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는 왜?로 범벅이 되었다.
전날의 이슈덕에 극도의 불안감으로 잠을 청하지 못하고, 가장 어둡고 조용한 작은 방구석에서 쭈그리고 있다 새벽에서야 겨우 쪽잠에 들 수 있었던 삼일차 아침 9시쯤.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라고 표시된 단어가 이렇게 공포스럽고 무서울 줄이야. 한참을 울리던 전화를 받으니 지난밤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고 당신이 먹고 싶은 것만 줄줄이 읊어낸다. 그저 먹을 것. 먹을 것 이야기뿐이다. 식이조절이 안되어 악화된 증상으로 입원. 이 난리가 났는데도 그저 먹고 싶은 것만 찾는 이기적인 모습에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
"단팥빵도 먹고 싶고 , 너희 집 근처에서 파는 연어초밥도 먹고 싶은데, 간호사들에게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된다 하면 지금 바로 좀 사와라 "
설득할 힘도 없다. "아빠, 내가 조금 피곤하니까 쉬었다 다시 전화할게."라는 대답에 돌아오는 건 짜증 섞인 아빠의 목소리다. "너는 어떻게 된 게 맨날 아프냐!!? 다 필요 없다!!"
뚝- 대답할 새 없이 끊긴 전화기를 들고 있으니 온몸의 피가 차갑게 굳는 듯하다. 요란한 심장박동 소리만 머리를 울려댈 뿐. 이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구별 안될 아득한 불안감이 모든 감정의 뿌리가 되었다. 이 상황이 왜 생긴 건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었으나 알 수 없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기 때문이다. 아빠의 성격은 원래부터 호전적이었고 짜증이 많았다. 그러니 이것이 과연 어떠한 질병의 징후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딸인 나만이 구별할 수 있었으나 뇌경색? 뇌졸중? 성격 변화가 생길법한 질환들을 하나씩 다 끄집어내 봐도 명확하게 납득이 될만한 이유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 모든 걸 인정하기 싫은 나는 전화를 걸어 불안은 기우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맘만 더 가득이다.그래서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아빠, 입원해 있으면 식사는 병원밥을 드셔야지, 그래야 빨리 퇴원하지. 그리고 나한테 그렇게 소리치지 마. 갑자기 화내면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니까."라고 부탁을 하니 아침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빠가 대답한다."기분이 오락가락한 게 마음이 복잡하다. 자식인 네가 이해해야 모두가 편하니 좀 이해해라."
알듯 모를듯한 대답이었지만 이걸로 나마 약하디 약한 희망은 연장된다. 잠시의 안도. 잠시의 평화. 그리고 잠시의 도피. 하지만 불행히도 아빠의 기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따라서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불안에 시달렸다. 저녁에 한번 있는 면회는 이제 나 혼자로는 버거운 수준이라 무조건 남편을 대동해야만 했다. 점점 이상해지는 아빠의 얼굴을 보기가 무서웠기에..
'동네에 소문난 효녀'
부모한테 잘하기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고 나름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아빠의 앞뒤 안 맞는 말에 단 한마디도 다정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보여주기식 효녀였던 걸까. 짜증을 울컥 내곤 밀려오는 자괴감에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들댄다. 그러나 인내심 많고 차분한 남편은 나와 달리 아빠의 말을 모두 들어주었고 그 덕에 아빠는 이것도 먹고 싶다,저것도 먹고 싶다, 너무나 많은 요구사항을 면회시간 종료를 알리는 간호사가 올 때까지, 남편에게 꼭꼭 눌러 말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듯 말이다. 허겁지겁 말을 더 꺼내려는 아빠에게 남편은 "아버님, 내일은 조금 일찍 올 테니 그때마저 이야기하세요"하며 부드럽게 달랬고, 아빠는 내일 진짜 오는 거 맞냐며 몇 차례나 확인 후 침대에 누우셨다. 곧 기다렸다는 듯 병실이 소등되고 그제야 우린 집에 갈 수 있었으나 돌아가는 차 안에서 몇 번의 전화가 울렸으며 역시나 아빠였다. 받으면 횡설수설. 받지 않으면 계속해서 전화가 왔다. 점점 전화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불안이 목구멍을 넘어 구역감으로 올라왔다.
새벽 5시, 남편 핸드폰의 벨소리가 적막함을 깬다. 발끝이 싸해지며 귀에서 찌잉 하는 소리가 난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안.
'아빠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던 내 심장은 다시 애처로우리만치 거세게 쿵쾅댄다.
잠에 빠지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무던한 남편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이내 옆으로 누워 자세를 바꾼다. 핸드폰을 귀에 턱 올리고 "네 아버님"하고 대답을 하니 건너편에선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는 건지 듣는 건지, 모를 모양새로 가끔씩 '네.. 네' 대답만 하는 남편의 뒷모습에 숨이 막혀 거실로 도망치듯 나왔다.
어제 점심즈음 집으로 온 엄마도 벨소리에 잠을 깼는지 내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왜? 왜 전화했대?"며 불안 섞인 목소리로 물어본다.
