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놓고 늘리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
양남. 양자. 양평. 양양. 뚜기. 두남 6마리의 고양이가 오글오글 모여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여기서 더 늘리면 안 될 거 같아. TNR을 알아보자"
캣맘이 될 자신도,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집고양이를 키우며 커뮤니티 등에서 주워들은 단어가 생각났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먹었고, 자주 먹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태어난 덕분인지, 쓰둥이들은 넓은 영역을 두고 가끔 들르는 두남이와는 달리 남편의 공장을 완전한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었다. 야생 냥이보단 마당 냥이와 가까운 모습의 녀석들에게서, 책임감이 묵직한 무게로 다가왔다. 우리를 스쳐간 원남과 영심이와는 결이 달랐다.
"아니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 이래매... 다른 놈들 오면 내쫓는 대매.."
그러게 말이다. 최초의 양남. 양자와 보호자 두남이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진 삼냥 체제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양평과 양양, 생판 모르는 뚜기까지 받아 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혹시 늬들.. mbti가 enfp신가요? 하루 온종일 공장 마당에 누워 눈알을 꿈뻑대며 밥시간만 기다리는 노란 놈들을 보고 있자니 "덮어놓고 늘리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위기감이 싸하게 와닿을 무렵 우리는 결심했다.
중성화를 시키자.
TNR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회사 소재지의 관할 구청으로 문의를 했다. 처음엔 부서도 잘 몰라서, 이리저리 회선이 옮겨지다 비로소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으나, 그들의 태도는 어쩐지 미적지근했다.
"현재 tnr 접수는 끝났고, 이번 연도엔 tnr 지정병원도 우리 시에 선정이 없는 걸로 압니다"
TNR은 세금으로 진행하는 거라 두 수가 정해져 있을 거라 예상은 했다. 그렇다면 자비로라도 수술을 하고 싶었고, 길고양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지역 tnr 연계병원이라도 있을까 하고 문의했으나 그마저도 마땅찮았다. 결국 소득 없이 통화 종료. 남편과 오랜 고민을 했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리스크가 크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중성화는 해야 한다는 결론을 짓고 동네 동물 병원에 백방으로 전화를 돌려보았으나 대부분은 야생성과 전염 병력의 가능성이 있는 길냥이의 중성화 수술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으며, 너무 비싼 비용을 부르거나, 혹은 접종 증명서를 가지고 오라는 식으로 세련된 방식으로 우회하여 거절을 하였다. 아니 슈방. 잡는 것도 가능할까말깐데 접종 증명서를 우케 가져오냐고요. 좌절 직전 다행히도 우리 지역과 살짝 떨어진 병원에서 아이들을 받아주시겠다고 하였다. 오오케이. 일단 병원은 섭외했고, 아이들만 포획하면 된다.
여기서도 비기너 캣맘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길냥이를 잡는 '포획틀'이라는 존재를 몰랐다. '굳이 길냥이를 잡을 일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포획에 특화된 도구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남편이 주문한 건 "사각 철장" "철장 케이지"등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개장 같은 것이었다. 나름 심사숙고 아래 우리 앞에 도착한 철장 케이지를 보며 "오우 완벽해!"를 외쳤으나 그것이 곧 거대한 피바람을 몰고 올 것임을 우매한 중생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양남이와 양자는 워낙 손을 탄 아이들이라 번쩍 들어 케이지로 이동이 가능했다. 문제는 뚜기였는데, 걱정과는 달리 돋보이는 경계심과 비례하는 호기심 덕에 너무나 쉽게 포획이 되었다. 연이은 성공에 "뭐야 별거뚜 아니네" 하며 의기양양하게 준비했던 하얀 덮개를 (내가 미싱으로 직접 박아 만든 특화 가림막이다!!) 씌우고 병원으로 출발! 케이지 1에 양남과 양자를 함께 넣었고, 케이지 2에 뚜기를 넣었다. 이동하는 내내 뭔가 박박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씩 날카로운 야옹!!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경계심 강한 뚜기가 내는 소리겠거니 했다. 15분여를 달리자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은 큰 길가에 위치한 상가 1층에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길가에 차를 세운 후 고양이를 이동시키기로 했다. 주차장의 소음이 큰 스트레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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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계획이었다.
하지만 5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그 동네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유혈 낭자와 하늘을 가르는 우렁찬 비명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