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봄

새 학기를 맞이하는 흔한 자세

by 정유스티나



봄4.jpg 입맞춤인 듯 입맞춤 아닌?



'봄'

나직이 소리 내면 입술이 한껏 오므라들어 무엇에게든 입술을 갖다 대고 싶다.

메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막 눈을 틔운 꽃눈에게,

지각변동이나 하듯이 힘차게 얼굴을 들이미는 꼬물이 새싹에게,

잠깐의 볕뉘에 철없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저 혼자 흥겨운 개나리에게도.

만물이 소생하고 대지가 기지개 켜며 하릴없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약동의 계절, '봄'이 아닌가.


이렇게 좋은 '봄'이 두 주먹 꽉 쥐고 어금니 앙 다물며 결전을 치르는 전사처럼 나에게 또 온다.

사랑스러운 '봄'의 얼굴을 마냥 반가워할 여유도 없이 종종거리며 반쯤 넋이 나간 채 나에게 또 온다.

'올해는 어떤 아이들과 만날까?'

두려움과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의 아이들과 애들보다 더 많이 흔들리는 나의 눈길이 엉퀴며 새롭게 만난다.

우리는 모두 은밀한 탐색전을 펼친다.

아이들도 슬쩍 간을 보며 1년을 어떤 자세로 처신해야 할지는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1년 농사를 알차면서 좀 더 수월하게 짓기 위한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흠, 우리 선생님. 마음이 여리고 정에 약한 것 보니 조금 만만하겠어. 그렇다면 나도 그에 맞게 진상을 좀 더 부려볼 수 있겠는걸?


아이들에게 이렇게 비치는 순간 통제력은 떨어지고 교사의 권위와 말발은 아이들 발바닥밑으로 떨어진다.

숨 막히는 물밑 탐색전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지능적이며 치밀하게 진행된다.

삐딱한 자세로 앉아도 보고, 수업 진행과 하등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걸 뻔히 알면서 내뱉는 허튼소리, 앞에 서 있는 교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좌담회 하듯이 왁자지껄 떠들어 재끼기도 하면서.

앙큼하고 종종은 섬뜩할 정도의 도발에 대한 교사의 응전을 면밀하게 실험한다.

경력이 짧은 새내기 선생님들은 당혹함과 함께 두려움으로 움츠러든다.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나하나 참고 지나가면 백일이 편하다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 속이 곪아 터져 정신적 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지경에 오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추천하지 않는다.

나의 초짜 시절에 만난 아이들은 순수했기에 선생님 말이 법이었다.

그렇기에 대체로 평화롭고 행복한 '봄'을 맞이했던 좋은 기억도 있다.

10년 20년 30년 시간이 쌓이면서 세월 따라 모든 것이 변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들만 변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내공도 탄탄해졌다는 것을 너희들은 몰랐지?


'초전박살'

나에게 도전하는 아이들과 치르는 전면전에서 쓰는 전법이다.


흠, 우리 선생님. 한 성격 하시겠는걸? 까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으니 진작에 꼬리를 내리고 죽은 듯이 살아야겠어.


아이들의 머리에 콱 박히도록 소위 얼음장같이 차갑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장착하고 잘못에 대한 선처 따위는 없다. 물론 이런 위장술은 학기 초 기강 확립 기간에만 하는 한정판이다.

꼼꼼하게 규칙과 벌칙을 작성하는 것에서부터 작전은 시작된다.

이 작업에 1년 농사의 흥망이 달려 있기에 신중하게 생각하여 아주 디테일하며 꼼꼼하게 작성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가 3번 반복되면 교실 뒤로 나가서 서서 공부하기.

거기에서도 반성하지 않고 수업을 방해하면 쉬는 시간 반납하고 반성문 쓰기.

반성문 3장이면 각종 학급 행사에서의 활동에 제약이 있고 상품 수여는 금지됨.

거기에서도 반성하지 않으면 부모님께 전화 및 상담 요청.

모든 위법 행위가 반복되면 벌점도 함께 올라가는 가중처벌이 있음.


요즘 아이들은 교사보다 부모님을 더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말 안 들으면 선생님께 이른다고 협박했다면 요즘에는 학교에서 말 안 들으면 부모님께 알린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학교 선생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어야 하지만 만만한 상대가 되어도 안된다.

아이들은 선생과 친밀한 유대감을 갖고 편하게 대해 주면 공감하고 소통하는 선기능과 함께 선을 넘는 무례함으로 열패감을 안겨 주기에 수위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제일 힘든 포인트이다.


친구 도와주면 1점, 숙제 잘해 오면 1점, 청소 잘하면 1점, 급식 잘 먹으면 1점. 전담 선생님께 잘함 획득하면 1점. 독서 오름길 목표달성할 때마다 1점, 기타 등등

10점 채우면 스티커와 함께 소소한 간식과 함께 쉬는 시간에 바깥놀이 허용.

반 전체가 목표 점수 도달하면 체육시간에 원하는 활동 허용.


채찍과 당근을 함께 주며 스스로 본인의 행동을 자제하고 수정하는 근육을 키운다.

이 모든 작업이 '봄' 새 학기 3월 한 달 내에 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그 시기를 놓치고 우쭈쭈 하다 보면 아이들은 내 머리 위에 올라가서 상투를 잡고 흔든다.

그 이후에 잡으려고 하면 제법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미묘한 반발심으로 끌려 오지 않는다.

먼저 본심과 달리 악역을 담당한 후 서로에게 적응하고 상대의 본심을 느낀 후에 서서히 착한 역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지난 45년의 '봄'이 또 '봄'이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온다고 했듯이 백수 생활 5일 차인 올해는 어쩐지 진정한 '봄'을 맞이할 것 같은 들뜸과 함께 휘리릭 내 몸을 관통하는 헛헛함에 역시 또 '봄'이 될 것 같은 딱 그날, '봄'이다.



또봄.jpg 새싹 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