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사기꾼이다!!!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때쯤 내가 남편에게 보낸 메시지를 뒤져보니, 아빠가 뭐래? 아빠는 뭐 했대? 아빠 몸 상태는 어떻대? 죄다 이런 말뿐이다. 꽤나 절절한 효녀 같지만 실상은 훼이크다. 밤 낮 없이 전화 폭탄을 퍼붓는 아빠에게 시달렸던 일주일. 병원에서 간이로 재본 혈압계에 심박수가 120이 찍혔다. 이러다가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싶어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아빠의 전화번호 차단하기를 눌렀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다 언젠가 폭발한 내가 뱉어내면 안 될 말들을 아빠에게 쏟아부을 것 같아서 차단 버튼을 꾹 누르고 뻔뻔한 딸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빠가 나 대신 전화 폭탄 좀 받아줘 "
부끄러운 마음을 당당함으로 포장해 남편에게 요구했다.
‘그래도, 본인의 부모가 아니니까 나보단 정신적인 면에선 괜찮지 않을까?’ 동네 아저씨가 행패 부리는 것처럼 생각해 주길 하는 마음 75%, 조금은 맘 졸이고 걱정하길 원하는 마음 25% 정도의 비율정도로 임해주면 더욱 좋고.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참고로 남편의 별명은 인공지능로봇. 감정의 파도가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바다가 나라면, 남편은 별안간 돌무더기 한 포대를 던져놔도 이내 잔잔해지는 호수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편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새벽엔 본인도 차단을 해놓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그렇게 며칠간은 남의 아들에게 나의 아빠 안부를 물어보며 하찮고 작은 도피처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제 집과 병원은 마치 이 세계와 현실 세계처럼 이질적인 분리감이 생겨버렸다. 그리하여 난 병원 밖을 나가는 순간 모든 수신을 남편에게 위임했고 이따금씩 남편에게 “아빠 어떻대?”라고 물어봄으로써 정신적으로 충격받을만한 이슈를 걸러낸 필요한 부분만 보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 면회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아빠의 보호자고 그것은 책임이자 자격이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감히 남편에게 넘길 수 없었다. 아빠를 보면 화나고 괴로움에 눈을 돌리고 싶지만, 그에 관한 모든 선택은 나만이 할 수 있었기에 늘 비장하게 병원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아빠의 상태는 여전히 들쑥날쑥했지만 평균적으로 분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인간의 감정을 관리하는 컨트롤 본부가 있고 그 안에 5개의 감정이 산다. 버럭. 기쁨. 슬픔. 까칠, 소심
매일 미지의 괴물과 싸워야 하는 용사와 같은 아빠의 본부엔 버럭이만 바글바글한 것 같았다 도무지 어떤 포인트에서 화를 내고,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상한 건지 예측불허 이해불가였다. 그래서 매일 살얼음판이었고 면회는 미지의 괴물과 싸워야 하는 용사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했다. 그래도 우리야 보호자 신분이니 분노의 기원을 찾는다며 헤매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병원의 입장은 달랐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고요, 어르신 섬망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서 다음 주 중 퇴원을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잔여 부종은 처방약 복용하시고 상태를 보는 게 나을듯합니다”
회진 오신 순환기내과 과장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퇴원 이야기가 나왔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부종은 하나도 안 빠지고 상태는 날로 나빠지는것 같은데 벌써 퇴원이라니… 우리 아빠가 진상 환자라 그런 걸까? 지레 찔린 나는 한껏 자세를 낮춰본다.
“선생님, 아빠 다리가 저렇게 심하게 부어있는데.. 저대로 퇴원하면 그날로 다시 119 불러서 병원 들어오실 거예요
조금만 더 치료하고 퇴원하면 안 되나요? 부탁 좀 드릴게요"
“혹시 뇌경색은 아니실까요? 뇌경색이 오면 저렇게 감정 변화가 심하시다던데..”
“아니면 치매는 아닐까요? MRI라도 한번 찍어볼 수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이 거절하실까 봐 부탁 뒤로 부탁이 허겁지겁 이어진다.
