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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07. 2023

아빠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너희들이 준 돈 한 푼도 안 쓰고 벤츠 사주려고 집에다 모아뒀다.


할아버지는 치매가 맞아요.


조그마한 오피스텔 사무실에 들어서니 두 명의 직원이 우리를 맞이한다. 한 명은 키가 작고 조그마한 할머니였고 한 분은 젊은 아주머니셨다. 건네주신 대추차가 담긴 따듯한 잔을 들고 있어도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는 이유는 바로 직전의 통화 때문이었다. 요양보호사를 만나기 전 썬의 시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고양시의 ㅈ 요양병원의 간호부장과 재차 입원 관련 통화를 했었다. 아빠가 말없이 1. 집 밖을 나갔고 2.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고 3. 집 앞에서 소변실수를 했다. 하루 만에 비상시그널이 세 개나 나타났다. 또다시 말없이 밖에 나가 길을 잃고 실종되거나 하신다면 그땐 정말 큰일이다.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기에 사설 구급을 통한 강제입원까지 염두에 놓고 부랴부랴 전화를 했으나 2주 전과는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단다.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심각하게 번지자 내부 회의를 통해 집에서 오는 어르신들은 입원을 받지 않겠다는 원내 방침이 세워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을 듣고 나니 언제고 급박한 상황이 되면 입원시킬 수 있다는 우리의 최후의 보루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며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를 봐줬던(?) 수많은 나날들에 대한 후회가 몰려오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봐준다는 건지, 어리석은 관용이었다.


그래서 재가복지센터 사무실을 들어서기 전부터 우리 부부의 사기는 왕창 꺾여있었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젊은 부부가 어떻게 이런 힘든 일을 견디냐며 본인이 그 14층에 사는 요양보호사라고 소개하신 분은 키가 작은 할머니 쪽이었다.


"요양등급은 나왔어요?"

"아니요, 공단 직원분이 심사를 오셨었는데 등급 외 판정이 나왔어요."


하며 공단에서 송부된 서류를 건네주자 한번 쓱 훑어보시고는 말씀하신다


"아이고, 너무 빨리 했어! 원래 병원 오래 있다가 퇴원하신 어르신들 바로 심사하면 등급이 잘 안 나와요. 그래서 한 달 두 달 있다가 검사하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심사하기 전 다 쓰는 방법이 있는데..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치요?"


"저희는 요양등급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일단 없으니까 받으라는 소리만 듣고 급하게 받은 거고요. 근데 아빠가 상태가 너무 멀쩡하시고 공단 직원분들한테 커피까지 타주셨다고 하니까. 치매도 아닌데 이걸 꼭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니야 내가 봤을 땐 할아버지는 치매가 맞아요. 근데 치매노인들 등급심사 오면 그때만 정신 반짝 해지는 경우 많아요. 그래서 미리 기저귀도 채워놓고 눕혀놓고 그렇게 해야 등급이 나오는데..쯔쯔 이미 나왔으면 어쩔 수 없지 뭐. 재심사도 한참 뒤에나 가능할 거예요."


"그런 방법이 있는지 몰랐어요. 저흰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몇 천 번은 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우리가 한 수많은 선택이 정말 맞는 건지. 최선이었던 건지. 자꾸 따라오는 후회는 어디다 버려야 하는 건지.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정말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어서 인터넷카페에 글을 올려 불특정다수에게 조언 겸 공감을 얻고자 했는데 간혹 껴있는 날 선 반응들에 상처받고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하고 그만뒀다.


그것은 "자식이라면 응당 꾹 참고 집에 모셔라"라던가, "그런 아빠라면 그냥 버리세요. 저 같으면 남편 미안해서라도 안 보고 살겠어요"라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라 할 수 있는 조언들이었고 한마디 한마디가 무방비한 마음에 비수처럼 꼽혀 들었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타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게 되었다. 전후사정을 알던 모르던 그들이 하는 말에 상처를 안 받을 수는 없겠구나 싶어서다.

그래서 손톱을 까득거리며 "하 시발 어떡하지" 수준의 혼잣말만이 나의 위로가 되었다. 그런 지금. 또다시 어떻게 하죠?라는 말이 조르륵 굴러 나왔고 내심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내가 지금은 일을 쉬고 있긴 한데, 하루 한 번씩 들여다봐줄 수는 있어요. 할아버지가 상태가 심하게 안 좋은 것도 아니고, 가서 식사 같은 거 챙겨주고 청소 좀 해주면 훨씬 낫지 "


아빠가 얄미운 이유 중 하나는 이 기가 막힌 운빨이다.

결국 우린 요양보호사 아주머니와 매일 아침 2시간씩 시간당 3만 원에 협의하여 돌봄을 부탁했고, 짧은 양식의 계약서를 쓴 후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나마 다행이다. 하며 묵은 숨을 내쉴 때 퍼뜩 머리를 관통한 사실이 있었으니, 퇴원 초기 아빠의 요청이 결국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콧방귀를 뀌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던 파출부를 구해달라라는 요청이 결론적으론 약간의 리메이크를 거쳐 결국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런 젠장. 아빠의 큰 그림에 또 놀아난 거야?


