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롤러코스터
이 풍진 세상을 온몸으로 살다 보니 나의 감정은 특정 감정에 증폭되고 상대적으로 나머지 감정은 축소되었다. 희노노노애애애락이었는데 이제는 희희노애락락락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나의 하루는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행복도가 결정된다. 그러기에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은 심신을 닦는 수양이자 인격의 바로미터이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고 평화로워진다는 말은 개개인의 경우의 수이다.
머리가 희끗할수록 사고는 편협해지고 속은 좁아지며 나이로 찍어 누르려는 권위만 느는 소위 '꼰대'가 되기 쉽다. 그렇기에 늘 깨어 경계하고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며 노욕만 가득한 늙은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기품 있고 우아하게 물들어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야 한다.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선생은 있다. 앞서 생을 산 사람_선생_이 되고 싶다.
굳이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나의 말과 행동이 향기로우면 그 향기는 천리를 갈 것이다.
희희락락.
눈물 없던 어린 시절에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너는 세상 걱정이 없는 아이 같다는 친구의 말에 살짝 빈정이 상했다.
나도 나름 고뇌와 번민의 시간이 있다고!
칠렐레 팔렐레 머리가 텅 빈 아이처럼 보이는 것 같아 싫었다.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잘못된 반응이었다.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난 머리가 순백인 청소년기를 대체로 '희히락락'한 것은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
노노애애.
천직의 소명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고 의미를 부여해도 밥벌이의 연장선이었다.
세상의 부조리와 현장의 고달픔에 직면하다 보니 뜨거운 피가 나의 감정을 자꾸만 '노노애애'하게 만들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12.12사태가 발생하여 전국이 비상계엄령으로 얼어붙었다.
대학은 이미 상아탑의 기능을 상실하고 군홧발과 최루탄으로 얼룩졌다.
많은 학생들이 현시국을 규탄하며 데모와 시위로 들끓었고 끌려가고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용기가 없거나 각자의 사정으로 비록 최전방에 뛰어들지는 못한다고 청춘의 피가 식은 것은 아니었다.
연일 공포와 분노와 불안으로 지새우며 나의 감정은 노노노애애애.
발령을 받아 선생으로 교단에 섰지만 모든 게 서툴러서 안갯속을 걷는 중이었다.
그 당시의 관리자들은 왜 그렇게나 완고하고 부조리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물론 그 반대의 관리자들도 계시겠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가녀린 새와 같은 초임에게 조금 가혹했다.
다른 교사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던져 주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기를 하나 유튜버가 있기를 하나.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소 뒷걸음치다 얻어걸리는 내가 지도한 아이들의 수상에 기뻐하는 것도 순간 표창장은 나의 직속 부장님의 이름으로 하달되었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뗏놈이 챙긴 것이다.
혼란스러운 시국과 교육 현장에서의 부조리와 권위로 청춘의 색깔은 회색빛이었던 그 시절, 나의 감정은 '노노애애'
희희노애애락락락
지금 나는 화양연화를 맞이하고 있다.
한 직장에서 평생의 발자국을 남겼고 이제 숙제를 잘 끝낸 학생이다.
고생 많았다. 토닥토닥.
그 자체로만 해도 다시 눈물 없던 그 시절 '희희락락'이 나에게 찾아왔다.
인간이기에 가끔은 '노'와 '애'도 놀러 오겠지만 뒤 이어 오는 '락락락'의 쓰나미에 맥을 못 춘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서늘한 허망함에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 온 가족에게 건강의 축복을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언젠가 병원 벽면에 크게 붙어 있던 글이 지금 가장 절절하게 폐부를 찌른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삶은 행복한 삶이다.
나는 내일이 기대된다.
온전하게 주어진 나의 시간과 자유를 원 없이 누리고 즐길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도 되겠지.
이제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혼내지 않겠지.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봐도 바쁜 일이 있겠지.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봐도 아픈 기억을 갖고 사는 저 사람 참 불쌍하다.
내가 멀리 하고 싶은 사람이 나를 먼저 버릴 때도 아휴, 참 다행이야 내 사정 아시는 신께서 교통정리해 주셨구나.
이쯤 되면 하산각이고 소위 도사가 된 것 아닌가.
이제는 이해 못 할 사람도, 분노할 일도, 투덜댈 시간도 없다.
이런 내가 조금 마음에 든다.
삶의 굽이굽이 맞이했던 수많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멀미 나도록 잘 탔다고 칭찬해 주는 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