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 소파에 누워 "명절 국내, 해외 휴가지"를 검색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뉴스에선 얼마 전부터 중국에 퍼진 전염병이라는 우한 폐렴에 대한 뉴스 보도가 한창이다.
"글쎄, 어머니들께 물어보자. 해외여행은 지금 예약하기엔 좀 늦지 않았을까?"
남편이 답한다. 갑자기 잡힌 휴가 계획에 한껏 들뜬 나는 어디든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정신없던 입원 첫째 날 , 저녁 면회 종료 후, 집에 가려던 내 손에 아빠가 쥐어준 흰색 봉투 덕분일 것이다.
봉투 안에는 5만 원짜리 20장이 가지런하게 담겨있었다.
"이번 구정엔 나 신경 쓰지 말고 사부인이랑 , 안서방이랑 해서 콧바람 좀 쐬고 와~"
"에엥? 아빠가 돈이 어딨다고.."
하면서도 아빠가 주는 돈봉투를 냉큼 받아 챙긴다.
내심 , 이쯤이면 한 번쯤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달이 드리는 생활비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이니 망정이지 꿈도 못 꿀 이야기다. 그렇기에 나는 남편으로부터 받는 아빠 생활비에 대한 부채감이 항상 있었고 그래서 소파에 누워 조금은 당당한 마음으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돈에 내가 모아둔 비상금 좀 보태서 해외를 나갈까?"
태국, 베트남,.. 동남아 여행지가 물망에 올랐다. 뉴스에 종종 나오는 전염병은 남일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고민을 하며 아빠의 입원 첫날이 지나갔다.
입원 둘째 날 오전.
한껏 상기된 목소리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나 오늘 소변줄 뺐다. 너무 편하고 컨디션이 좋으니 오늘은 면회 안 와도 된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
이상하리만치 하이텐션에 빨간 경고등이 반짝 켜졌으나, 깨끗하고 체계적으로 환자를 잘 돌봐주던 ㅅ병원을 아빠는 항상 만족스러워했고, 오래간만에 받는 풀케어 서비스(?)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나? 하며 어제 받은 흰 돈봉투를 만지작대며 스물 거리는 불안을 잠재웠다. 돈의 액수보다도 명절 기간 동안 본인은 병원에서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걱정 말고 여행을 다녀오라는 그런 세심한 배려까지 할 수 있는 상태니까.
'괜찮겠지..'
덕분에 면회시간이 비어버린 오후엔 동네로 오신 시어머니와 데이트를 했다. 밥도 먹고 번화가에서 속눈썹 펌도 시켜드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저녁시간이 되어,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고 저녁은 집 앞에 새로 생긴 무한리필 갈빗집을 갈까 시켜먹을까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와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김ㅇㅇ어르신 보호자 되시죠? 지금 좀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어르신이... 식판을 던지시고 1시간째 소리만 지르고 계세요."
간호사의 다급한 말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뒤편으로는 아빠 목소리처럼 들리는 남자의 고함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와중에 드는 생각은 '딴 환자 보호자한테 잘못 건 거 아냐?'였다. 다소 욱하는 성격을 가진 아빠지만 이유 없이 밥을 엎고 난동 부린 적은 한번도 없는데.. 놀란 표정의 시어머니와 남편에겐 별일 아니다. 집에 계시라 금방 오겠다. 말하고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하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오후 3시쯤 옆자리 사람이랑 좀 일이 있었다, 근데 걱정할 거 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라고 말하던 아빠와의 통화내용이 기억났다. 오전과 달리 목소리의 온도차가 느껴졌고, 기분 좋으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 걸고 농을 하기 좋아하는 아빠가 혹시라도 옆자리 환자를 귀찮게 해서 다툼이 생겼나? 싶어 한 시간쯤 뒤에 확인차 다시 전화를 거니 왜 이렇게 귀찮게 쨍쨍 대냐며 짜증을 확 내며 전화를 끊었던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손발이 차가워져 저릿 거리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로비에서 면회증을 목에 걸고 아빠 병실로 향하는 길이 너무 멀었다. 그 와중에도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는 부질없는 희망에 기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 아빠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저 김ㅇㅇ환자분 보호잔데요.."