물론 그 행동들이 계산된 것은 전혀 아니리라. 하지만 문제적 대머리를 계속 주시하던 요양보호사와 코로나로 인한 병원 방침이 바뀌면서 아빠가 죽어도 가기 싫다던 요양병원행은 잠시 늦춰졌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어쨌든 24시간 중 2시간만큼은 맘을 놓겠구나 싶어 오랜만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아빠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아빠는 뭔가 겸연쩍은 상황이 생기거나 본인이 좀 불리하다 싶을 때 꺼내어 우리에게 무기처럼 휘두르는 마법의 문장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생활비 주지 마라!"라는 이상요상한 협박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너희들이 준 돈 한 푼도 안 쓰고 벤츠 사주려고 집에다 모아뒀다"이다. 선후관계가 전혀 맞지 않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두 번째만 맞말이다. 우리가 돈을 줘야 모아둘 것이 생기지 않겠는가. 여하튼 우리는 아빠가 이따금씩 내지르는 그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할아버지가 걸쇠를 잠그고 문도 안 열어주고 전화도 안 받아요. 비밀번호를 좀 말해주세요."


아빠는 언제부턴가 현관의 걸쇠를 꼬박꼬박 걸어두었다. 그 걸쇠 때문에 구급 대원이 창문까지 깨야 했기에 그것만큼은 걸지 말라 신신당부했지만 본인이 거동이 가능한 컨디션이 되면 어김없이 걸쇠를 굳게 걸어 잠가놓았다. 평소 문단속등에 딱히 관심이 없던 아빠였기에 유난스럽게 걸쇠에 집착하는 행동은 내 마음을 한번 더 덜컹거리게 만들었고 요양보호사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러했다. 조금의 고민 끝에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드렸고 요양보호사가 문틈으로 아빠를 불러내 현관을 열고 그렇게 험난스러운 첫 재가방문 날이 시작되었다.


그 뒤 나는 썬 그리고 남편에게 위 사안을 털어놨다.


'정말 아빠가 집안에 현금을 숨겨두었다면 외부인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이 과연 옳은가?'






아빠의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1. 너희들이 준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2. 집안에 모아뒀다  결혼 기간을 계산해 봤을 때 못해도 기천만원의 돈이 모여있단 계산이 나온다. 애초에 돌려받으려는 마음으로 드린 돈은 아니지만 내 남편이 힘들게 번 돈이었기에 허무하게 분실할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속이 탄다. 조금이라도 멀쩡하실 때 은행에 넣어놓는 게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지만 이내 순순히 말을 들었을 분이 아니라는 걸 깨닫곤 입가를 잘근잘근 씹고 싶어졌다. 도대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뭐지? 늘 아빠가 벌려놓은 것들을 전전긍긍 수습해야 하는 사실에 화가 치민다.


남편은 '아빠와 사이가 소원해진 우리로썬 아빠가 현금을 어디에 어떻게 숨겼는지 알 방도가 없고, 괜히 자극해서 좋을 일 없다. 그리고 우리 손을 떠난 돈은 우리가 탐낼 돈이 아니고 아빠의 소유다. 설령 그 돈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그것 또한 막을 수 없다. 그냥 맘 놓고 아빠를 맡기자.' 그렇기에 비밀번호는 어쩔 수 없이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썬은 치매의 진행 증상 중 하나인 도둑 망상이 발현되면, '죄 없는 요양보호사를 도둑'으로 몰 수도 있다며 걱정스러운 의견을 비추었다. 두 가지 모두 일리 있는 의견이었고. 그래서 난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이 둘의 상황이 콜라보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아빠가 돈을 둔 장소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요양보호사를 도둑으로 몰았을 때 우리가 돈의 액수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누구의 말도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대 환장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어디 있는지 실존하는지도 모를 돈을 요양보호사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은 서로에게 리스크가 너무 컸으므로 마치 보물섬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상어 떼처럼 아빠와 요양보호사의 하루하루를 꼼꼼히 보고 받고 주시하는 걸로 찜찜하게 결론지었다. 


그런 복잡한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아빠는 요양보호사가 들어서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셨다는데! 대부분의 노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와서 돌아다니면 초반에는 격한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빠는 본인을 챙겨주러 온 요양보호사를 보고 드디어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줬다며 무척 좋아하셨고 딸년이라는 건 아빠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간호사들이 따돌리는데도 편도 안 들어주고 도망갔다며 신나게 뒷담도 하셨드랜다. 쳇. 그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지도 모르고. 


야속한 마음은 야속한 거고. 이날 차려드린 식사를 맛있게 하시고 만족스럽게 취침에 드시는 것까지 보고 나왔다는 요양보호사의 보고를 듣고 '그래. 악역은 내가 할 테니 아빠의 머릿속을 꽉 채운 그 이상한 세계에서 잠시나마 행복하시길' 그렇게 기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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