멍을 찾고 기세 등등한 관리자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심사표도 나누어 주어서 영역별로 상, 중, 하로 체크를 하였다.

특히 잘된 점과 보완할 점 등 교실의 환경을 품평하였다.

물론 모든 학교가 이렇게 잔인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겪은 초임지에서는 이렇게 심사를 했다.

최우수, 우수 등을 뽑으며 순위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의 1등과 꼴찌는 저절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렇기에 자존심과 자존감이 걸린 1년 농사의 첫 단추 끼우기였다.

그렇기에 교실을 공개하고 환경 정리 한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은 마치 발가벗긴 채 나를 평가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미흡한 점도 거리낌 없이 지적을 하였기에 초짜 교사의 긴장감은 더욱 높았다.


3월이지만 꽃샘추위로 인해 교실은 허허벌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경 정리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주말이 되었지만 본가로 가지 못했다.

엄마가 반찬거리를 싸서 오셨다. 그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주 6일 근무였기에 일요일을 온전하게 반납하고 엄마와 나는 환경정리에 돌입했다.

요즘처럼 문방구점에서 완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 정리의 유용한 팁을 주는 동영상 자료도 없었다.

온전히 나의 감각과 평소에 복도를 오가며 힐끗거리며 본 선배 선생님 교실의 완성품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전부였다.

교실 뒷 면의 큰 타이틀은 글씨를 좀 더 크게 하면서 입체감 있게 꾸미고 싶었다.

스티로폼에 밑 글씨를 쓴다. 이것도 요즘처럼 인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손글씨로 밑글씨를 완성한다.

그다음에는 스티로폼을 자르는 기구가 있었다.

기구라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조악한 나무로 틀을 만들어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줄을 아래위로 연결한다. 콘센트를 꽂으면 전류가 흐르고 뜨거워진 금속줄에 스티로폼을 갖다 대면 미세하게 녹으면서 원하는 모양을 도려낼 수 있다.

이 기구의 단점이라면 스티로폼 녹는 냄새가 지독하고 인체에 유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치명적인 결함은 손도 함께 따라 들어가서 손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업을 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우리 한글이 각도 있고 둥글기도 하기에 손과 함께 온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글자를 파내고 있었다.

"악!"

외마디 단말마를 외치며 엄마가 두 손을 움켜쥐었다.

'ㄹ' 자음자를 도려 내던 엄마의 손가락이 금속줄에 닿았던 것이다.

살타는 냄새가 교실을 진동하며 내 마음도 함께 타고 있었다.

엄마의 검지 손가락은 빨갛게 익어서 부풀어 올랐다.

수돗가로 달려가서 찬물로 씻으며 응급처치를 했다.

요즘처럼 약이 좋지 않았기에 보건실에 있는 요오드팅크, 일명 빨간약만 벌겋게 발랐다.

"나는 괜찮으니 너는 계속 환경 정리를 해."

이건 마치 이순신 장군의 명대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와 버금가는 희생과 감동이었다.

엄마의 손가락은 덧나서 꽤 오랫동안 고생했다.

이런 엄마의 부상으로 얼룩진 환경 정리 결과물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환경 정리 심사'의 날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굴욕을 맛보았다.

선배님들의 교실은 호텔급이라면 우리 교실은 여인숙급이었다.

겉모습은 천상 시골 아저씨 같은 선배 남자 선생님들의 솜씨가 이렇게 곱고 아기자기할 줄이야.

짠밥의 차이는 어마어마했고 세월은 그냥 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교육 경력 10년은 족히 넘는 선생님들은 평소에 별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나 꽉꽉 채운 완두콩이 된 것인지 내 눈을 의심했다.

"여백의 미를 많이 살렸네요."

칭찬인지 디스인지를 날리는 교감선생님의 눈길은 휑한 뒷면 게시판에 머물렀다.

덩달아 내 마음에는 차가운 북풍이 소리없이 불어제켜서 내 심장을 오그라지게 했다.

"차차 채워 나가면 되지."

사람 좋은 교장 선생님의 격려에 왈칵 눈물이 솟았던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이랬던 내가, 경력 10년 차에 최우수 환경정리 반으로 뽑혀서 다른 선생님들의 선진지 시찰지가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