"아 오셨구나. 보호자 분이 좀 오셔야 진정 하실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빠의 병실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나간다.
"무언가에 역정이 많이 나셨는지, 식사를 두는 탁자를 손으로 쾅쾅 치시면서 고함을 치시기도 하시고, 저희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시고 도통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면서도 믿기지 않는 마음이 들었다. 뭔가 묘한 기류가 느껴지는 병실로 들어서니 침대에 반쯤 걸터앉아 고함치듯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는 아빠, 그리고 옆자리에 짜증 난 기색이 가득한 아저씨 한분이 눈에 띄었다. 아빠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물었다.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왔냐? 내가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아빠 좀 나와봐"
"뭐 때문에 왔냐고!!!"
"일단 나와서 이야기 좀 해!!"
짜증이 치받쳐 탁 쏴대니, 퉁퉁 부은 발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신발과 한참을 실랑이하다 뒤축을 대충 구겨신고 일어서려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몸을 휙 돌려 복도로 향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우리 부녀를 주시하던 간호사가 저 멀리서 다가오며 물었다.
"보호자분~어디 가시게요?"
"아빠랑 이야기 좀 하려고요"
"(데스크 안쪽의 공간을 가리키며) 바로 옆에 상담실에서 하셔도 되는데.."
"아니요. 저기 휴게실로 가서 이야기할게요."
병동 복도 양쪽 끝에는 큰 티브이와 의자가 있는 휴게실이 있던 게 기억이 나서 간호사 대답은 듣지도 않고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숨 막히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다른 보호자에게 잘못 건 게 아녔구나 하는 절망감이 통증처럼 쑤셔온다. 내 머릿속에서 간헐적으로 번쩍이던 경고등은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두 사람을 시뻘겋게 비추고 있었다. 거북이처럼 내 뒤를 느릿느릿 따라오던 아빠와 휴게실에 도착하니 환자 두어 명이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 이런 젠장. 어쩔 수 없이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막 앉은 아빠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아빠. 솔직하게 말해봐. 진짜 식사시간에 소리 지르고 뒤집고 그랬어?"
"간호사가 전화해서 널 불렀구나! 생각할수록 고약한 것들이네 그것들."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그것들이 뭐야, 그리고 그분들이 뭐가 나쁘다고 자꾸 화를 내?"
"내가 병원 입원한 이래 가장 일찍 소변줄을 뺐다. 이건 기적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래서 기분이 좋아서 간호사한테 자랑하니까 이것들이 나를 얄밉게 보고 이지메를 하더라.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대답도 안 하고 화가 나서 엎었다. 싸가지 없는 것들, 나를 뭘로 보고 말이야.. “
82세 우리 아빠는 귀가 좋지 않다.
노환으로 인한 난청이 심해지셔서 아빠 병상 뒤편으로는 귀가 잘 들리지 않음.이라고 크게 환자상태 표시가 되어있다. 간호사들이 대답을 안 한 게 아니라 아빠가 못 들었을 확률이 크다. 나는 '일찍 소변줄을 뺐기때문에 자기를 얄밉게 본 간호사들이 이지메를 했다' 상관관계가 1도 없는 아빠의 결론도출에 뭐라고 해야 할지 대략 정신이 멍해졌고, 억울한 피해자인 본인을 다독거려줄 줄 알았던 딸내미가 짜증만 내며 따져 묻는 게 화가 났는지 아빠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며 그 소리가 휴게실을 가득 채웠다.
