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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Nov 15. 2022

괘씸한 사위

그 착하고 대단한 사위에게 아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인 것이다.



안서방이 괘씸하다.


금요일 저녁 통화하며 불쑥 튀어나온 남편에 대한 불만. 갑작스러움에 또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들어가던 길을 멈추고 털썩 앉아 전투태세를 취한다."뭐 때문에 그래 또." 하고 되물으니, "어제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 자기 아빠를 그렇게 들먹여선 안 되는 거다"라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횡설수설하시더니"요즘 우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무섭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자꾸 이런 생각만 드는구나"로 말을 끝맺으셨다.


-죽고 싶다-

우리 부부의 관심이 적어지거나 섭섭한 일이 있을 때 , 아빠가 내미는 경고성 카드와도 같은 말이었다.

"안서방도 걱정되는 맘에 그런 거지, 알면서 왜 그래~"

"그래도 그렇지!!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     

라고 버럭 하시는 아빠 목소리에 순간 짜증이 확 치솟았다.


또 뭐에 역정이 나셨을까 생각하던 중 며칠 전 일이 기억났다. 이야기의 발단은 아빠가 앓고 있는 ‘심부전’이란 병에서 비롯된다. 아빠의 몸과 다리는 두배 이상 부어있었다. 약해진 심장의 기능으로 혈액이 원활히 순환하지 못하여 부종이 생긴다. 연례행사처럼 겨울쯤 심해졌다가, 놀란 아빠의 식습관 개선으로 인해 좋아졌다가 심하면 입원해서 이뇨제로 물도 빼고 해야 하는 그런 병이다.  

볼 때마다 점점 부어가는 다리 때문에 속상해하는 내게 "짜게 안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알아서 할게"라는 아빠의 말을 믿고 툴툴거리며 돌아가기를 3주째.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는 수준이었기에, 주차하는 차 안에서 남편과 오늘 안으로 결판을 내자. 약속하고 아빠의 집으로 비장하게 입장! 했으나


"아빠 제발 ~~ 병원 가자"  

"지금은 안되고, 2주 뒤 명절 연휴에 맞춰 갈란다" 

"그때까지 몸이 못 버틸 것 같단 말이야!"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다리 부은 걸 보고 말해! 너무 심하잖아. 내일 바로 응급실 들어가자 응?" 

"일단 관리비도 내야 하고... 가겟세도 내야 하고.. 난 괜찮으니 좀 있다 들어가련다." 


영 답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답답스러운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우리 부녀를 보고 있던 남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님. 2주 뒤엔 무조건 가시는 거죠? 저희야 바로병원가셨으면 좋겠지만, 이유가 있으시다니 일단 알겠어요. 근데 그때 가서 또 말 바뀌시면 더 이상 기다려드릴 수 없고요. 억지로라도 모시고 갈 겁니다. 저 한다면 하는 놈인 거 아시죠? 우리 아버지도 못 말린 놈입니다. 약속하세요."

돌아가신 시아버지까지 걸고 협박하는 남편의 태도에 당황한 아빠는 반항도 , 수긍도 못하고 횡설수설 말만 돌리다가 그날 자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버님 연세에 병원 들어가는 게 무섭긴 하시겠지."아빠의 기죽은 모습이 내심 맘에 걸렸는지 차 안에서 조용히 읊조리던 남편의 말에 짜증이 차올라 벌떡거리던 마음이 출렁였다. 저런. 속이 깊기도 하지.

또래 친구들 장인에 비하면 한참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뻘의 아빠에게 늘 든든하게 맘 써주는 아들 같은 사위가 내 남편이다. 그런 사위가 무서운 눈을 하고 , 단호한 말로 아빠의 말을 뚝뚝 자르면서 고압적으로 밀고 들어오니, 아빠에겐 그게 내심 상처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나에게만 몰래 이런 말을 하나 보다.

"안서방이 괘씸하다." 

그 착하고 대단한 사위에게 아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인 것이다. 


     

병원이 어디시죠? 


다음날 아침 , 119 구급대원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 분이시죠? 환자분이 가슴 쪽이 아프다고 구급차를 부르셨는데, 다니시던 병원 이름을 정확히 못 대시고 자꾸 횡설수설하세요. 보자.. 병원이 ㄱ의료원 맞나요?"

"네?? 그 병원은 가본 적도 없는 병원인데... 다니시던 병원은 ㅅ의료원이에요. 그 병원으로 이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출발할게요" 잠결에 전화를 받아 몽롱한 찰나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불안함이었다. 

‘병원을 기억 못 한다고..?’  ㅅ병원은 다닌 지 10년이 넘었고 3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하러 가기 때문에 기억을 못 할 수가 없는데, 엉뚱한 병원 이름을 댔다는 말에, 일렁이는 불안을 눌러 담으며 응급실로 향했다.


"일찍 왔구나."걱정했던 거에 비해 아빠는 세상 평온해 보였다.

'이렇게 올 거였으면 좀 순하게 오시지. 굳이 응급실로... 나랑 상의도 없이..' 

응급실에서는 각종 검사를 필수로 해야 하고 병동에 자리가 없으면 대기시간이 많이 길어질 수 있어서, 기왕이면 예약을 잡고 한 번에 입원을 하려 했는데.. 내심 불만 섞인 한숨이 나왔으나 그래도 뭐, 병원에만 오셨으면 되었지. 하는 마음에 누워있는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간호사가 요관 카테터 기구를 들고 왔다.

보호자는 이제 대기실에서 대기하라는 말에 뒤돌아서 나가는데 뒤통수가 서늘해지더니만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빠였다. 이상하다. 카테터(소변줄)는 체내 잔류 수분을 빼기 위해 병원에 오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처치이고 아빠도 그걸 안다. 병원에 오실 때마다 매번 그 과정을 거치셨고,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통증과 거북함이야 있겠지만 싫은 내색 없이 잘 참아내시는 분이셨기에 응급실을 뒤흔드는 목소리에 빨간 경고등이 머릿속에서 번쩍이는듯했다.

'그냥 기분 탓이겠지. 내가 놀라고 예민해서 그런 거야.'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아무래도 이상한데?라는 불안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며 3시간 정도를 기다리니 다행히 공실이 생겨 당일 입원 수속을 할 수 있었다. 필요한 물품을 안내받아  손 가득 들고 병실로 들어서니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고 계셨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다만 배식담당 여사님을 아가씨로 호칭하셨고, 갑분싸 된 병실 분위기에 당황한 내가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요즘에 누가 아가씨라고 그래" 하며 농담 섞인 타박을 했고 아빠는 "시어머니가 따로 없구먼 " 하며 껄껄 웃었다. 

그 뒤 병실로 바로 퇴근한 남편과 함께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우리 귀요미 본인 발로 입원함.' 따위의 농담도 지껄여가며 내일 만나~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제서야 아까의 불안은 그저 기우였구나. 하고 마음이 놓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무사히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지옥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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