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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또 10년

by 정유스티나

오십 고개를 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나이에 대한 무게감은 둘째치고 건강이 너무 안 좋았다. 잠들지 않은 시간에는 컨디션이 흐림이었다. 그렇다고 드러누워서 입원할 정도까지는 아니기에, 직장도 헬스장도 친교 활동도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해내었다. 하지만 난 속으로 곪아 갔다. 물론 이유도 원인도 병명도 알아내지 못했다.


첫 번째 증상은 만성 두통이었다. 1주일 치고 하루 반짝이고 좌우를 오가며 편두통에 시달렸다. 타이레놀은 나의 상비약이었다. 한 알로 진정되던 효과는 진작에 지났고 한꺼번에 네 알을 털어 넣어도 멈추지 않을 때도 점점 잦아졌다. 주말 계획을 근사하게 세우다가도 정작 그날이 되어 두통이 발생하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었다. 집 앞 헬스장에 붙어 있는 찜질방 구석에서 머리를 처박고-진짜 처박았다-나 홀로 두통과의 사투를 벌인 것도 부지기수이다.

두 번째 증상은 명치끝이 늘 무엇이 걸려 있는 듯이 불편감이 있었다. 밥은 여전히 잘 먹고 소화도 잘되는데 개운하지가 않았다.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라는 서울대 병원 내과를 특진으로 다녀왔다. 미처 발견되지 않은 종양이 발견될 것 같은 공포감과 그래도 병명이라도 알면 치료가 시작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갔다. 교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고 신경성이니 이제 나한테 괜찮다는 말 들었으니 진짜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약 처방도 해 주지 않으셨다. 복도에서 숨을 죽이며 기다리던 딸과 함께 두 손을 붙잡고 껑충껑충 뛰면서 기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여전히 불편한 증상이 내 마음을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일원동의 삼성의료원에서는 종합검진도 받았다. 거금을 들여서 받는 검사이기에 여기에서는 무엇이라도 나오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병명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으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너무나 뜻밖으로 오히려 신체 나이는 5살이나 어리고 콜레스테롤 지수는 상위 5%라며 아무 문제없다고 하신다. 참으로 미칠 노릇이었다. 물론 현대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너무나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만 나의 신체 상태는 검사지에 적힌 것만큼 산뜻하지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두통과 명치끝의 고통으로 생활의 질은 곤두박질치며 내 일상을 흔들어댔다. 보건실에 자주 가니까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보건선생님이 보기는 건강해 보이는데 참 이상하네요?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현대의학으로 발견하지 못한 불치병이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도 했다. 보험, 예금, 통장의 비밀번호와 보관 위치, 다행히 갚아야 할 빚은 없기에 남편과 자식들에게 남겨질 짐은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유언장도 썼다. 내 명의로 된 집과 보험금은 모두 자식들에게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남편이야 사업체를 꾸리고 있으니 잘 먹고 잘 살겠지. 화장실에서 웃느라 오줌을 못 누는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 젊은데 새 장가가겠지.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내 재산으로 다른 여자랑 잘 먹고 잘 사는 건 못 보지. 아직 대학생인 두 딸이 결혼도 해야 하고 엄마 없는 날들을 지내려면 돈이라도 있어야 조금이라도 버티기 수월하겠지... 나 혼자 극본을 쓰고, 연기도 하며 매일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극을 흥행하고 있었다. 물론 관객은 나 한 명뿐이다.




벚꽃이 절정이던 어느 주말에 대전으로 부부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 1박 2일 여행이었는데 둘째 날부터 두통이 아주 심하게 일어났다. 대청댐의 벚꽃 속에서 일행은 모두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며 상춘을 즐겼다. 그 속에서 난 눈앞이 캄캄하도록 두통이 심했고 창백한 얼굴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남의 편이라는 남편은 눈치채지도 못하고 나 혼자 떨어져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이제 정말 손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왔나 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당황함에 파랗게 질린 남편의 상태를 헤아려 줄 여유가 없었다.

월요일, 어김없이 출근했고 두통은 조금 가라앉았다. 수업을 끝내고 바로 폭풍 검색을 들어갔다. 두통, 두통, 두통.....

알고리즘에 의해 여러 정보가 떴지만 두통의 원인은 수백 수만 가지라는 뻔한 이야기 밖에 없었다.

‘현미김치효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쳤다. 김치로 만든 효소인 줄 알았는데 현미와 김치에 들어있는 유산균의 효과를 그대로 담은 효소라 지은 이름이란다. 카페에 들어가니 효과를 본 사람들의 후기가 끝도 없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두통과 통풍이 너무나 심했는데 효소를 먹고 다 나았다는 믿기지 않은 복음이었다. 내 가슴은 뛰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작정 주문했다. 딱 1주일 먹었는데 건강했던 시절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미라클! 진짜 기적이었다. 나를 살릴 동아줄이 여기에 있었구나. 혹시 여기에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요? 물었더니 웃으면서 본인은 고통스러웠겠지만 증상이 무거운 병이 아니라서 효과도 빨리 보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병명을 모르는데 이유 없이 아프면 ‘효소’ 부족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도 했다. 효소는 몸속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드니 반드시 외부에서 섭취해서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한다고 했다. 효소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소화작용이니 과식이나 폭식을 하지 말고 소식을 해야 장수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했다.




3년 정도 나를 괴롭히던 병마의 원인이 ‘효소 부족’이었단 말인가! 병명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간절한 소망은 조금은 어이없게 충족되었다. 그 이후에 두통과 명치끝 불편감은 점점 횟수가 줄어들더니 3개월 정도 지나니 컨디션이 완전 정상을 회복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나의 투병은 다소 급작스런 치유로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 ‘현미김치효소’를 알지 못했다면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나에게 딱 맞는 처방을 내려 주신 것 같다. 나의 생생한 체험기를 듣고 주위에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인들도 많이 복용했다. 그들도 나름 효과는 보았기에 사람을 살리는 효소의 효능에 대한 믿음은 더욱 견고했다.

몇 년이 지나자 예전의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보니 슬그머니 복용을 끊었다. 효능은 너무 좋은데 먹기가 좀 거북했기에 건강을 되찾자 간사한 마음으로 잊고 살았다.

10년 동안 내가 먹고 운동하고 관리한 것이 오늘의 나의 모습이고,
지금부터 10년 동안 관리한 대가가 10년 후의 내 모습이라고 한다.


10년 전 고통을 잊지 말고 앞으로의 10년을 좋은 먹거리와 적당한 운동, 편안한 휴식과 충분한 수면 등으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건강한 심신을 만드는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진심으로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10년 후, 나의 모습이 10년 전 나의 모습을 재연하지 않도록...


*특정 상품을 광고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어떤 대가성 보상을 받은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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