사실 이 글을 적는 시점엔 그때의 대화가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으려고 커다란 티브이만 노려보고 있는 것만으로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야 했으니 말이다. 니 남편 차는 왜 그렇게 작냐 같은 속을 박박 긁어대는 말로 시작해서 너희들에게 섭섭하다. 니들이 내 맘을 아냐는 둥의 한탄과 넋두리. 분노.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아빠의 고릿적 해병대 이야기. 공치사 등이 중구난방으로 아빠에게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세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하지 못해도 머릿속 상태는 꽤나 자세히 기억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분노 짜증 당황 현실 부정 모든 게 다 범벅이 돼서 발까지 진득진득 흘러내렸다.'도대체 이게 뭔 상황이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먹던 환자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도 미치게 싫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빠의 말을 용기 내어 끊고선 일어섰다. "아빠랑 이런 말 하려고 온 게 아닌데, 하고 싶은 말만 할 거면 난 그냥 갈게 "하니 노기 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앉아."라고 으르렁대듯 명령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 발밑에서 진득하게 흘러내린 감정들이 발목을 움켜쥐었고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아빠의 경고하듯 명령하는 목소리. 이제 나는 34살의 어른인데. 무시할 수 있는데, 그러면 또 무언가를 때려 부수고 소리 지를까 봐 주저하던 잠깐의 시간. 결국 원초적 공포가 얄팍한 용기에 승리하였고 그 후엔 무슨 말을 나눴는지 기억이 없다.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아마 십여분 정도 더 앉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지. 자기밖에 모르고, 화내고, 소리 지르면 다 되는 줄 아는..'
처참한 마음으로 병실에 도착하니 또 냅다 소리를 지르며 "너희가 주는 용돈 생활비 다 필요 없으니 안서방한테도 전해라!!!" 라며 엄포를 놓으신다. 그리곤 병실을 지나쳐 간호 데스크 옆 구석에 서서 누군가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댄다. 데스크의 간호사들이 상황을 파악하는 눈빛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 불편한 시선들과 싫은 현실에 덜덜 떨리는 몸을 점점 가누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 즈음 "환자분 통화 끝나시면 병실로 돌려보낼게요 보호자분은 가셔도 됩니다." 간호사분이 면회 종료를 결정하셨고 그제야 지옥 같은 병동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엄마 나 아빠가 이제 너무 버거워, 너무 버거워서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어 아님 그냥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이런 일이 있었노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설명을 하다 울컥 눈물이 나며 서러움이 치받힌다.
아빠와 남으로 지낸 지 오래된 엄마, 그녀는 나의 정서적 도피처였고, 동지였다. 따라서 이런 패륜적인 소망을 내비치어도 책망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엄마가 꿈을 꿨는데, 너희 아빠가 나오더니 갑자기 돈을 주더라. 꿈이 좀 이상해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보니까 네가 맘의 준비를 해야겠다"
나는 참 나쁜 딸이다. 그 소리를 듣고 "정말 아빠가 돌아가실까?"되물었다. 그 말속에 희망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부끄럽지만, 이것마저 기록해야 내 속이 편하겠다.
내일 첫차로 올라갈 테니 좀만 참고 있으라는 엄마와 전화를 끊고서도 멈추지 않고 떨리는 다리 때문에 병원 로비에 한참을 앉아있어야만 했다.
"여보 괜찮아? 아버님한테 전화가 여러 번 왔었는데 도통 무슨 소리 하시는지 모르겠네. 무슨 일 있었어?"
험난한 여정 끝에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달려 나와 물어본다. 그 뒤로 걱정 가득한 시어머니의 얼굴이 보였고 나는 별일인 얼굴로 별일 아니에요, 괜찮아요 둘러대야 했다. 식탁엔 따듯한 찜닭이 놓여 있었다. 내가 올 때까지 드시지 않고 기다리셨단다. 눈물이 왈칵 나는 걸 참고 찜닭을 입에 쑤셔 넣었다.
다음날 새벽 1시 ,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내내 복도를 배회중이던 갑자기 아빠가 집에 간다며 옷을 싹 갈아입고 짐까지 챙겨 나온 걸 보고 놀란 간호사들이 또 전화를 했고 "새벽에 운전하는 건 위험하니까, 내일 일찍 퇴원하자."라고 달래며 전화를 끊었다. 아빠는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곤 병실로 들어갔고 그제야 나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게 지독하게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