내 부모님은 법적으론 별거 상태지만 정신적으론 완벽한 이혼 상태다. 아빠는 나에게도 카르마지만 엄마에게도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동지이자 전우라고 할 수 있다. 전우의 불안은 삽시간에 동화되고 우리 모녀는 애꿎은 손가락만 까득거리며 남편의 전화가 끊기기만을 어둑하고 스산한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이내 남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저는 법적 보호자가 아니니,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하시네요. 제가 본인 딸을 납치했다고요. "
옆 집개가 똥을 쌌다네요 ㅎㅎ같은 별일도 아니라는 투로 말하고 다시 들어가 버리는 남편의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 머릿속 깜빡거리던 경고등은 결국 진돗개 1호 수준으로 그 심각성이 격등하였다. 완전히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아빠는 자꾸 이상한 말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 증상을 "섬망"이라고 하셨다.
노인환자, 전해질 밸런스가 깨진 환자들이 간혹 보이는 섬망이라는 증상은 낯선 환경, 장소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 공간감각, 시간 감각 등이 둔화되어 생기는 일시적인 증후군 같은 거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실 거고 집으로 가시면 정상화되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했다. 문득 아빠를 입원시키던 날,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간호 데스크 안쪽 치료실에 배드 채로 격리되어 2초 간격으로 소리를 지르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잔뜩 쉰 목소리로 높낮이도 , 템포도 정확하게 기계처럼 "아-아-"하는 소리를 내시고 계셨는데, 철딱서니 없이 처음 보는 광경에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바로 섬망이었던 것이다. 미친 듯이 섬망을 검색했다. 아빠와 일치하지 않은 증상들은 다 버려버리고 일치하는 증상만을 수집하여 "그래 우리 아빤 너무 힘들어서 일시적으로 섬망이 온 거야"라고 단정 지었다. 너무나 무섭고 외로웠다. 생각지도 못하게 일상의 난이도가 하드코어모드가 된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 어디에서도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이 없었고 그리하여, 그래서 모든 정보는 내게서 나왔다.
"섬망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 거래, , 이렇게 하면 좀 좋아진대.
잠시라도 검색하지 않으면 불안과 공포가 나를 잠식해 버릴 것 같았다. 맘이 좀 진정될라 치면 수시로 울리는 전화벨이 나를 치매나 섬망 등을 무한 검색하게 하는 로봇처럼 만들었다.
입원 5일 차. 언제나처럼 병원에서 전화가 울린다.
"어르신이 좀 문제가 있으셔서요..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여러 번 입원을 겪었으나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서 이렇게 호출이 자주 온 건 처음이다. 아빠가 너무 진상이니 일반병실로 이동하라는 거 아닐까? 그럼 내가 아빠를 하루종일 감당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염려를 들고 병원에 가니 아빠 자리 옆에 아침/점심 식판이 치워지지 않은 채 놓여있었고 그 위를 초파리가 왱왱 날아다니고 있었다.이건 또 뭐 하자는 거지? 물끄러미 보고 서있으니 마침 근처를 지나던 간호사분이 다가와 말했다.
"어르신이 식판을 치우려고 하면 화를 너무 내셔서.. 위생문제도 있고 좀 치워야 할 거 같은데 보호자분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아빠 상태는 그리 공격적이지 않았으나, 식판에 손을 대면 눈빛이 바뀌며 “건들지 마라”라고 낮게 윽박질렀고,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내가 먹은 음식을 사진을 찍어 증거로 남겨둬라."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슨 대답을 하겠는가. 황당한 표정으로 아빠를 지켜보다 달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알겠어 아빠, 사진 찍어 놓을게. 그러니까 식판 치우자~~"
하고 사진을 두세장 찍어 보여드리고 나서야 식판의 이동이 허락되었다.
이가 없는 아빠가 오물오물하다 뱉어놓은 음식찌꺼기들이 모여있는 식판이 지금 내 머릿속과 뭐가 다른가 싶다. 간호 데스크에 가서 "아버지가 이상행동이 좀 심해지셔서... 또 식판을 못 치우게 하시면 사진 찍는 척이라도 해주세요."라는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부탁을 했다. 다행히 간호사 선생님들은 웃으면서 걱정 말라해 주셨고, 아빠에게 다시 돌아가니 저녁식사 시간이자 면회 종료 시간이었다. "아빠 나 갈게-"하고 인사하니 안된단다. 기다렸다가 본인이 밥 먹기 전 사진과 다 먹고 난 후 사진을 찍어놓고 가란다. 이제 이 상황에서 왜?라는 의문은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단어가 되었다. 왜?라고 물어봤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는 왜?로 범벅이 되었다. 여기저기 기억도 못할 카페에 남겨둔 섬망 증상이 어떤가요?라는 글에 섬망은 본인이 원하는걸 마구마구 말하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는 답변.. 자식이 누군지 기억을 못 하시거나,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밤인지 낮인지. 인지를 못하시는 증상이지.. 자기가 밥을 먹은 걸 기록하라는 둥, 자기 밥 먹는 걸 보고 가라는 둥 너무나 또렷한 요구사항이 보이는 행동은 섬망보단... 뭐랄까.. 다른 것.. 일수도 있단다. 그래서 그날 아빠가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기다렸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저 머릿속에 아빠가 왜? 이러지.. 하는 물음만 질척하게 눌어붙어 집에 오는 내내 그것을 떼어내려고 한 기억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