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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국과 이효리

by 정유스티나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가수 이효리와 이효리의 엄마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핑클 시절의 이효리는 관심 제로였고, 핑클에서 솔로로 데뷔한 타이틀곡으로 정말 정말 인기가 많았던 10 Minutes (텐미닛)이 전국을 강타할 때야 이 가수 좀 이쁜걸? 엄청 섹시한걸? 하는 정도였다.

연예인의 연예인인 이효리는 나에게 텔레비전에서나 존재하는 현실감 없는 인물이었다.--


엄마, 나 어릴 때 먹었던 오징어국 끓여 줘.


효리의 말에 엄마는 오징어국 끓일 장을 보셨다. 숙소에 들어와서 엄마는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하시는 듯 설렘과 살짝 긴장하며 재료를 손질한다. 그 옆에서 효리는 계속 쫑알쫑알 엄마의 말벗이 되어 준다.

엄마는 딸에게 그때 먹던 맛을 재현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정성스레 요리에 몰두하신다.

드디어 소박한 한 상을 차려내시고, 효리는 환한 얼굴로 오징어국물부터 한 숟가락 후루룩 마신다.

바로 그 순간,

별안간 효리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왜 울어? 기분 좋게 먹어. 오랜만에 해 주는 음식이니.

엄마의 말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마침내 폭풍 오열을 한다.

너무너무 많이 울어서 촬영이 중단된다.

제일 많이 당황한 것은 효리의 엄마. 그 다음 놀란 것은 시청자, 나도 함께 흑흑 흐느낀다.


엄마의 오징어국을 먹는 순간 어릴 때의 맛이 그대로인데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북받쳤어요.

엄마의 오징어국을 한 입 뜨는 순간 가난했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우리, 어릴 때 참 가난하게 살았어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정도였지요.

그때 엄마가 오징어국을 끓이면 온 집에 오징어국 냄새가 풍겼지요.

하지만 내 국그릇에 들어오는 오징어는 많아야 2개? 3개? 밖에 없었어요.

식구는 많지. 없는 살림에 오징어 한 마리에 물을 많이 잡아야 모두가 먹을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하고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퉁퉁 부은 눈으로 여전히 울먹이며 인터뷰를 한다.

효리는 울어도 예쁘구나.

외모보다는 가난했던 시절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애끓는 울음을 우는 그 마음에 진정이 느껴졌다.






오징어국.

나에게도 오징어국의 추억이 많고 제일 좋아하는 국이기도 하다.

효리집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풍족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오징어국 끓이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무반 오징어반인 국에다 하얀 쌀밥 한 공기를 말아 한 숟가락 뜬 후에 쉰 김치 한 조각을 올려서 먹던 그 맛은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맛이다. 지금도 가슴이 헛헛하거나 엄니가 보고 싶을 때는 오징어국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특유의 감칠 맛이 떠올라 침이 고인다.

성장하여 외지에서 자취를 하다가 집에 갈 때면 난 항상 오징어국을 끓여 달라고 했다.


딸, 맛있는 것 뭐 해 줄까?

엄마, 오징어국!


나는 아무리 재료를 많이 넣고 정성을 다해 끓여도 우리 엄마표 오징어국은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

엄마한테 레시피를 전수받고, 유투버 요리샘에게 사사도 받았건만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내가 먹는 엄마표 오징어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실 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던 코끝 알싸한 향수 때문일까?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따스한 정이 넘치던 그 시절의 호사였기 때문일까?

다시 오지 못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스위치여서 그럴까?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먹거리일 뿐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 주고 함께 먹던 사람을 추억하며 영혼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모닥불이다.


이제 나에게 효리는 텔레비전에 박제된 비현실적인 연예인이 아니다. 나와 같이 숨 쉬고 나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으며, 나한테 특별한 오징어국에 대한 향수를 똑같이 갖고 있는 현실 속 사람이다.

그래서 효리가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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