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씁니다.

입학, 그 설렘과 두려움

by 정유스티나
쌍둥이의 행복한 등굣길



내가 학교 생활의 끝인 퇴직을 맞이함과 동시에 쌍둥이 손주들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난한 유아기의 육아가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유아가 아닌 엄연한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둥이들은 유치원 졸업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깔려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유치원 졸업하기 싫어. 학교 가면 40분 동안이나 똑바로 앉아서 공부해야 한대."

"나도 초등학교 가기 싫어. 학교 선생님은 엄청 무섭대. 유치원 선생님은 너무 좋은데 헤어지기 싫어."

급기야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온몸으로 초등학생이 되기를 거부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채워진 것은 순전히 나의 빗나간 염려가 빚은 과오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될 텐데 포크로 밥 먹으면 안 되고 젓가락질을 익혀야 해."

"초등학교에 가면 니들 이렇게 집중 못하고 돌아다니면 선생님 힘들어서 안 돼."

"니들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할머니가 가만 안 둘 거야."

"글씨도 바르게 쓰고, 바른 자세로 똑바로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특히 범이 너 그렇게 까불면서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 몸에 손대면 절대 안 돼."

내 생각으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마무시한 제약이었다.

모든 것이 '안돼' 투성이었다니 아이들은 당연히 뒷걸음치고 싶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선생으로서 입학생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잣대가 살짝 가혹했다.

학부모들에게는 "학교 선생님을 무서운 사람으로 각인시키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괴물로 묘사하며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

반성!

"얘들아, 할머니도 선생님이었잖아. 그러니 선생님을 할머니처럼 다정하고 포근한 분으로 생각하면 돼. 하고 싶은 말이나 묻는 말씀에 답을 할 때도 할머니한테 말하듯이 편하게 하면 다 들어주실 거야."

"유치원 친구들보다 더 재미있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거야.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더 신나고 즐겁잖아."

"우리 둥이는 명랑하고 착하니까 선생님이 많이 예뻐하시고 친구들도 모두 좋아할 거야."

뒤늦은 순화 작업에 진심을 다해 수시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겠는가.

수많은 시작을 경험하고 겪어낸 나도 시작 앞에서는 늘 발을 떼기 싫어 자꾸만 뒤돌아 보는데.

다행히 특유의 명랑한 천성과 아이들만의 천진함으로 나의 회유책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새로 산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메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어서 빨리 입학식이 되면 좋겠다고 종알거린다.




60년대 입학식




문득 60여 년 전 나의 국민학교 입학식이 생각난다.

민애니표-그 당시 인기 만화 작가-금발머리 공주가 프린트된 노란 가방을 메고 우리 집 툇마루를 수십 번 오가며 혼자 헛둘헛둘 구령 맞춰 걸었다. 필통에 칼로 깎아서 울퉁불퉁한 연필 몇 자루와 역시 공주 그림이 그려진 하얀 지우개가 줄을 맞춰 주인을 쳐다본다. 요즘 크레파스와는 달리 발림이 매끄럽지 않은 투박했고 색상도 10색 한정판인 10색 크레용. 종이질이 거칠고 색상마저 누런 색인 공책 1권. 가방 안에 든 소박하고 간단한 소지품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유치원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가는 곳이었기에 7살까지 가정 보육만 받다가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려니 얼마나 기대되고 설레었겠는가. 매일매일 손가락을 꼽으며 빨리 자야 내일이 오고 그래야 입학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학식이 되었다.

가슴에는 하얀 손수건을 핀으로 꽂고 노란 바탕에 까만 실로 수놓은 이름표를 훈장처럼 달았다.

난생처음 하얀 스타킹을 신고 금빛 실이 치마 끝을 장식한 원피스를 입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엄마는 패션 감각이 있으셨다. 엄마는 눈이 치켜뜨도록 아프게 머리를 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엄마 손을 잡고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던 오빠와 함께 학교로 걸어가던 그 아침의 설렘과 달뜸은 아직도 내 마음을 뛰게 한다.

이곳을 평생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선생이 될 줄은 그 아침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나 긴 학교 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시작이 되었다.

입학 후 며칠째인지 모르지만 기억 저편에 선명하게 저장된 장면이 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나란히 줄을 맞춰 선생님을 따라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아마 학교 탐방시간이었나 보다.

"참새", "짹짹"

"오리" , "꽥꽥"

"바둑이", "멍멍"

"고양이", "냐옹"

"호랑이", "어흥"

선생님이 선창 하면 우리는 목청껏 의성어를 외쳤다.

그때의 흙냄새, 플라타너스의 살랑거림, 투명한 공기, 포근한 바람, 보드라운 햇살이 생생하게 저장되어 문득문득 아련해진다.

수십 년이 흐른 후 내가 선창을 하는 자리에 서서 똑같이 하고 있을 때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다.

이렇게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 또 시작과 끝.

마치 말없이 흐르는 도도한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