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두부를 자주 만들었다. 제사나 명절뿐 아니라 아버지가 진득하게 눌러 있을 때도 콩을 담갔다. 입맛이 까다로웠던 아버지도 그것은 즐겨 드셨다. 두부를 만든 날은 가마솥에 불부터 지폈다. 콩대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기운 좋게 솥단지를 달구고 뒤 안 샘가에서는 전날 밤에 멱 감은 콩이 몸을 불려 가고 있었다.
평상 위로 맷돌을 옮기고 식구들이 번갈아 어처구니를 돌렸다. 밤새 물속에 있던 콩은 희뿌옇게 바래 있었다. 손이 있는 대로 필요한데도 아버지는 구경꾼일 뿐, 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바깥을 내다보곤 했다. 나도 어처구니를 돌려 보고 싶은데 엄마는 거치적거린다며 밀어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맷돌 구멍에 콩을 집어넣으며 끼어들었다.
불에 단 솥단지에서는 뜨거운 눈물방울이 파르르 떨며 미끄러지고 맷돌에서는 몽글몽글 갈린 콩이 노르스름하게 녹아내렸다. 아궁이 열과 솥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수증기로 엄마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았다. 솥에서 눈을 떼는 바람에 자칫 콩물이 넘치기라도 하면 한순간에 난리가 났다. 부뚜막은 온통 콩물 천지가 되고 “오메 으째야 쓰까!”외마디 소리와 함께 저마다 발을 굴렀다. 끓인 콩물을 면 자루에 담아 짜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작대기를 이리저리 걸쳐 반대 방향으로 힘껏 비틀면 미어터질 듯 빵빵하던 자루가 잦아든다. 비지를 걸러 낸 콩물에 간수를 붓고 저으면 보풀처럼 망울망울 엉기는데 그것을 떠서 틀에 붓는다. 면 보자기를 씌워 납작한 돌로 눌러 서너 시간 두면 말랑말랑한 두부가 만들어진다.
두부가 굳기를 기다리며 양념장을 만들었다. 진간장에 쪽파와 마늘, 고춧가루와 깨, 참기름을 넣으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엄마는 자를 대지 않고도 척척 두부를 잘랐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허이, 이참에는 더 맛나네. 사방을 돌아다녀도 이런 맛이 없드랑께” 하며 넌지시 엄마의 손맛을 칭찬했다. 그 한마디에 피로가 풀린 듯 엄마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마지막 몇 모 남은 두부는 “느그 아빠 몫”이라며 손도 못 대게 했다.
“귀한 음식은 나눠 먹어야 한단다.” 손이 컸던 엄마는 친척집이나 이웃집에 두부를 돌렸다. 귀가 떨어진 것은 식구들이 먹고 모양이 좋은 것은 다른 집에 갖다 주었다. “막내도 콩 추리느라 한몫했응께 많이 묵어라. 그라고 양재기 들고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쓰겄는디” 하며 심부름을 시켰다. 다른 일은 꽁무니를 빼며 미적거렸는데 갖다 주라면 날개 달린 듯 잽싸게 다녔다. 두부 만든 날은 돼지도 배가 불렀다. 비지를 먹은 돼지는 푸푸 기분 좋은 콧소리를 냈다.
동네 악동들의 장난에 울고 들어오면 아버지는 매번 같은 말로 나무랐다. "사람이 깡다구가 있어야 한디 두부맨치 물러 터져서......” 그러던 아버지가 하루는 다르게 말을 했다. "약값은 아부지가 물어 줄 텐께 누가 건들먼 도팍으로 박을 터 버리라"라고. 옆에 있던 엄마가 진짜로 그러면 어쩔 거냐며 말렸다.
신혼 때부터 가장 만만한 것이 두부 요리였다. 자잘하게 썬 김치만 곁들이면 되니 두부김치가 제일 쉬웠다. 애호박과 두부 썰어 된장만 풀면 되는 된장국도 자주 끓였다.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은 김치찌개도 단골 메뉴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야채를 먹이기 위해 두부부침을 시작했다. 양파, 부추, 당근, 호박, 감자...... 으깬 두부에 이런 재료를 송송 썰어 달걀로 반죽해 부쳐놓으면 아이들은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후후 불어 먹었다. 도시락에도 자주 넣었다. 얼마나 많이 쌌던지 지금도 딸 친구들은 그게 생각난다고 한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숟가락을 놓으셨다. 이것저것 차려도 고개를 들지 않자 목소리를 높였다. 먹어야 살 게 아니냐고, 생각나는 음식이 뭐냐고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더 짜증을 부렸다. 내 성화에 엄마는 간신히 눈을 떴다. “뜨끈뜨끈한 두부나 한 점 묵었으면 쓰겄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손 두부 잘한다는 식당으로 달렸다. 양념간장에 김치까지 버무려 냈는데 한입 드시는가 싶더니 다시 눕고 말았다. 그 길로 엄마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긴 잠에 빠져 버렸다.
엄마 떠난 뒤에 처음으로 많이 아팠다. 평소에는 감기가 들어도 입맛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먹을 생각이 없었다. 며칠 맥이 빠져 누워 있다 보니 엄마 표 두부가 생각났다. 뜨듯한 기가 남아 있는 그것을 한입 우물거리면 힘이 날 것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도 “오메 내 새끼, 이라고 많이 아퍼서 으째야 쓰끄나!” 그 원초적 사랑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문득문득 엄마가 보고 싶다. 14년 동안 한방을 썼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런 날에는 더한다. 물렁물렁하고 밋밋하지만 곡기 없이도 배부른 그것이 엄마를 닮아서일까? 오늘따라 엄마 표 두부가 간절하게 먹고 싶다. 두부처럼 물러터졌다고 혀를 차던 아버지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