“그럼 내일 조영술 한번 해보도록 하고 결과에 따라 결정하죠.” 하며 퇴원 이야기는 잠시 보류되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표정에서 피곤함이 아주 살짝 스쳐 간 듯 하지만..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이런 환자가 아빠뿐이겠어? 그날 그 할머니도 섬망 환자였잖아.’
뻔뻔함과 자기 합리화를 1:1 비율로 섞어 머릿속에 발라 문지른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담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선 나에게 아빠는 “연하게 탄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라는 요청을 하였고 마침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은 (아빠의 분노를 아직 겪어보지 못한 듯한) 나이트 타임 뉴페이스 간호사분이 “절대 안 돼요 어르신. 큰일 날 소리 하신다”라고 단호하게 거절.
‘어 어으.. 아..’하는 나의 소리 없는 외침과 함께 아빠의 분노는 다시 시작되었다.
조영술은 보호자 사인 후 다음날 이른 오전 유선 동의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뭔가 문제가 있길 바랐다. 아빠의 감정 변화가 질병에 의한 것이길,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치료가 될 수 있길.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희망이 있었다. 웃긴 말이지만 예전에 본 시트콤에서 인자하던 주인공 아저씨가 뇌경색에 걸려 갑자기 극대노 상태로 돌변. 가족들이 당황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우리 아빤 뇌경색 뇌졸중 전적이 있으신 분이라 혹시, 만약에, 그런 거라면 지금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 하하~이래서 그러셨구나~” 하고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 별문제가 없으신데요”로 박살이 났다.
아침저녁으로 걸려오는 전화 50번
간호사들이 날 무시한다.라는 소리 한 20번 정도
연어초밥과 아메리카노 빵을 대령하라는 요구 10번
자기는 소변줄도 뺐으니 퇴원시켜 달라는 강한 의지 5번 정도
남편에게 너는 자격이 없는 놈. 나쁜 놈. 내 딸을 납치해 간 파렴치한 놈
나에게는 괘씸한 것. 다른 사람 보호자는 하루 종일 와서 수발도 든다던데 너는 대체 뭘 하고 다니냐.
우리 부부를 싸잡아 너희들은 아주 고약한 것들이다. 모자란 것들. 등등..
상대의 입장에서는 1도 생각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과 아픈 말들이 아빠의 진심이라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아빠는 우리 부부의 케어를 늘 못마땅해했고,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불만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발발 초반. 대형병원에서는 면회시간과 보호자들의 상주 시간을 제한 두고 있었고 아빠의 경우 간호 간병 통합 병동에 배정되어 보호자가 늘 상주해 있다고 해도 할 만한 게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아니었거니와 , 소변량 기록 때문에 배변은 모두 침상에서 이루어졌고 다리의 부종 때문에 이동 제한이 권고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간호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빠의 분노와 그로 인한 잦은 콜 때문에 내가 병동에 있길 내심 원하는 눈치였지만 병원은 집과 차로 10분 거리고 나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빠가 원하는 것(24시간 상주하며 수족처럼 본인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것)을 다 채워주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 아빠의 여과 없이 터져 나오는 감정들을 받아내기 버거웠음도 인정한다.
하지만 변명해 보자면 나도 시간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고, 아침이 오면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하는 생각에 막막함이 있었다. 아빠의 활동 시간인 오후에는 언제 간호사실에서 콜이 올지 몰라 온몸이 긴장 상태였다. 늘 하루에 한두 번씩은 호출을 받았었던 것 같다. 단언컨대, 내 34년 인생 중 가장 혹독하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들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병원에서도 적응되었는지 가벼운 이슈의 경우 콜 없이 면회시간에 브리핑을 해주기도 하고 ,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가는 하루도 있어 간신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82세의 아빠는 친구가 없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은 이미 노환이나 병으로 사망하셨거나, 연락이 안 되거나, 뭐 그렇다. 그럼에도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로 종종 찾아와 주기적으로 식사를 하시는 홍씨,김씨로 불리우는 두분의 친구가 계시는데 홍 씨 아저씨와는 내 결혼식 날 축의금을 안 냈다는 이유로 손절(;)을 하였고, 김 씨 아저씨와는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아빠는 가족도 없다
한 분뿐인 유일한 혈육인 고모는 10년 전 돌아가셨고 고모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모부는 아빠보다 연세가 많으셨으니 아마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고로
아빠에겐 나밖에 없다.
