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부리 영, 사랑 애.
한글 타자를 치다가 한자로 변환하면 처음 나오는 글자이다.
그것은 가장 흔하기에 가치도 떨어질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글자라는 말이다.
바로 내 이름 영애.
어릴 때는 엄마에게 불만이 가득 담긴 투정을 부렸다.
“엄마, 내 이름, 마음에 안 들어.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처럼 흔하디 흔한 이름이잖아.
우리 반에만 해도 영애가 4명이야.
이영애, 양영애, 문영애, 정영애!”
“야가 뭐라카노.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던 이름이었는데. 인순, 숙자, 말자에 비하면 월매나 세련되었냐?
엄마는 영애라는 이름이 참 좋더라.”
당신의 이름인 ‘인순’이에 비하면 백배는 예쁜 이름이라고 사뭇 어깨까지 으쓱하시며 자부심을 드러내셨다.
고등학교 3학년, 우리 반에는 영애가 4명이었다.
작은 영애, 까만 영애, 곱슬 영애, 나는 똑똑이 영애였다.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하고 또 잘해서 항상 선생님의 총애를 받다 보니 다소 민망한 이름으로 불렸다.
성을 떼고 “영애야” 하고 부르면 우리 네 명은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이 더욱 싫었다.
‘소설책의 여주인공 같은 야리야리한 이름이면 얼마나 좋아. 가윤, 세빈...’
‘아버지가 한글 사랑이 넘치셨다면 예쁜 한글 이름도 있잖아? 여울, 가온, 나래...’
국어사전을 이리저리 뒤지며 내 이름 짓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개명이라는 건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늘 혼자만의 유희로 끝났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카피를, 백옥 같은 피부에 걸맞게 고조 곤히 말하며 탤런트 이영애가 등장했다.
그녀가 드라마 대장금으로 빅 히트를 치며 우아함과 순결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김영애’라는 배우도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며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내 이름 영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물론 온전히 나 혼자만의 자기 검열이다.
‘흠, 산소 같은 여자에다 연기력으로 무장한 국민배우가 모두 ‘영애’야. 이거 기분 좋은 일인데?’
그렇게나 싫었던 내 이름이 다른 느낌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영애와 김영애 두 배우와 얼굴마저 같은 급인양 한껏 고무되었다.
학기 초에 새 아이들과 만나는 첫 시간에 담임의 이름을 말하며 나의 소개를 한다.
“여러분, 선생님 이름에 대한 힌트를 줄 테니 한번 맞춰 보세요.
산소 같은 여자. 꽃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
첫째 고개에서 맞추는 아이는 없다. 나와 산소와는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확인한다.
둘째 고개에서는 칠판 가득 한자로 '꽃부리 영, 사랑 애'를 쓴다.
한자를 배운 아이가 있다면 간혹 맞추기도 하지만 성공률은 높지 않다.
그런데 셋째 고개에서는 드라마 ‘대장금’ 여주인공의 이름과 같아요. 하는 순간 한 목소리로 외친다.
이영애!
성은 정가라고 미리 밝혀 두기에 눈치 빠른 아이가 정정한다.
“정영애!”
“딩동댕!”
“산소 같은 여자 정영애입니다.
꽃처럼 예뻐서 모두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라는 뜻의 정영애입니다.
장금이와 같은 이름 정영애입니다!”
내 이름에 취해서 볼까지 붉어진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내 이름을 기억한다.
이영애 배우에게 감사할 일이다.
내 이름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에 젖어 있을 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그런데 선생님, 장금이와 얼굴은 너무 달라요.”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에 당황한다면 프로가 아니지.
“네네, 아주 정확한 관찰력과 솔직함에 박수를 보내요.
산소 같은 여자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장금이보다 몇백 배 더 크고 뜨겁답니다.”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아이들은 내 이름의 마법에 걸린 것이다.
숨 막히는 네모의 공간에서 산소를 제공하는 존재가 바로 ‘선생님’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고 뜨거운 마음으로 껴안아 주는 난로가 바로 ‘선생님’이라는 것도 같이 깨달으면 1년 농사의 반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