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드레서

by 에쩨르

아울렛에 갔다가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원피스를 샀다. 기십 만원의 가격표를 달았던 옷이 돌고 돌아 가격이 내려온 바람에 내 차지가 되었다. 바로 옆 액세서리 코너에서 같은 색 비즈 코르사주도 샀다.

며칠 뒤 모임에 나가면서 그 원피스를 입었더니 한 마디씩 한다.
"꽤나 줬겠는데?"
"코르사주도 세팅되어 있던가요?
"깔 맞추는 데는 선수야."
"베스트 드레서 인정!"

나는 옷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늘 바느질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았다. 어릴 때는 언니가 양재 기술을 배워 옷을 만들어 주었다. 세일러복과 블라우스, 철 따라 예쁜 옷을 입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결혼 후 집을 장만하고 양장점 하는 분에게 가게를 내줬다.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와 함께 양장점에서 놀았다. 옷감을 펼쳐놓고 디자인을 고르며 철따라 똑같이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나가 모녀 커플룩이 신기한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봤다.

도시로 나오니 단짝 친구가 의상실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내 코디네이터인양 철따라 변신을 시켜주었다.


기성복에 밀려 맞춤집이 하향길로 접어들자 때맞춰 교우가 수선 집을 오픈했다. 가게 이름을 부탁하기에 <도르가의 집>*이라고 지어줬더니 평생 무료로 옷을 만들어 주겠단다. 작명료 받아 내느라 부지런히 드나들며 새 옷을 맞춰 입었다. 재단을 배웠던 분이라 내가 원하는 대로 옷을 만들어 줬다. 몸무게가 늘어 입던 옷이 다 불편한데 도르가표 옷은 어찌나 편한지 즐겨 입게 되었다.

백일 넘은 손자를 업고 두 시간을 돌아 지하상가 매대에서 짝이 없는 외톨이 재킷에게 딱 맞는 치마를 찾아내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쇼핑의 귀재”라고 부른다.

좋은 물건 싸게 사는 것이 쇼핑의 재미 아닌가. 봄이면 즐겨 입는 재킷이 있다. 연두색에 반차이나 칼라로 흔치 않은 디자인이다. 오래전 교회 바자회에서 줍다시피 모셔 왔는데 내 몸에 맞춘 것처럼 딱 맞았다. 그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어머나! 봄이 왔네.”하며 표정이 환해진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수년 동안 내게 봄을 선사한다.

겨울에 자주 입는 코트는 유명 메이커 제품인데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통해 내게 온 보물이다. 모피 코너에 불이나서 그을렸다는데 자수집에서 비슷한 색으로 수놓아 흠집을 가려줬더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옷이 되었다. 내피가 토끼털이라 눈밭에 뒹굴어도 안 춥다. 이 옷 덕분에 겨울이면 귀부인이 된다.

옷은 사회적 언어도 되고, 내 안전성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옷을 잘 입는 것도 서비스다. 때와 장소, 분위기를 살려 근사하게 차린 사람을 보면 다가가 악수라도 하고 싶다. 상황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 입다가 칠면조라는 별명도 얻었다.

멋 내기는 관심과 센스다. 스카프 하나만 잘 둘러도 옷이 펄펄 살아난다. 외출할 때 옷과 가방, 구두색이 맞아떨어지면 발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그렇게 근사한 날개를 달면 집에 들어가기 싫다. 나폴나폴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다. 립스틱까지 같은 색으로 바른 날이면 온몸에 바람이 들어 잠시 일탈을 하고 싶어진다.

자존감은 당당함에서 나오는 걸까? 매무새가 반듯하면 어깨가 쫙 펴지면서 말씨에서도 교양이 흐른다. 인생의 길이는 조절할 수 없지만 그 깊이와 질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울한 날이면 한껏 더 우아하게 차리고 나선다. 그렇게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다 보면 기분도 산뜻해진다. 가꾸고 꾸미는 것은 여성의 특권이다. 곱게 단장한 여성들이 있어 세상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지난 겨울 끝에 이월상품전에서 원피스를 샀다. 곤색에 하얀 프릴이 달린 수녀 스타일 옷이다. 얼른 그 옷이 입고 싶어 봄아 빨리 오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덜컥 폐렴에 걸렸다. 38도의 고열로 비몽사몽인데 친구가 문병을 왔다. 눕지도 못하고 베개에 이마를 대고 앓으면서도 기도하듯 아룄다. "나 죽으면 안 되는데...얼른 나아서 그 원피스 입어야 하는데..." 친구가 어이없다는듯 한소리 했다. "살아야할 이유가 좀더 거룩해야 하지 않겠냐? 세계 평화나 남북 통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손주 대학생 되는 것은 보고 싶다던가...기껏 몇 만원 짜리 원피스 입으려고 더 살고 싶다는 게 말이 되냐" 고. 하나님께서도 어처구니가 없으셨을까? 철부지 손녀 떼쓰는 걸 빙그레 웃음으로 받아주시는 할아버지처럼 애교로 봐주셨을까? 보름 넘게 잡히지 않던 열이 그날 밤에 내렸다. 나는 그렇게 죽지 않고 퇴원해 그 원피스를 입고 날마다 봄속을 걸었다.

내 옷장에는 결혼 전 입었던 미니스커트가 있다. 군대 간 애인이 휴가 나오자 그 치마 입고 필름 한 통을 다 찍었다. 허리 사이즈 25인치, 꿈같은 시절이다. 그 치마를 다시 입어보고 싶은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정신연령은 스무 살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마음이 젊은 색으로 빛날 수 있다면 숫자가 무슨 상관인가. 나는 아직도 충분히 아름다운 젊은 할머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바느질 잘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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