이날은 병원에서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아빠가 주사액을 넣으려고만 하면 크게 화를 내시며 거부한다는 것이다. 치료에 관해서는 병원에서도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없고 그때는 바로 보호자 호출이다. 전화를 걸으니 끊으라며 소리를 지르시고 난리가 났다. 뒤통수에 딱따구리 한 마리가 붙은 기분이다. 골이 지끈지끈 울려댄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친구 두 분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어른이 필요했다.
김씨 아저씨는 지방에 계셔서 당장 올라오기가 곤란하다 하셨고, 홍씨 아저씨는 바로 오겠다며 병원이 어디냐 몇 호실이냐 적극적으로 물어보셨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른들의 듬직함. 눈물이 핑 돈다.
시간 약속 후 오전 9시쯤 병실입구에 도착하니 얼굴이 시뻘게져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침대에 걸터앉아 씩씩대는 아빠가 보였다. 혼자 들어가기가 무서워 아저씨를 기다리다 함께 병실에 들어갔다. 결혼한 지 4년 전쯤 되었으니, 둘의 조우는 꽤나 오래간만일 것이다. 아빠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조금 당황스러워 보였으나 곧 페이스를 되찾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면 손절이고 자시고 상관이 없다는 듯 열심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30분. 어찌나 열광적이었는지, 아빠의 혈당이 떨어지는 바람에 , 간호사가 급히 포도당을 투여하고 못다 한 처치를 마저 시작하며, 자연스레 면회가 종료되었다. 그동안 병실 복도에서 기다리던 나에게 다가온 아저씨는 힘내라며, 정신 꼭 잡고. 다음에도 무슨 일 있으면 자신을 꼭 부르라며 위로해 주었다. 아빠에게 앞으로 치료에 협조적으로 임하겠단 약속을 몇 번이나 받았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함께. 본인도 암에 걸렸으나 위치가 좋은 케이스라 완치가 되었다, 아빠도 꼭 좋아질 수 있을 거라며.. 말 중간중간에 뜬금없이 유황이 들어간 물 이야기를 꾸준하게 하셨지만 이 타이밍에 유황물이 등장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은 어른의 따듯함에 밀려 사라져 갔다.
그보다도 ‘또 연락드려도 되겠지..?’하는 생각과 나름 순발력 있게 고비를 넘겼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매번 격하게 패배하다가 처음으로 승리의 깃발을 획득한 느낌이라 조금은 들뜬기분으로 흥얼대기까지 할 수 있었다.
‘아빠도 오랜만에 후배 만나서 좋고, 나도 아빠 치료받아서 좋고, 홍 씨 아저씨도 아빠와 풀었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일 거야!”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enfp 인 나는 이럴 때 편하다. 구질한 기분이 훌떡 뒤집히기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뒤통수를 두들기던 딱따구리는 어느새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있었고 집에 오는 길은 꽤나 경쾌했다. 걱정하던 남편에게도 ‘나 아빠랑 홍 씨 아저씨 만나게 해 줬어~~ 이제 화도 안 내고 치료도 잘 받는다고 하셨대! 임기응변 장난 없지?” 라며 기세등등하게 카톡을 보낼 찰나에 아빠’s 두 명의 친구 중 남은 하나. 김 씨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혹시 홍 씨한테 연락했니? 그 사람 나에게도 큰돈 빌리고 잠적하고 너희 아빠에게 손해를 아주 많이 보게 한 사람이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사기꾼이니까 절대 연락하면 안 된다. 혹여 다시 연락 와도 받지 마라 꼭!!!”
그렇다.
손절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듯함은 와장창 깨져버렸고
이내 차갑다 못해 눈물 나게 아린 외로움이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