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바람이 분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혹한기에.

by 온오프

나는 M을 사랑했다.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정말 그만큼의 사랑이었다. M도 나를 사랑했다. 내 지저분한 모습까지 다 아름답다며 나를 감싸 안았고, 나의 단점마저도 모두 장점이라 불러 주었다. M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갔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비추며 함께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M을 울게 하기도, 웃게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감정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진한 사랑을 했다.

추운 겨울을 시작으로 우리의 첫 만남은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한여름에 완성되었다. 긴 여정을 함께 지나 조금 더 단단해진 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 새로운 사랑으로 시작되었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게 들리는 다정한 목소리는 그 어떤 노래소리보다 아름다웠다. 특히, 나는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를 들을때마다 세상의 온기가 다 내곁에 맴도는것 처럼 따스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와도, 그다음 계절이 다시 찾아와도 함께한 1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새겼다. 휴대폰의 용량을 초과할 만큼 수십만 장의 사진이 쌓였고, 그 안의 우리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M의 모든 행복에 내가 있었고, 나의 모든 행복에 M이 함께였다. 마치 우리 둘만으로도 이 세계가 충분한 것처럼,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이.

그러던 어느 날, 한없이 나를 향하던 그 사랑이, 그 눈빛이 더는 내게 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 딱 그 느낌이었다. 이제 막 가을이 시작된 참이었는데, 내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아직 낙엽이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아직 겨울이 오기엔 이른데, 내 마음은 벌써 얼어붙기 시작했다. 마치 계절이 하나 어긋난 것처럼, 나만 혼자 혹한기의 문턱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 따뜻한 품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사랑은 내 전부였고,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 주던 우주였으니까. 그동안 받았던 맹목적인 사랑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더 욕심이 났다. 아주 조금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눈빛도, 손길도, 나를 부르던 그 다정한 목소리까지도 단 한순간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처절하게 사랑을 갈구했다. 어떻게든, 무슨 일이 있어도 M의 사랑을 다시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빨갛게 물든 단풍잎을 하나하나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한가득 품에 안아 M에게 건넸다. 기분이 좋아질 만큼 달콤한 사탕을 내밀기도 하고, 올망졸망 피어 있던 꽃 한 송이를 꺾어 선물했다. M은 기뻐했다. 나는 기뻐하는 M이 좋았다. 오늘보다 내일을, 매일을 함께 행복하고 싶었지만 우리 둘만 함께일 수는 없었다. M에게는 나도 있었고, 또 다른 사랑도 있었다.

아팠다. 내 손에 꺾여진 그 꽃도 아팠겠지. 함께 피어 있던 녀석들과 헤어지는 그 마음이, 그 줄기 속에서 오래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아픔 따위는 돌아볼 수 없었다. 그저 M에게 닿고 싶었으니까. 꽃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었던 그 욕심이, 어쩌면 내가 받아야 할 벌이었을까.

환하게 웃는, 햇살 같은 그 미소를 향해 와락 달려가 안기려 했지만 M은 나를 지나쳤다. 마치 그 품이 이미 다른 온기로 채워져 있는 사람처럼.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건네는 선물에도, 내가 건네는 마음에도, M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에도 그저 잠깐의 시선만이 머물렀다. 그 무심한 온도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오롯이 M과 나만이 함께하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 우리 둘만 함께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시간을 함께 지나왔고, 지나온 시간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M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S를 사랑했다. 내 전부를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고, 나아가 내 목숨마저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 S도 나를 사랑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얼굴에도 웃어 주었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그대로 품어 주었다. S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 했고, 자꾸만 더 잘하고 싶게 만들었다. 내가 자주 조급해진 것도, 이 서툰 마음으로는 내 사랑이 너에게 다 닿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를 안았던 찬란한 그날을 시작으로, 함께 지나온 모든 계절들이 눈부시게 행복했다. 그 행복이 나만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행복이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나는 내 전부를 오로지 너에게만 쓰고 있었다. 내 시간도, 내 생각도, 내 마음도 모두 너에게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너의 숨결 하나, 손끝의 온기 하나에 내 하루의 온도가 달라질 만큼.

그러나 어느 날, 하나의 책임이 더 생겼다. 아주 작고, 아주 연약한 또 하나의 온기였다. 나는 S에게도 여전히 마음을 건네고 있었지만, 그 사랑은 이전처럼 온전히 닿지 않는 듯했다. 오롯이 둘만 보내던 시간들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우리는 함께였지만, 우리만이 함께할 수 없었다. S에게 그것이 매우 큰 의미인 것 같다. 우리 둘만이 함께할 수 없음에 S는 서서히 시들어갔다.

내 품에서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났던 S는 점점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에게 수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유 없이 목놓아 울어 버리기도 했다. 그 어떤 모습 앞에서도 나는 S를 향해 늘 환하게 웃어 보이려고 애썼다. 내 사랑이, 적어도 이 얼굴 위에라도 전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걸 보면서도 나는 선뜻 팔을 벌릴 수 없었다. 너를 밀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미 이 품 안에 또 하나의 온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건네는 단풍잎과 사탕과 꽃이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은 늘 네가 원하는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나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사랑을 쏟아부었다. 더 많이 애쓰고, 더 많이 주려고 했다. S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속삭였다. 하루 온종일 모든 것을 건네고도, 내가 잠시 등을 돌린 그 순간 하나로 S는 쉽게 무너져 내렸다. 부단히 애쓰는 내 마음 옆에 쌓여 가는 S의 서운함을 보며, 나의 마음에도 조용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네가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울며 나를 시험하듯 바라볼 때마다 나는 흔들렸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것이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잃어버린 온기를 되찾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나는 그 요청에 이전처럼 응답할 수 없었다. 두 개의 심장을 동시에 지키는 일은, 하나의 사랑을 온전히 쏟는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고도 고된 일이었으니까.

이것이 우리의 혹한기였다. 끝난 줄 알았던 겨울이, 다른 이름으로 다시 불어오는 계절. 우리는 매서운 바람 앞에서 몇 번이고 무너지고 또 일어섰다. 그러나 이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가족이라는 형태로 묶인 우리는 결국 서로의 옷깃을 여미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추위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으로,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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