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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낭자

보라를 노래하다

by 정유스티나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

'보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7080 세대 가수인 '윤항기'는 장밋빛 스카프에 가슴이 뛰었다고 하지만,

나는 보랏빛이면 뭐든지 심장이 차갑게 뜨거워졌다.

꽃띠 시절 내가 걸치는 무엇이던 보라색은 꼭 끼어 있었다.

보라색 티셔츠, 보라색 바지, 보라색 점퍼. 보라색 가방.

하다 못해 양말도 보라였고, 머리핀 마저 보랏빛으로 꽂았다.

그중 백미는 보라색 투피스였다.

열악한 근로여성이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찍은 사진 하나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그 당시는 분명 한 컷 정도는 찍었을 텐데 어디론가 사라졌다.





보라색은 분홍으로 시작해서 파랑으로 끝나는 신비로운 색이다.

보라는 빨강과 파랑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색이다.

보라에는 불의 열기인 빨강과 얼음의 차가움인 파랑이 섞여,

양극적이고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는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색이다.

이 색은 역사적으로 아주 귀한 염료였기에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로마 고대에서는 황제와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평민이 사용하게 되면 대역죄인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

전생에 유럽 중세시대의 공주였나?

재수 없는 상상도 해 볼 정도로 보라는 나를 취하게 한다.







만나는 선배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아주 멋진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보라 낭자'

보라색만 보면 '보라 낭자'라고 부르며 씩 웃던 선배가 생각난다.

선배는 그레이와 검정으로 온몸을 감쌌기에 자연스럽게 차분하고 모던한 컬러를 연출했다.

이는 마치 사무실 분위기에 어울리는 색 조합이기에 우리 관계도 사무적으로 끝났다.


때마침 혜성처럼 나타난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가 전국을 강타했다.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예쁜 두 눈에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


보라를 노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강수지의 열혈팬이 되었다.

나도 그 선배에게 보랏빛으로 기억될까?

어느 하늘 아래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내 생각 잠시라도 할까?

내 청춘은 보랏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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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오늘

임영웅이 불러 역주행한 '보랏빛 엽서'에 아주 몸살이 났다.

우와

이렇게 보라보라 한 노래가 있었다고?

원곡자인 설운도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마도 임영웅이 심폐소생술을 했기에 화려하게 부활한 노래 같다.

미스터트롯 경연 당시, 임영웅이 '보라빛~~'하는 순간 난 이미 미쳐버렸다.

수십 년을 건너뛰어 솜털 보송보송하던 20대의 내가 두 손을 모으고 이슬 맺힌 눈으로 브라운관을 본다.


보라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음 음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엔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엔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왜 하필 보라빛 엽서에 이별 편지를 쓰냐고.

왜 하필 가버린 당신이 보라빛으로 오냐고.

내가 마치 가사 속 주인공이 되어서 억지 같은 투정도 부리며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다.

임영웅 가수의 팬카페에 가입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보라는 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주관하는 색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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