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반납

당직근무의 애환과 추억

by 정유스티나

주 6일 근무.

토요일 1시 퇴근.

일요일은 황금일.

깡촌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대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날.

숨통이 트이는 날.

물고기가 물을 만나는 날.

그리운 가족을 만나는 날.

보고 싶은 친구와 수다 떠는 날.

피같이 소중한 일요일.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던 소인수 학교여서 근무하는 교사의 수도 적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학교를 지키는 당직 근무를 서야 했다.

그것도 한 달하고 보름 만에 순번이 돌아왔다.

같이 동거하던 선배가 집으로 가 버리면 혼자 남은 주말은 지옥 같았다.

그 지옥을 한 달 반 만에 만나야 하는 청춘이라니.

회색빛.


학기 중은 물론 방학 동안의 당직 근무는 더욱더 길고 힘들었다.

그 달디 단 방학의 3분의 1을 뚝 잘라 던져 버려야 했다.

방학 중 당직 근무는 업무의 연장이었다.

내가 맡은 도서실의 책을 정리하면서 폐기할 책을 골라내고 도서 대장을 정비하느라 먼지 속에서 살았다.

또 다른 업무인 비품 자료 관리 업무는 초임받는 딱 그해에 대대적인 실사를 보고해야 했다.

최소 10년은 묵었을 비품 자료대장에 실제로 사용하는 것과 폐기 및 훼손, 분실된 것들을 일일이 찾아서 실제 있는 자료만 대장에 기재하는 큰 작업이었다.

학교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모든 교실에 있는 비품을 일일이 조사하여 기재하며 비품자료 대장을 새로 작성해야 했다. 그것도 모두 수작업으로.

낮에는 조사하고 밤에는 대장을 썼다.

웃풍이 심한 방에서 밥상을 펼쳐 놓고 일을 하고 있으면 우리 엄마가 옆에서 말동무를 해 주셨다.

얼마 전에 엄마와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깜짝 놀랄 사실을 알았다.

"그때 그 방, 사람 하나 누울 정도만 따뜻했지 나머지는 완전 냉골이었다. 너를 따뜻한 곳에 자게 하고 나는 차가운 바닥에서 자는데 밤새도록 얼마나 춥던지 사시나무처럼 떨었잖아. 네가 신경 쓸까 봐 표시도 못 내고 당직 근무는 또 왜 그렇게 긴지. 1주일을 냉골에서 자고 집에 오면 며칠씩 몸살로 앓아 누었다. 아휴~그 시절 참 징해~"

나는 진짜 몰랐다.

몰랐다고 하면 끝인가?

엄마께 얼마나 죄송하던지 두 손을 꼭 잡아 드리며 눈물이 그렁그렁 툭 떨어졌다.

"엄마, 죄송해요. 나 참 눈치도 없고 이기적인 딸이었다. 그치?"




그 와중에도 간간이 기쁨도 있었다.

당직으로 집에 못 가기에 엄마가 보따리보따리 반찬을 싸서 오셨다.

국민학교 밖에 못 나오신 우리 엄마는 선생인 내가 자랑스러우셨다.

엄마와 같이 교무실에서 당직을 서면 내심 흐뭇해하는 엄마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아이고야, 나 국민핵교 댕길 때 울 선상님은 나에게만 심부름을 시키셨데이. 선상님 집에 가서 무슨 책을 받아 오라고 하는 심부름도 내가 완벽하게 잘 했데이. 그래서 그런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심부름을 시킨 것 보면 내가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똘똘했나벼."

늬예늬예.

우리 아버지와 엄마가 번갈아 가며 본인의 영특한 어린 시절을 기회만 되면 재탕 삼탕, 셀 수 없을 탕탕탕으로 우려 드셨기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운다.

배우지 못한 한을 이렇게나마 추억하며 쓰린 가슴을 달래신 것을 모르고 나는 귓등으로 들었다.

그렇게 동경하던 선생님이 된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지 이제는 알고도 남는다.

적막강산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텅 빈 교정을 지킬 때 옆에 있어 주신 우리 엄마의 사랑은 날려 보내지 않고 차곡차곡 나의 행복으로 쌓였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죽마고우이자 여고 동창생이던 친구가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을 달려왔다.

우리가 국민학교 꼬맹이 시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교무실의 풍경을 신기해했다.

"히야~운동장이 이렇게나 작았나? 책상과 걸상도 장난감 같네. 네가 여기서 폼도 잡고 애들도 잡고 논다고? 푸핫!"

"뒷목도 잡고 논다. 하하하"

아직 대학생이던 친구들의 눈에는 선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당직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이 웃기지만 부럽기도 했나 보다.

친구가 조공해 온 각종 과자를 부수면서 근황 토크로 입을 닫을 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주로 친구의 연애사나 이 자리에 없는 친구의 뒷담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하루해가 짧았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왜 빨리 감기를 하는지. 시곗바늘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시간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마음은 발 시린 강아지처럼 동동거렸다.

해가 저물고 친구들이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 내 마음도 함께 보내고 빈 껍데기만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걸어가던 끔찍한 공허함에 지금도 부르르 몸이 떨린다.

동백보다 더 붉고 동해 바다보다 더 시퍼렇던 청춘의 뜨거운 시간 중 많은 시간을 학교를 지키는 진돗개로 보낸 것이 아깝다.

남자 선생님들은 숙직 근무까지 했으니 참으로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남자 교사의 숙직 근무가 없어지고 일요일 당직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대신 '학교 당직 근무 기사'를 채용해서 숙직과 일요일 당직을 담당하고 있다.

휴일 없이 평일 16시간, 주말과 공휴일엔 24시간 동안 학교 안전을 책임지는 당직 근무 기사들의 처우 개선 등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당직 근무에서 해방된 일은 반가운 일이다.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다면 건강하셨던 엄마와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와 함께 당직 근무를 서고 싶다.

'상인은 끝이 없고 공무원은 끝이 있다'라며 국가 공무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 부모님과 함께 라면 석달 열흘도 당직 근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직1.jpg 당직 기사님_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