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닐 때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시를 많이 지었다. 특별히 시에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문장력이 딸리니 길게 풀어낼 자신은 없고 일단 글이 짧다는 것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식이 널뛰기하는 소리였다. 모든 글의 꽃이라는 시가 제일 어렵고, 농축되고 함축된 시어를 낚아 올리는 것은 모래바닥에서 바늘을 찾기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해마다 가을 축제 기간에 우리 문예반에서도 시화전을 했다. 나름 머리를 쥐어뜯으며 시 하나를 낳았고 미술반 친구에게 시화를 부탁하여 액자에 곱게 담아서 교정의 벤치가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처럼 심판을 받는 것이다.
'상흔'이라는 제목의 시 중 유독 지금도 기억되는 구절이 있다.
내 나이 마흔까지만 살고 싶다
스무 살, 그때의 마흔은 절망의 나이였다. 몸은 이미 고목이 되어 있을 것이고 사랑도 눈물도 모두 말라 버린 화석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 끔찍함이 싫어서 마흔에 이 생을 떠나고 싶었다. 흔들리는 청춘의 아픔이 너무나 크고 무겁기에, 마흔 이후의 안식이 오히려 희망과 평화로 기대했다. 할리우드의 여배우 중에도 늙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은둔하며 스크린에서 사라져 간 스타도 있다.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외모의 소유자이기에 마흔 이후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은 공포였다.
마흔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마흔 고개를 넘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때 나는 푸릇푸릇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일에 진심이었던 시절이다. 직장에서도 중견으로 가장 막중한 업무를 가장 완벽하게 해 내는 나이였다.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느라 이리저리 쪼개고 나누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건설의 나이였다. 마흔은.
젊은 날의 치기와 낭만으로 했던 마흔까지 살겠다는 망언은 기억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하나 둘 고장 나려고 조짐을 보이는 몸뚱이와 예전 같지 않은 컨디션으로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한 주먹씩 털어 넣기 시작한 격동의 나이였다. 마흔은.
내가 선택한 결혼과 내가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실망감이 때때로 나를 무릎 꿇게 하며 허망도 했지만, 보물 1호와 2호의 등장으로 잘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올라앉은 내 인생은 대체로 무난했고 순간순간 행복도 했던 사랑의 나이였다. 마흔은.
나는 지금 60을 넘어 70을 향해 가고 있다. 그때의 결심을 실행했다면 오늘을 맞이하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이다. 책임져야 할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아등바등 뭔가를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내 나이가 좋다. 물 흐르듯이, 구름이 흘러가듯이 나의 몸과 마음을 맡기고 순리대로 살아가면 되는 내 나이가 편안하다. 스무 살, 그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다. 젊은 치기라고 하기에는 무모했던 시상이었음을 고백하며 허무주의가 멋있어 보이던 그 시절 나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다.
봄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가을 낙엽은 더욱더 곱단다.
마흔,
그 이후의 삶이 훨씬 행복하고 가치 있으니 기대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