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시집보낸 뒤 처음으로 신혼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방 두 칸의 작은 공간에서 알콩달콩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사위는 눈을 치우고 딸은 요리를 하고, 종일 엄마 맞을 준비를 했다는데 반찬이 한입 먹을 것도 없었다.
“아따, 깔따구 창시도 아니고 이렇게 묵고 살겄냐? 간에 기별도 안가겄다.”
“이따 과일 드세요. 후식 먹을 공간을 남겨놔야죠. 많이 준비해서 남은 거 아깝다고 먹는 것은 몸을 쓰레기통 취급하는 거래요.”
3개월 차 새내기가 30년 차 주부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그동안 내 몸을 쓰레기통 취급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밥상을 물리고 나니 초인종이 울렸다. 사돈 내외가 오신 것이다. 집에서 만든 식혜며 귀한 딸기도 가져오셨다.
“먼 길 오셨네요.”
“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사투리 튀어나올까 봐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고 입을 봉하고 있으니 정적이 흘렀다. 상견례를 거쳐 결혼식을 했는데도 왠지 서먹하기만 했다. 자식 나눠 가진 좋은 인연인데 굳이 격식을 차려야 하나 싶던 참에 안사돈께서 먼저 말문을 여셨다.
“저번에 보내주신 조기, 잘 먹고 있네요. 목포 조기가 확실히 맛있는 것 같아요”
“아, 예. 조구는 시한에 잡은 놈이 씨알도 대글 하고 탱글탱글하니 좋아라. 노릿노릿 구워도 좋제만은 꼬사리 한 줌 깔고 뽀땃하게 지져도 여간 맛나당께라”
바깥사돈도 한 말씀하셨다.
“모처럼 오셨으니 서울 구경도 하시고 좀 쉬어 가십시오.”
“아니어라. 후딱 내려가야지라.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오란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구만이라. 오죽하먼 지 별명이 우화백이겄소.”
“우화백이요?”
“예, 우아하고 화려한 백수라는 뜻인디 돈도 안 벌고 팽팽 자빠져 논다고 사람들이 그리 부른당께요”
그 순간, 딸기를 씻어온 딸아이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사투리 쓴다고 그런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잘못이랴 싶어 한 술 더 떴다. “지가 백수래도 노인네 모시고 있다 봉께 집을 오래 못 비어라.”
그러자 안사돈과 사위 표정도 조금 당황스러운 듯했다. ‘왜 그러지?’ 급히 머리를 굴려 봐도 딱히 집히는 게 없었다.
백수 시리즈가 한참 더 이어질 판인데 사위가 끼어들었다. 낮에 법정에서 피고가 난동을 부렸다느니, 이번 사건 의뢰인은 언어 장애가 있어서 아무래도 수화를 배워야 할 모양이라느니... 두 번씩이나 말을 자른 것이 빈정 상해 사위 점수를 5점 깎아버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시간이 늦었다며 사돈 내외가 일어섰다.
어른들을 배웅하고 들어온 딸이 갑자기 하이소프라노로 쏘아 댔다. “내가 못 살아 정말! 떠벌이 약장사도 아니고 엄마는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으째야? 내가 뭔 실수라도 했냐?” “큰 실수 했지. 우리 시아버지 이름이 이백수잖어! 하고 많은 말 다 놔두고 저녁 내내 백수타령이등만.” '맞다. 이백수!' 그제야 결혼식 때 들었던 이름이 생각났다.
“오메 이 일을 으째야쓰까잉. 내가 본시 입이 무건 사람인디 으짜다 이라고 얼척없는 짓을 해 부렀다냐? 그라제마는 천재만재도 아니고 청첩장에서 딱 한번 본 이름을 으찌 머리빡에 담었겄냐. 역부러 그란 것은 아닌디 갈작없이 씨부렁대서 앞으로 사돈 어르신을 으찌께 뵌다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얼굴을 감싸고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사돈어른은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하루아침에 술을 끊어버릴 만큼 단호하신 분이다. 아들이 공의롭게 법 집행을 해야 하는데 혹시 취중에 말실수라도 하여 아들에게 누가 될까 봐 그러셨단다. 그런 어른 앞에서 친정어머니라는 사람이 오줄없게 굴다니, 생각할수록 민망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다음날 라디오에서 이름이나 별명에 얽힌 사연을 받는다는 멘트가 나왔다. 청소기 전원을 꺼버리고 볼펜을 잡았다. 사돈 이름을 함부로 불러 화끈거렸던 열이 아직 식지 않은 때라 얘기가 술술 풀렸다. 석 장을 가득 채운 따끈따끈한 편지를 우편함에 넣었다.
며칠 뒤, 전화선을 타고 또 딸아이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엄마 때문에 내가 진짜 못 살아!” “차근차근 말을 해봐라, 밑도 끝도 없이 뭔 소리냐? 너한테 보낼 깨 볶느라고 뜨거서 디져불겄구먼 으째서 또 오가리 깨진 소리를 하고 난리냐?”
사연인즉슨, 시부모님과 큰댁으로 제사 지내러 가는 길에 방송을 들었다는 것이다. 운전하던 사위가 뉴스를 들으려고 라디오를 켰는데 “다음 편지는 목포시 산정동에서 보낸 김순의 씨 사연입니다” 하더란다. “백수와 우화백”이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혹시라도 시부모님 기분 상하게 할 내용이면 어떡하지?’ 긴장했는데 다행히 사돈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불러 민망했다는 얘기여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다.
하필 그 사연을 그분들이 듣다니! 웃음소리 호탕한 진행자가 자지러지며 “백수”를 연발하자 사돈어른께서 “오늘 내 이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네. 사부인은 글을 참 재미나게 잘 쓰신다.”하셨단다.
며칠 뒤, 방송국에서 화장품 세트가 왔다. 주름살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기능성 화장품이었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안사돈께 보내드렸다. 화장품이 약발을 냈는지 딸내미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웠다. 그래도 못 미더운지 전화를 끊으며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앞으로 다시 글 쓰지 마!”
한 달 뒤 방송국에서 김치 냉장고가 왔다. 그 달의 최우수 편지로 뽑혔다는 것이다. 혼수 준비하면서 김치 냉장고를 못 사줬는데 딱 맞는 선물이었다. 김치 냉장고를 서울로 보냈더니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딸내미 목소리가 젤리처럼 말랑말랑했다. 엄마! 또 글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