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설레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by 봄날의꽃잎


봄이 오면 사람들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겨울 동안 두껍게 입었던 옷을 벗고

옷장은 밝은 색으로 채워진다.

베이지색 코트, 연분홍 가디건,

하늘색 셔츠, 파스텔 색 옷들이 하나둘 걸린다.

괜히 기분도 밝아져 어디든 나가 걷고 싶어진다.

햇살 좋은 날 커피 한 잔 들고

꽃이 피는 길을 걸어보고 싶어지는 계절.


나에게도 봄은 늘 그런 계절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봄은 조금 다르다.

갱년기가 찾아온 나에게

봄은 더 이상 설렘의 계절이 아니다.


며칠 전 옷장을 열었다.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옷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작년 봄에 잘 입던 옷을 하나 꺼내 입어봤다.

“이거 작년에 참 잘 입었는데.”

그런데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다.

“어… 왜 이러지?”

숨을 참고 배를 집어넣고 다시 한 번 올려본다.

그래도 올라가지 않는다

손이 멈춘다.

괜히 옷에게 화를 내듯

지퍼를 몇 번 더 잡아당겨 본다.

“아니… 작년에 입던 옷인데…”

다른 옷을 꺼내 입어본다.

또 다른 옷을 입어본다.

결과는 똑같다.

옷들이 다 작아졌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나를 바라본다.

어깨도 배도 허리도

어딘가 조금씩 낯설다.

“내가 언제 이렇게 됐지…”

그 순간 괜히 서러워진다.


몸은 이유 없이 붓고

밤에는 잠이 깊이 들지 않고

갑자기 더웠다가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사소한 말에도 괜히 짜증이 올라오고

아무 일도 아닌데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나 왜 이래…”

혼잣말이 자꾸 늘어난다.


마당에 매화꽃이 피어 있었다.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하얗고 연분홍의 매화들이

봄의 시작을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매화를 보며

봄이 왔다며 웃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봄은 시작됐는데 내 마음에는

아직 겨울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전의 나는

갱년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지금 생각하면 참 모르는 말이었다.

몸이 먼저 변하고 마음이 뒤따라 흔들리고

예전의 나와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

이런 것이 갱년기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2026년 봄은 잔혹하다.


하지만 매화꽃을 한참 바라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화는 겨울 끝자락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아직 바람이 차고, 아직 공기가 서늘한데도

조용히 꽃을 피운다.


어쩌면

나도 그런 봄을 지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몸이 낯설고 마음이 흔들리고

괜히 화가 나고 괜히 서러워지는 봄.

그래도 이 계절이 지나면

나에게도 다시 조금은 가벼운 옷을 입고

햇살 아래를 걷고 싶어지는

그런 봄이 다시 오겠지.


지금의 나는 그저 이 봄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