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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18. 2022

양양과 양평

쓰봉이의 나머지 새끼들은 어디 있을까?


쓰봉이의 나머지 새끼들은 어디 있을까?




우리가 본건 다섯 마리. 지금  앞에서 굴러다니는 것들은  마리. 그럼 나머지  마리는 어디 있는 걸까. 한편으론 쓰봉이가 몽땅 묶어 지들 (?)으로 데려갔으면 하는 맘이었지만, 밥그릇 하나씩  하니 차지하곤 호위 호식하며  자라는 양남, 양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머지 아이들의 안위가 조금 신경 쓰이기도 했다. 어디 가서 쓰봉이 마냥 닭볶음탕 국물이나 핥아먹고 있는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슷한 개월 수의 말라비틀어진 새끼 고양이 목격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옆집 컨테이너 창고 아래, 어느 날은 사무실 뒤쪽 구석진 틈 안에서. 목격된 고양이는 총 두 마리. 그중 한 마리는 눈이 들러붙어, 영 상태가 좋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나머지 한 마리는 안타깝게도 생을 달리 한 것 같았다. 남편은 남은 두 아이들을 눈탱이라 통칭하였으며, 눈탱이들은 드문드문 출몰하다가 , 종종 출몰하다가, 언제부턴가는 밥시간이 되면 스윽 나타나 그림자처럼 밥을 먹고 사라졌다.


양남, 양자와 달리 눈탱이들은 겁이 무척 많았다. 아마 쓰봉이가 야무지게 훈련을 시킨듯했다.

길냥이에게 야생성은 생존의 무기와도 같다. 그런 아이들이 손을 타지 않는다고 , 다가오지 않는다고 섭섭할 건 없었다. 그저 너무 어린 나이에 낯선 인간에 공간에 던져져 사료 한알에도 목숨을 거는것마냥  눈치를 보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남편 역시 나와 같았다. 그래서 양남, 양자와 다를 것 없이 적절한 무관심을 분배해주었으며 , 아이들은 쓰둥이의 일원으로 빠르게 합류했다.



눈탱이들 . 왼쪽이 양양, 오른쪽이 양평이다.




양양이와 양평이



치즈 고양이/미학론/의 전문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 두 마리를 분류하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발견 당시 눈이 안 좋은 놈. 멀쩡한 놈 정도로 겨우 구분 가능하였으나, 눈이 안 좋은 아이가 눈을 회복하여 두 눈을 뜨고 다니게 되어버리니 더욱더 그놈이 그놈 같았단 말이다. 안면인식 장애도 아니고, 치즈 인식 장애가 왔다. 더군다나 네 마리가 한꺼번에 뭉쳐있으면 죄다 똑같이 누렁 누렁 해서 하나의 치즈 덩어리 같이 보였기 때문에 더욱 혼돈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나름 밥 아빠라고 고양이 왕국의 일짱을 먹은 남편은 이미 치즈 고양이 감별계의 일인자가 되어있었으니,


“자 봐, 얼굴이 이쁜 놈이 양평이고, 좀 덜 한놈이(?) 양양이야”

“모르겠는데.. 두 놈 다 못생겼는데…”

“아이참, 그럼 잘 봐, 목도리 한 놈이 양평이고, 안 한 놈이 양양이야”

“목도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 건데?”


라는 식이다.

남편의 장황한 강의-주절거림-가 이어진다.


“아니 들어봐, 내가 지어주고 싶은 이름은 양양이랑 양평이야. 근데 저기 봐 봐. 한 마리는 너무 이쁘고 뽀송하고 턱시도도 이쁘게 입고 있잖아. 아니 저기 보란 말이야 목에서 가슴까지 이어지는 털이 하얀 아이. 눈 아팠던 애! 그래 쟤, 쟤말이야. 근데 그 옆에 얘는 깡마르고 못생겼고 털도 푸석거린단 말이지. 그러니까 못생긴 얘가 '양양'이란 이쁜 이름을 가지고 가야 더 이뻐지지 않겠어? 그러니까 저 마른 애는 양양. 그 옆에 뽀송한 애는 양평. 알아듣겠어?”


나는 남편의 열성 어린 수업에도 불구, 그 후로도 얼마간은 양양과 양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고(돌대 가리아님), 아이들의 덩치가 조금 커진 2개월 뒤쯤에나 남편의 미학론에 의거한 구별법을 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그니까 목도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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