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번

내가 새해를 맞이할 경우의 수

by 정유스티나


.새해.png 해피 뉴 이어



30번.

많은가? 아님 적은가?

내가 새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경우의 수.

65번 동안 착실하게 새해를 맞이했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을 빼고 철나면서 새해를 보러 간 것도 손꼽을 정도로 미미하다.

1월 1일이 공휴일이다 보니 늘어지게 늦잠을 즐기는 좋은 기회였다.

중년이 되며 가끔 '해맞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관광버스에 몸을 싣기도 하고 자가용으로 해돋이 명소를 찾기도 했다.

"어제 뜬 해나 오늘 뜬 해나 그게 그 해지. 뭐 특별히 다른 것이 있나?"

세상 달관한 표정과 말투로 새해를 한껏 무시했다.

젊음에 대한 오만과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삶에 대한 무례였다.


이제는 선명하게 안다.

봄꽃이 피면 이 꽃을 내가 몇 번이나 볼까?

가을 낙엽이 물들면 내가 이 단풍을 몇 번이나 즐길까?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조차 땀으로 사우나할 여름이 나에게 얼마나 남아 있을까?

서릿발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설국도 낭만이라 여기는 햇수가 몇 번이나 될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뜨끔거렸기에 새로움을 밝히는 해가 뜨는 것이 이제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파 주의보가 내린 어제, 2025년도의 마지막 날이다.

정신이 홱 돌아올 강추위마저 사랑하게 되는 이 몹쓸 나이.

뒷모습을 보이는 내가 살아 낸 지난 날들 매일매일 떴을 365개의 해가 동글동글하게 내 마음을 밝힌다.

골목길을 돌아 설 때 황량하게 불어오던 마음속 삭풍에 주저앉고 싶었던 날, 아이들의 냉대와 무시로 구멍 뚫린 심장이 아파서 가슴을 부여 안던 날, 정주고 마음 줬던 오랜 친구의 무심한 화살에 맞아 피가 나던 갈바람 을씨년스럽던 어느 날도 있었지만.

365번 열고 닫았던 하루의 문을 여느 때와 같지 않게 다사다난한 마음으로 닫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떴다.

어제와 같은 해 같지만 절대 같지 않은 오늘의 해이다.

바로 새해가 밝았다.

가장 먼저 양가 어머니의 무병장수와 구구팔팔 하게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시다가 주무시는 듯이 하느님 얼굴 뵈옵게 하는 죽음복을 예비하여 주십사 기도로 시작한다. 기도 꼬리에 우리 부부도 같은 죽음복을 미리 마련해 주시길 간구한다.

올해는 거창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을 것이다.

평소 하던 생활상의 루틴을 계속 지켜 나가면서 읽고, 사유하고, 쓰는 소소한 일상을 누릴 것이다.

다만 결심은 한다.

헤어질 결심. 만날 결심.

나의 악습과의 이별, 인간관계에 연연해하는 갈구하는 습관과의 이별, 특히 가족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아파하는 일련의 쳇바퀴로부터의 이별, 오랜 교직 생활을 놓지 못하는 미련과의 이별.

도전 같은 만날 결심은 '일기 쓰기'와 '고전 읽기'이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별스럽지도 않은 일상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자꾸만 무너지고 슬퍼지는 마음을 곧추 세우기 위한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수단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어렵고 지루하고 어쩌면 곰팡내 나는 글일지라도 고전이 답이라고 외친 고명환 작가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그래, 고전을 읽으면 흔들리는 마음의 파문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하는 수련의 의미로 고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심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서 고전 읽기를 함께 하는 독서모임이 있기에 신청했다.

그 자체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제 나에게 얼마나 많은 새해를 맞이할 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일단 나의 목표는 30번이다.

그냥저냥 세월만 죽이는 횟수가 아니라 '일신우일신'하며 매일매일 새로워지리라.

꿈꿀 수 있고 열정이 있는 한 나는 여전히 현역이고 늙지 않을 것이다.

거창한 계획은 안 세운다고 해 놓고 언행 불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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