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똥 눈물
멍청했다. 그래 참으로 멍청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양남이와 양자를 한 케이지에 넣은 것부터가 예견된 불행이었을까. 둘이 워낙 사이가 좋고, 순하기에 가능할 줄 알았다. 되도록 빨리 중성화를 시키고 싶은 조급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차에서 내려 양남이와 양자가 들어가 있는 케이지를 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덮개를 씌우고 있어 내부 사정은 파악이 안 되지만 어쩐지 바닥을 박박 긁어대는 소리도 줄어든 것 같다. 남편이 케이지를 받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인도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케이지 덮개 아래에서 뭔가가 쑥 흘러나왔다. 뒤에서 뚜기가 잘 있는지 덮개를 슬쩍 올려 지켜보고 있던 나는 눈을 의심했다. 흘러나와선 안될 것이 나오고 있었다. 가령 노란 대가리..? 같은 것 말이다. 양자다. 마치 양자가 액체처럼 케이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빠 오빠!!!! 고양이 나온다!!!!!!!!!!"
라고 외치는 그 찰나에 양자의 몸이 순식간에 케이지에서 빠져나왔다. 고양이는 머리만 통과하면 그다음은 프리 패스라더니. 그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왕복 6차선의 사거리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허옇게 질린 남편이 케이지를 내려놓고 양자를 온몸으로 껴안았다. 태어나서 공장 마당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양자에겐 이 상황이 말도 안 되는 것일 터, 고양이로써 본능에 각인된 생존 욕구에 충실했으니
"캬캬캭캬오오옹!!!!!!!!!!!!와와오아왁!!캬아옹!!"
양자의 날카로운 괴성이 사거리를 가득 메웠다. 소리가 어찌나 크고 처절했던지 상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여기서 놓치면 절대 안 된다는 마음으로 온몸을 던져 양자를 껴안고 병원 앞까지 달려왔으나 손톱 발톱 입질까지 해대며 용수철처럼 위로 튀어 오르는 맹수를 제압하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기어코 남편 품에서 뛰쳐나간 양자는 바로 앞의 상가건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에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이리 허술한 방식으로 살아오진 않았는데... 10년 넘게 집냥이를 케어하며 어떠한 안전사고도 없이 잘 키워왔고 케이지를 고르고 아이들을 포획하고, 병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대충대충 넘긴 것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결과론적으로 개존망이 돼버린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이 모든 상황이 꿈같았으며, 자칫 양자가 찻길로 달려들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아찔함을 느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길고양이 TNR인데, 초보 캣 대디와 캣맘의 안일함과 무지함 그리고 멍청함의 대가는 일시불이였다. 안쪽이 너덜거리다 못해 걸레짝처럼 난도질당한 남편의 팔에서는 새빨간 피가 송골송골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남편은 피를 뚝뚝 흘리는 팔을 대충 슥슥 닦더니만 비장한 표정으로 "나머지 고양이부터 옮기자" 하며 케이지를 아래위로 단단히 붙들어 잡고 뚜기와 양남이를 조심스레 옮겼다. 남편이 간단한 처치를 받는 사이 나는 미리 나와있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에게 담요를 얻어 양자를 잡기 위해 상가로 들어갔다.
영웅은 달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이 작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조력이 있었으니, 그때의 인사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다. 상가 사람들은 양자와 남편의 악다구니를 볼 때 무언가를 감지하셨던지, 고양이가 상가 안 건물로 튀어 들어가자마자 어디선가 "앞문 뒷문 다 닫을게요!"라는 외침이 들려왔고, 내가 들어서자 건물의 문 앞에서 한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 저기 엘리베이터 앞에 있어요"라며 양자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엘베 앞 구석자리에는 과연 노랗고 조그마한 우리 양자가 발발 떨며 구겨지듯 처박혀 있었고, 내가 다가가며 "양자야" 하고 부르니 양자는 눈물 젖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가늘게 "애웅"하고 울었다.
"미안해 우리가 너무 미안해"
담요로 조심스레 양자를 덮어 품에 꼭 안아 병원으로 데려왔고, 중성화를 위한 수속까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은 불과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졌고, 우리는 30년은 늙은 몰골로 같은 건물에 위치한 정형외과로 향했다.
이 사단의 원인은
1. 허술한 철장 케이지
2.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것
3. 고양이의 야생성을 얕잡아본 것
4. 양자와 양남을 하나의 케이지에 넣은 것.
그중 4번의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마리의 무게가 더해져 인해 케이지가 밑으로 쳐지며 빈틈이 생겼고 지속적으로 바닥을 긁어대며 기회를 엿보던 양자가 그 틈에...(중략) '얘네는 워낙 서로 의지를 많이 하니까 하나의 케이지에 넣어도 될 거 같아'라며 남편을 종용했던 나는 연신 "이런 멍청이 머저리" 라며 자학하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탔어도 길고양이는 길고양이. 집냥이와는 야생성에서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걸 왜 망각한 걸까? '캣맘이 될 맘은 없었는데요. 그래서 별생각 없이 살았다가 이렇게..' '우리 애들은 이런 적 없었는데..'라는 변명은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사그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었다. 그저 어딘가에라도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싶을 만큼 자괴감이 씨게 밀려왔다. 또한 남편의 상처가 생각보다 컸기에, 나는 더욱 좌절을 느꼈으며 상처를 본 의사와 간호사는 기함을 했다.
"어디서 이렇게....?"
".. 고양이가.."
"아...."
이로써 남편에게는 남은 것과 , 잃은 것이 생겼는데, 남은 건 상처요 잃은 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남편에게 주신 겉옷이었다. 놀랜 양자가 지린 대변으로 오물 범벅이 된 채 봉지에 뚤뚤 말려 버려져야 했기 때문이다.
레알 피똥 눈물이었다.
공황이 오기 직전의 나와 , 너덜거리는 육신을 추스르는 남편. 우매해서 가여운 우리였으나, 노란 고양이의 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잠시 후 우리를 전멸시킬 궁이 날아왔으니.
"임신입니다."
"네?!????????????????"
"주수가 꽤 됐네요? 곧 출산하겠어요. 한 서너 마리쯤? 되는 것 같아요."
양자가 임신을 했단다.
에필로그 1. 양자와 함께 있던 양남이는 어떻게 됐냐고요?
그 난리 통에서도 케이지 안에 얌전히 있던 양남이. 동그란 눈으로 "아웅? 거리는 게 전부였다.
에필로그 2. 가는 내내 바닥을 긁고 소리를 질러댔던 건 뚜기가 아니었다. 양자였다. 뚜기는.... 자고 있었다..
에필로그 3. 양자는 아직 청소년 묘였다. 발정의 증상도 전무했다. 길냥이의 임신은 빛보다 빠르다는 걸 배웠다.
에필로그 4. 이 이야기는 2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완벽한 고양이 요새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