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에게
‘은유’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디오 클립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이다.
은유... 이름부터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조근조근한지 속삭이듯이 고막을 쓰다듬고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 이후에 글쓰기 모임에서 은유 작가의 저서 ‘글쓰기의 최전선’, ‘해방의 밤’, ‘쓰기의 말’을 교재로 삼았기에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며 글쓰기를 연마했다.
주옥같다는 고전적인 표현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야말로 은쟁반에 굴러가는 구슬처럼 청아한 문체에 찬물에 세수한 듯 정신이 명료해진다.
은유 작가에 대한 나의 애정은 생각보다 깊고 강하다.
「올드 걸의 시집」의 표지를 보는 순간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에게’라는 부제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은유 작가가 시를 쓰셨나 하는 의문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은유 작가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댈 수 없을 때면,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아 손에 집히는 시집을 빼서 시를 읽었다고 한다. 그동안 읽은 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흔들리고 무너졌다는 반증이다. 그 수많은 詩들 중 엄선한 4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나이 든 소녀가 詩로 지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에 눈뜨는 일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고, 회의에 눈뜨는 일은 존재에 눈뜨는 일이었다. 시는 삶을 위로하지도 치유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인 것이다.
삶은 천연덕스럽고 시는 몸부림친다. 시가 뒤척일수록 삶은 명료해진다. 삶이 선명해지면 시는 다시 헝클어버린다. 시를 핑계 삼아 사는 일이 힘에 부치고 싱숭생숭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시를 읽고 글을 썼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회한이 쌓이고, 시집이 늘었고, 눈물이 마르고, 아이들이 커 가고 《올드걸의 시집》이 자랐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이 책은 삶과 시의 합작품이다. 그 작업은 익숙한 나로부터 떠나는 연습을 일삼은 기록이다. 시를 읽는 것은 타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고, 나를 허물어뜨린 자리에 남을 들여놓는 행위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고 존재가 존재를 닦달하지 않는 세상, 그것을 ‘시’와 ‘시에 곁들여진 수다’가 조금이라도 도우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은 이미 목표 초과 달성이다.
#여자,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무엇이든 그 자체 단독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미고, 그것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비열함이다. 아무리 큰 고난과 좌절이 오더라도 이 말 하나 가슴에 품고 살면 영영 넘어져서 울고 있지는 않으리라.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_정일근의 시 〈그 후〉
내게 삶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런 난해함을 삶의 일부로 껴안고 살아간다. 또다시 내 앞에 물살 깊은 긴 강이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긍정하면서 말이다.
#엄마,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내가 좋아하는 오빠야, 백석의 시〈바다〉가 나를 여수와 통영의 바다로 이끈다.
백석이 사랑했고, 백석이 늘 그리워 하던 통영의 숨결을 나도 따라가 볼 것이다.
밥에 묶인 삶, 늘 떠남의 욕망에 시달린다는 작가의 마음이 짠하다.
나 또한 그러하기에...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 그렇다. 그냥 앓으신 게 아니라 더 더 더 많이 앓으시는 엄마. 원초적 모성으로서의 엄니.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우리 엄마를 이해하겠다.
더 이상 엄마들이 아프지 않은 세상을 위해, 나부터 아프지 않고 울지 않는 엄마가 되는 일이 남았다.
자식이 울까 봐 미리 우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가 웃어서 자식도 웃게 하는 그런 행복한 엄마들이 많아지는 세상, 은유 작가가 나에게 던져 주는 숙제이다.
#작가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게 문득 그립다.
“악행이라도 저질러라.” 니체는 악행을 권한다. 속 좁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악행을 저지르는 게 낫다고 한다. 행위의 과정에서 문제를 터뜨려 해결해 주면 다른 지형이 열리기 때문이다. 또 작은 악행의 쾌감이 큰 악행을 막아 준다고 했다. 한마디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이라는 챕터가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이다.
가난이란 말은 무작정 슬프다.
벤야민은 말한다.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지당한 말씀이나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함민복 시인이 지어 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긍정의 밥 삼천 원이 그래서 가슴 절절하다.
월 30만 원으로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하던가.
시집을 좀 더 많이 사고 시를 더 많이 읽어야겠다.
시집 한 권 팔리면 나에게 떨어지는 돈이 삼백원은 너무 하지 않은가.
그들이 차가운 심장을 녹이고 죽어가는 생명도 살리는 것에 비하면.
눈물이 난다.
시인의 언어에서 삶의 편린을 건져서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은유 작가의 글 쓰는 솜씨는 마치 백자를 빚는 도공 같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문단과 문단을 지나갈 때마다 작두 타는 무당이 되어 신 내린 듯 쓴 작가의 글을 만난다.
연신 숨 죽이고 감탄하며 읽는 것은 한숨이지만, 그 울림은 오래 오래 나를 지배하는 징소리이다.
《올드걸의 시집》
제목부터 나의 데스티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