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장미의 상관관계

밤에 피는 장미

by 정유스티나

나는 밤에 피는 장미였다.

여기서 장미라고 함은 그냥 아리따운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실제 장미처럼 화려하고 뷰티풀 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꽃이 밤에 핀다고?

혹시 하는 일이?......

많은 상상과 억측이 난무하기 전에 이실직고한다.

나는 야행동물이었다.


30대에서 40대를 아우러진 10여 년 동안 기면증이라고 할 정도로 낮에 잠이 쏟아졌다.

우선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출근은 해야겠기에 비몽사몽 눈곱만 떼고 운전대를 잡는다.

운전거리가 10분 내였기에 망정이지 장거리 운전이었다면 진즉에 황천길 기차를 탔을지도 모른다.

수업하는 중에도 계속 머릿속은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아이들만의 활동이 시작되면 눈꺼풀이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간혹 아이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깜빡깜빡 졸기도 했다.

어찌어찌 수업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의 졸음은 거의 살인적이었다.

이렇게 졸음과의 사투로 하루를 보내니 기분이 상쾌할 리가 없다.

늘 만성피로와 우울감이 나의 심신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다른 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않을 정도지만 나는 심하게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그런데, 퇴근 후 저녁이 오고 밤이 깊어질수록 내몸 구석구석 세포가 깨어났다.

새들새들 시던 상추를 물에 담그면 싱싱하게 살아나듯이 정신이 명료해지고 몸뚱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만의 시간이 펼쳐졌다.

집안 일과 아이들 돌보기는 기본이고 교재 연구나 읽어야 할 책도 머리에 들어왔다.

일상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지인들과의 여행길에서도 그랬다.

낮시간에는 맥을 못 추니 관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너무 피곤해서 나 혼자 버스에 남아 잠을 잔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쌩했다.

"참, 당신은 밤에 피는 장미구나."

밤이 되면 이슬 먹은 장미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나의 생체 바이오리듬이 원망스럽다.

모두 지쳐 나가떨어져 쿨쿨 잠을 자니 나와 놀아 줄 사람이 없다.

밤에 피면 뭐 해? 나 홀로 피는 걸?

이런 증상은 겨울이면 더욱더 심해졌다.

일조량이 적어 햇빛을 많이 못 쬐니 우울감이 몇 스푼 더해졌다.

밤과 낮에 따라 심리 상태의 온도차가 너무 컸다.

낮에는 더 시들시들하고 컨디션은 땅굴을 팠다.

밤이면 지하로 내려간 깊이만큼 반대급부로 텐션이 올라가서 쓸데없이 에너지가 넘쳤다.

우주의 질서에 역행하는 듯한 나의 생체리듬을 그때는 납득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육아와 살림살이만 해도 버거운 체력에 직장 생활마저 하려니 나의 능력치를 벗어난 아우성이었다.

타고나기를 약골 체질이었고 모든 것이 부실한 식단에다 입까지 짧았다.

영양실조라는 낯 뜨거운 진단을 내려도 될 것 같이 허약했다.

의, 식, 주 중에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식'이었다.

주, 의, 식.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배열이었다.

먹는 것을 밝히거나 지나치게 식탐이 많은 사람을 살짝 경멸하였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형이하학적으로 나의 삶에 투영한 것이다.

감각적, 육체적, 물질적 쾌락보다 지적활동, 예술 감상, 도덕적 행위가 더 가치 있다는 J.S. 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말을 신봉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지금 나는 식, 의, 주로 바뀌었다.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단언을 믿는다.

음식이 보약이고 오늘 내가 먹는 것이 내일의 건강을 결정짓는다.

한 끼 건너뛰면 평생 다시는 그 한 끼를 찾아 먹을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그것도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로 최소한의 첨가물을 사용하여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지키는 요리를 한다.

먹는 것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면서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제일 먼저 피부가 윤이 나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밤낮으로 피어 있는 장미꽃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수선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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