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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

김상혁 김잔디

by 정유스티나

파주의 무엇이 그토록 매혹적이었을까?


유독 청량한 대기, 빼어난 경관

그리고 눈에 띄게 여유롭고 선량한 이웃들......

같은 것은 실제 하지 않는다.-통쾌하다. 실제 한다고 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재미없는 스토리일 게 뻔하니까.

실제 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책장을 넘겼다. 도리어 파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수직상승했다.


-흡사 좋은 시집을 골라 읽을 때처럼,

돌아보면 나는

아름다운 파주를 주장했던 것이다.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다


표지부터 다른 책과는 다른 모습이 낯설면서 친근하다.


'김상혁. 김잔디' 두 작가의 이름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가 공부하는 **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의 교수님이다. 우리 대학의 테리우스라 불리며 학우들의 인기가 BTS 못지않다. 외모도 근사하지만 강의에 대하는 진심과 열정이 모니터를 뚫고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김상혁 작가의 짝꿍이 김잔디라는 풀내음 나는 이름의 소유자인 줄 처음 알았다.

상혁. 잔디.

본문 중에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또 나를 설레게 한다.


김상혁 작가의 글은 파란색
김잔디 작가의 글은 노란색
티키타카가 정답다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고백한다

김상혁 작가의 글_파란색


김잔디 작가의 글_노란색


김상혁 작가의 글은 좀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라면 김잔디 작가의 글은 좀 더 섬세하고 이상적이다.

파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있었던 에피소드와 감상을 그들만의 색채로 아름답게 풀어냈다.

사슴벌레로, 하늘소로, 요풍길, 소라지로, 청석로, 풍뎅이길, 얼음실로, 샬레길, 헤이리마을길 등등 어찌 이름도 사랑스럽고 친환경적인 지. 하지만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책향기로, 순못길, 해바라기길, 숲속노을로, 노을빛로, 안개초길.

길이름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파주 시청 공무원이 시인인가-도로 작명을 공무원이 한다는 막연한 추측-

'파주' 그 곳은 예술적인 감성이 다른 동네와는 확연히 다를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나는 아름다운 파주를 주장했던 것이다_김상혁 작가의 글 중


풍수지리 관련해 최근에 책을 쓴 저자로부터 한국에서 서가장 기운 좋은 두 곳이 파주와 강화도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세와 산세가 좋은 곳, 그래서 길한 기운이 넘치고 흉한 기세는 들지 않아 사람 살기 마땅 한 곳이라는 의미일 텐데,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땅 같은 게 따로 있을까 싶지만 파주에 관한 이야기라서 거듭 곱씹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아름다운 파주를 주장했던 것이다 중-



그냥 널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_김잔디 작가의 글 중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김민정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입덧이 심해 먹는 족족 토하기 바빴던 때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차려준 음식을 그저 맛있게 먹다 왔다. 배가 차는 것을 아쉬워하며, 신기하게 그날은 입덧도 멎었고 잠도 잘 잤다. 헛구역질로 며칠을 굶다가 남의 집에서 허기를 면했던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널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냉이된장국을 마시듯 넘기고 고있는데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아직 낯설고 어색했던 사람이 건넨 이 다정한 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냥 널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책향기로라는 이름이 예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김민정 시인의 말을 들으니 시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다. 내가 평소에 애정하던 김민정 작가와 이웃사촌인 것만 해도 부러운데, 먹이고 싶은 대상이 된 잔디 작가의 클래스가 부럽다.


정을 주었던 고양이의 죽음을 모르게 되는 게 더 무섭다는 요풍길

멸종위기종 1급 수원청개구리가 맞았을까? 소라지로

누군가의 선심까지 내 다 버리고 나니라는 청석로

시큰둥하게 칭찬을 받아먹는 풍뎅이길

살다가 흙에 묻혀 땅이 이 내린 배가 되는 것은 얼음실로.

강아지를 데려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는 필승로.

아빠는 취해서도 내 텐트였음을 회상하는 회동길.

무엇이 되고자 품은 마음들이 모여 있는 숲속노을로.

너와 나 둘만 남는 노을빛로.

아빠 같은 어른은 힘들 것 같다는 문채-두 작가의 아들-의 말이 들려오는 안개초길.


어느 길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특별할 것은 없지만 소중한 일상이 녹아있다.

살아낸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두 작가의 담백함으로 풀어낸 문체는 초식동물처럼 평화롭고,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다.

'파주' 하면 헤이리마을의 그림 같은 가게에서 예쁜 접시와 앞치마를 사고, 유명한 마늘빵집에서 긴 웨이팅도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선 기억밖에 없다.

거리의 아름다운 이름을 떠올리며 뚜벅뚜벅 걷다 보면 두 작가가 느꼈던 파주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파주 골목골목에서 수채화처럼 맑고 순하게 살아가는 두 작가의 사랑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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