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에게 가는 중이다

꽃피는 봄이 모두에게 찾아오길.

by 느리미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햇살이 따사로워질 무렵,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아직 시린 바람이 불었지만, 나는 봄처럼 따스한 인생의 계절을 꿈꾸며 브런치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불혹에 들어서도 청춘에나 감당할 법한 일들이 종종 휘몰아치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쓰면서 봄을 기대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억지로 애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글쓰기를 꽤나 좋아한다. 훌륭한 글은 아니지만, 어떤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글은 아니지만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삶의 봄을 찾는다.


그렇다.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봄에게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봄이 3월의 봄과 함께 만났다. '봄에는 꽃씨를 뿌려야만 해' 매거진 공동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훌륭한 작가님들과 감히 함께 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가 내게 어울릴까 걱정이 따른다.


2026년 봄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새싹 틔우는 푸릇한 이야기일까. 길가에 핀 봄꽃처럼 알록달록한 이야기일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나는 이야기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설렘 뒤에는 외면하기 어려운 소식도 들려온다. 2026년의 봄은 비극적인 전쟁 소식으로 물들고 있다.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겨울바람이 매섭게 쳐들이는 듯하다.


오늘의 내가, 시린 겨울바람을 등지고 봄을 찾는 중이라 하지만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그들의 비극과 비교할 수 있으랴. 슬픔과 연민이 느껴진다. 왜 인간의 삶에서 고통은 끊이지 않는 걸까. 봄이 무슨 소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은 봄을 기다린다. 우는 자들은 웃는 날을 기다리고, 재를 뒤집어쓴 자들은 화관을 쓸 날을 기다린다. 행복한 봄, 감사한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인간의 손에 의해 훼손되어 병든 자연도 미미한 생명력을 힘껏 발휘하여 스스로 치유해 가듯이, 인간에 의해 고통받는 인간도 미미한 생명력을 붙들고 스스로를 치유해 간다고 믿는다.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선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찢어지고 피가 나는 상처에 진물이 나오는 것은 회복되려는 자연의 법칙에 의한 것이다. 이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상처의 진물처럼, 함께 울어준다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전쟁 중에 맞이한 봄의 계절이 무색하게 느껴지지만,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어서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작디작은 나라는 사람 또한 그 봄을 찾기 위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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