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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Jul 06. 2022

양뚜기

쥐새끼 아니고 턱시도요


이상형의 길고양이가 있는가?



완벽한 탐미적 존재에 감히 이상형이라는 인간의 조잡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렇다. 난 들이댈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란 것들이 드글드글한 곳에서 힘차게 외치고 싶다.

"노란 놈 말고 다른 놈 좀 주세요!!!!!!!!!!!"

중장비 임대업을 하는 남편의 중장비에는 모두 노란 페인트가 칠해져있다.

'왜 노란색이야?'라고 물어보니 '별 이유 없어'란다.


별 이유 없이 노란색 중장비가 가득 찬 이곳에, 가뜩이나 노란 놈들이 터를 잡았다. 밥 주는 놈이 고양이를 택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밥 주는 놈을 간택하는 것을 아는데도 섭섭하다.

나도 말이다. 로망의 코숏이 있단 말이다..

내 로망 코숏은 통통한 고등어, 그리고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에 정확한 대칭의 무늬가 있는 턱시도냥이.(+핑크코와 흰 주둥이)다.그러나 나에게 있는 것이라곤, 누가 누군지도 제대로 구분 못해서, 양말을 두 짝 다 낀 놈, 한 짝만 낀 놈, 목도리를 한 놈, 눈탱이가 감긴 놈, 조금 색이 진한 놈 정도로 불리우는 협소한 베리에이션을 자랑하는 치즈 고양이들 뿐이란 사실이 이따금씩 지리하게 느껴졌다.



아~~지루하다 지루해 치즈고양이(염장지르는것맞음)
어우 드글드글해 치즈고양이~~지루해~~(역시 염장맞음)




쥐새끼 아니고 턱시도요.



그러던 어느 날

잠깐 눈 뗀 새 시꺼먼 털 뭉치가 컨테이너 사무실 아래의 빈틈으로 나왔다가 후다닥 사라진다.

쥐새낀가? 아니다. 저것은..


"턱시도다!!!!!!!!!!!"


뻐렁치는 마음.

이로써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가 여섯 마리로 증식되었다는 비극적인 현실은 안중에도 없다. 드디어!  노란 놈들 천국에  로망 묘가 들어오는구나! 아무래도 고양이의 신이 나의 쌍욕을 피하기 위해 여섯 번째 놈은 양심껏 로망 묘로 보내주었나 보다. 다행히 나는 단순했고 '사료를~조금  ~부으면 되지요~"콧노래를 부르며 쥐톨만한 턱시도를 왈칵 반겼다. 물론 사료는 남편이 준다. 나는 귀여워만 하면 된다.

한동안은 실체를 제대로 목격하긴 힘들었다. 놈의 경계심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잠시 시선을 비울 때 슬그머니 나와 이내 쏜살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씰룩거리고 도망가는 꺼먼 궁뎅이만 봐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그래서 아이의 생태를 파악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저 꺼먼 궁둥이가 보이는가.



양뚜기입니다.



언젠가부터 치즈들 틈바구니에 꺼먼 턱시도 한 마리가 넉살 좋게 껴있는게 대놓고 목격된다. 영락없이 깍두기 같은 모양새다. 눈에 든 이상 이름은 무조건이지. 그런고로 처음으로 나에게도 작명의 권한이 주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양남이와 양자로 잘못 끼워진 단추를 만회해야 한다! 쓰봉이 남기고 간 나머지 두 마리는 남편이 조금 더 도외적인 센스를 발휘하여 양평, 양양으로 회생을 도전했으나, 심플.미니멀.모디쉬한 것들과 가까운 내 맘에는 썩-들지 않았다. 모름지기 고양이의 이름은 이래야지


니 이름은 앞으로 뚜기다.


앞으로 살아갈 삶의 포지션과 태생의 기원을 암시하며, 돌림자와도 레이어링이 가능한, 미래 선구적인 네이밍

풀네임은 '양뚜기'다. 완벽한 이름을 짓고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나의 깊은 뜻은 아무도 모른다. 원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니까.



두남이의 심복이 된 양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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