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목이 덜 말라.
“이러다 병나겠다. 밖으로 좀 나가자”
설 명절 동안 집에만 처박혀 점점 맛이 가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남편의 지휘 아래 엄마들을 이끌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불안과 피로감을 떨쳐내지 못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외출에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어딜 가나 바글바글한 가족단위의 사람들을 보면서, 홀로 병실에 앉아있을 아빠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안 좋았고, 수신차단을 해놓고도 안절부절못하며 1분마다 휴대폰을 꺼내보고 있었다. 그래도 앞서 걷는 조그마한 엄마들과 그 옆에서 걷는 커다란 내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족의 울타리라는 게 참 따듯하구나 하는 안정감이 들기도 했고,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그림자처럼 쓱 삐져나오는 '우리 아빠는 불쌍해서 어찌하나.." 하는 양가감정이 팽팽하게 나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외출 내내 감정의 줄다리기만 하다 집에 온 거 같다. 이날은 저녁면회를 건너뛰었고, 예상대로 저녁 10시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지만, 너무 마음이 지쳐서일까, 처음으로 호출에 응하지 않았고 병원에서도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그리고 구정 연휴 마지막 날 오전.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는데, 간호사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헐레벌떡 도착한 병원, 어젯밤 호출을 안 받은 것이 내내 맘에 걸려 괜스레 두리번거리게 된다. 9층 복도 끝에 다다르니 아빠의 병실 앞에서 간호사 한분이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호출받고 왔어요. 무슨 일인가요?”
"어르신을 좀 설득해 주셔야 할 거 같아요. 휴, 너무 화만 내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날 보는 간호사의 시선에 당황과 짜증이 얼핏 스쳐간다. 앞으로도 쭉 볼 표정이니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병실에선 아빠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500ml 생수통을 링거 폴대에 리드미컬하게 탕-탕-탕 두드리고 계셨다. 엘리베이터서부터 병동 가득 울린 소음의 출처가 이젠 당연하게 아빠겠거니 하고 예상은 했지만 그것이 들어맞는 기분은 무척이나 불유쾌한 것이었다. 와중에 병실은 평화롭다. 조용한 일요일 오후의 병동 창문엔 1월 말의 따스한 겨울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목가적인 고요 가운데 화가 잔뜩 난 대머리 할아버지가 열심히 물병을 두드리며 평화를 산산 조각내는데 몰두하고 있는 장면은 너무 이질적이다. 싶어 속으로 얼핏 웃었는데, 이게 미쳐서 웃긴 건지 웃겨서 웃은 건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다.
‘후’
한숨 한번 쉬고 나서, 그 부조화 속으로 발을 디뎌본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과 눈이 마주칠까 눈치를 슬쩍 보니, 커튼이 반쯤 쳐져 있는 병상 안쪽으로, 날 쳐다보는 보호자와 환자분과 눈이 딱 마주쳤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버렸다. 모두 치료를 하러 온 아픈 환자들인데, 우리만 졸지에 불청객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아빠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통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화 거부.
남편과 내가 낮밤 번갈아 수신 차단을 한 이후로부터 아빠 역시 우리와 대화를 거부했다. 조금씩 상태가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평균적인 스탠스는 분노. 거기에 일방적인 거부가 추가되었다. 분노 표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는데, 일주일 넘게 시달린 우리는 점점 아빠의 분노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그건 병원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본인이 쏟아내는 분노와 요구에 반응이 없자, 고함과 소음으로 방향을 돌려 1인 시위를 하고 계셨고 시위의 주제는 바로 "물을 내놓으라"였다. 아버지의 치료방향 1순위는 심부전으로 인해 온몸에 퍼진 부종을 빼는 것이고, 때문에 고용량의 이뇨제와 강심제가 투여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치료의 차도가 없자 극단적으로, 입을 축이는 정도의, 그러니까 "한 모금"분량의 물만 허용되었고, 그것은 아빠에게 썩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근처에 지나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입원 초기에 사놓은 500ml의 생수병을 들이밀며 물을 채워오라 심부름을 시켰고, 이상하다 느낀 담당 간호사가 소변량 체크를 해보니 무려 2L가 넘는 물을 '몰래' 드시고 계셨단다. 폭음은 이뇨제로 인해 쉴 새 없이 소변을 보는 아빠의 혈당을 떨어트리기 시작. 기함한 간호사에 의해 아빠는 "귀가 좋지 않음"에 이어 "수분 제한"이란 타이틀을 추가로 획득하게 되었다.
그런 고로 아무도, 자기에게 물을 배달해 주지 않자 거동이 불편한 아빠가 생각해 낸 방법은 소음공해였고 그 방법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제야 본인 빼고 모두가 괴로워진 것이다. 한껏 쪼그라든 면목을 들고 상황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간호사의 지친 표정이 이해가 갔다. 이지메 사건 이후부터 아빠는 대놓고 간호사를 무시하고 하대하기 시작했는데 '너 까짓것 들은 아무것도 몰라!'라는 입장으로 간호사들의 말을 모두 묵살하고 있었다.
절대 물은 안된다, 참아보시라, 치료를 위해 그런 거라 말을 해줘도 아빠는 오로지 내가 인정할만한 책임자를 데려와라. 그러기 전까진 이 행동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며 나와 간호사가 아무리 옆에서 달래 봐도 요지부동의 상태를 유지하며 9층 병동의 고요함을 깨부시는데 전념했다. 그런 난리 통 속에 상황을 설명 듣고 나니 병실 앞에서 간호사가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던 건 휴일이라 병동 전체를 회진하는 '아주 매우 많이 바쁜 '당직의사를 호출하는 행동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음을 끝내기 위해선 의사가 와야 했다.
그리하여, 물 좀 줘!-탕-탕-탕 불협화음 소음 파티에 초대된 (무척 피로한 표정의) 당직의사는 아빠의 상태를 보시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어르신, 이렇게 치료 협조 안 하시면 퇴원하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그렇게 하시겠어요?"
"뭐???!!"
“퇴원하시고 싶으세요?"
아빠는 협상할 새도 없이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의사의 태도에 놀랐는지 눈을 껌뻑껌뻑 거리다 이내 생수병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몸을 돌려 누워버렸다. 그렇게 물통 콘서트는 맥 빠지게 끝이 났다.
‘와.... 이게 이렇게 바로 먹힌다고??? 한 번의 반항 없이?"
드라마 같은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말로를 얼결에 직관해 버린 나는 약간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아아. 아빠 미안..
약간의 시간이 지나 고요가 찾아온 병실. 아빠가 뭔가에 열중하고 있길래 살펴보니 생수통에 조금 남은 물을 입에 머금었다 물통에 뱉고, 다시 머금기를 반복하고 계셨다.
"이렇게 하면 목이 덜 말라"
아빠의 기발한 생존방식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지만, 너무 슬퍼서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날.
"보호자님"
회진 중인 아빠 병실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여자 주치의 선생님이 말을 거신다.
"소변줄을 다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치료방법을 바꿀 거고요. 좀 더 공격적인 치료를 하게 될 거예요. 일주일 정도 후에 퇴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정신과 협진을 할까 해요. 어떠세요?"
"정신과 협진이요? 무슨…?"
"네, 어르신 상태가 점점 나빠지셔서, 협진을 해봐야 할 거 같네요.
네 그거요.
치매검사를 해볼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