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티끌, 티눈

다시 찾은 걷는 기쁨

by 정유스티나
발바닥.jpg 불쌍한 내 발



평생 잘 써먹던 발이 몇 년 전부터 탈이 났다.

처음에는 굳은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 만큼 아팠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하다가 칼로 도려 내듯이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이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왼쪽 발바닥을 장악한 묵직한 통증에 걷는 것이 두려웠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무의식이던 의식적이던 왼발을 딛기가 꺼려지니 오른발에 힘이 많이 실렸다.

그래서 오른쪽 고관절의 삐걱거림과 둔탁한 아픔이 나의 일상을 더 힘들게 했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날 때면 나는 한바탕 혼자만의 사투를 치렀다.

오른쪽 고관절과 엉덩이 부분이 소리를 지를 만큼 묵직하게 아팠기에 한 번에 벌떡 일어나지를 못했다.

두드리고 돌리고 겨우겨우 달래서 일어나면 관절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은 몇 분 동안 해야 겨우 발을 뗄 수 있었다.

이런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도 기상과 함께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목적보다 너무 아픈 고관절을 풀어 주어야 하루를 살 수 있었다.

발가락을 오므려서라도 1일 만보 이상은 꼭 채웠다. 그뿐만 아니라 러닝도 꽤 오랜 시간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독종이다. 그럴수록 내 발바닥을 침범한 못된 그 녀석을 더욱더 깊이깊이 뿌리 박히게 한 것이다.

캐시워크와 손목닥터에 쌓이는 캐시때문만은 아니었다.

눕죽걷살!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신조어가 나의 의식에 들어왔고 나의 행동을 지배했다.

고통도 지속되면 습관이 되고 간혹 잊기도 하며 적응한다.

무엇보다 병원에 가기가 너무 싫고 무섭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발바닥에 자리 잡은 그놈은 세력을 확장하여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일상생활마저 힘든 상태가 되었다. 참으로 미련곰탱이다.

우리 엄마나 가족들한테는 조금만 아프면 빨리빨리 병원 가서 고쳐야 고생 안 하고 돈도 덜 든다고 협박을 하면서 정작 나는 미룰 때까지, 아니 죽기 일보 직전까지 뺑소니쳤다.

병원에 가니 짐작대로 '티눈'이고 수술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진료나 보려고 갔다가 수술대에 뒤집어 누웠다.

발바닥이니 뒤집어 누울 수밖에 없었으니 이 또한 공포였다.

유난히 겁이 많은 나는 사시나무 떨듯이 바들바들 떨었다.

"아이고, 아기 안 낳으셨어요? 이게 뭐가 무섭다고 그러세요?"

의사의 말에 울컥했다.

'아이는 마취해서 제왕절개했기 때문에 암 것도 모르고 낳았거든요?'

푹 들어오는 주삿바늘은 원초적 말단 신경을 짓누르고 섬광 같은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아, 아, 악!

세 마디로 마취는 끝났다.

공포에 비하면 시간이 워낙 짧았기에 고통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레 겁을 먹고 심장이 쪼그라든 것이 민망했다.

'에휴, 이 정도로 이리도 공포스러우면 진짜 큰 병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난 공포에 질식사하겠다.'

다시 한번 건강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으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악!

잠시 방심한 틈에 다시 한번 빛의 속도로 고통이 훑고 지나갔다.

마취가 덜 된 것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생각보다 더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마취를 얕게 한 것이었다.

아파요!

"네, 마취 좀 더 할게요."

자기 살 아니라고 의사는 아주 평화롭게 이야기한다.

'우쒸, 처음부터 마취를 제대로 했어야지.'

속으로만 입이 댓발 나왔다.

장고 끝에 내린 수술에 비해서 너무나 짧은 시간에 처치가 끝났다.

아이 낳은 고통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이 수술을 왜 이리 미루었는지 내 머리를 쥐어박는다.

지혈을 한 후 수술 부위를 보니 분화구 하나가 뻥 뚫려 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내려갔다.

시작이 반이 아니라 끝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티끌이 된 티눈과의 동거는 이렇게 막이 내렸고, 몇 년 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그 녀석과의 이별은 통쾌하기만 했다.

새해에 몇 년간 나를 고통에 밀어 넣은 그 녀석을 날려 버리고 산뜻하게 출발하게 되어서 기쁘다.

그동안 접어 놓았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에 대한 꿈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다시는 두 발이 무법자들의 침입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아끼고 보살펴야겠다.

'티눈, 영원히 안녕.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티눈.jpg 다시 찾은 자유_걷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