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가 되기 위해 불효를 하고 있는 내 마음을 누가 알까. 아빠는 알까
"할아버지가 좀 많이 드시긴 하시더라고요. 좀 자제하라고 말려도 듣질 않으셔. 병원서부터 밥을 못 먹고 매일 굶었다시는데.. 불쌍해서 어째 쯧쯧.."
요양보호사가 우릴 사무실로 호출하여 전후사정을 설명해 줬고 우리는 단번에 이유를 알아차렸다.
'과식성 설사'
아마도 이번 똥테러의 원인일 것이다.
짚고 넘어가자면, 병원에서 밥을 안 준 것도 아니었으며 그러니 매일 굶은 것도 아니고 따라서 불쌍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좀 많이 드시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드시고 계셨다.
귤을 사 오라 해서 넉넉하게 한 박스를 사다 놓으면 하루 만에 몽땅 다 드셔 버리는 식이다. 우리가 사 오지 않으면 요양보호사를 시켜 먹고 싶은걸 모두 사 오게 할 수 있었으니 아빠에겐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와상과 운동 부족으로 기능이 많이 떨어진 소화기관은 그만큼의 음식물을 감당하지 못했고 입식과 좌식 역시도 수월하지 못하니 신호가 왔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화장실 앞에서 대변을 줄줄 흘리고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다 포기해 버렸을 아빠의 모습이 선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상황이 이모양인데 자꾸 쓸데없이 감정이입을 해서 아빠 편만 드는 요양보호사에게도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본인이 잘 보살필 수 있다며 자신만만한 모습도 이제는 마땅찮다. 일흔은 족히 돼 보이는 바싹 쪼그라든 몸집의 할머니 요양보호사가 대체 어디까지 케어를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함께 으쌰으쌰 해서 아빠를 설득해 병원에 모시자던 초반의 계획은 이미 좌절된 지 오래였고, 줄지 않는 약 봉투를 보고 성질난 남편이 이삼일 치만 남겨두고 뚝 뜯어 집으로 챙겨 왔고(하지만 약을 다 드셨으니 병원으로 약을 타러 같이 가자는 남편에게 아빠는 약이 갑자기 줄었다며 의심했고 그 후 관련된 주제의 대화는 가뿐히 무시했다. 만만찮은 대머리다.) 요양보호사는 아빠의 입원 계획에 대놓고 비협조적이 되어갔다. 우리는 그 이유를 반은 측은지심이요 반은 돈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요양보호사의 과도한 호들갑(할아버지 불쌍해서 어째 x2)에 그저 먼산을 쳐다보며 건조하게 대처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이렇게 된 이상 아빠와 집 상태를 한번 봐야겠다 싶어 남편의 꽁무니를 따라 아빠 집의 문 앞까지 들어서는 용기를 내보았는데 어느 정도 임계치를 넘어간듯한 상황에 이제는 보호자인 내가 개입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원동력이었던듯싶다. 정말 아버님을 뵐 수 있겠냐며 되묻는 남편에게, "응 괜찮아. 이렇게 계속 안 볼 수도 없고, 약 먹고 왔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겁 없이 외쳤으나 내심 쫄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발이 발발 떨렸다. 거의 2주 만의 만남인 것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남편을 앞세워 슬그머니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서는 와중 "안 서방 왔는가-" 하며 남편에게 아는척하던 아빠의 시선이 뒤따라 오는 내게 멈췄고, 나는 사지가 관통된 듯 급격한 공포가 몰려왔다. 희끗한 눈동자에 분노가 차오르는 게 느껴지며 "너는-!"으로 시작하는 아빠의 노호성이 이어진다.
"너는 새끼가 돼가지고 지금에서야 얼굴을 쳐디미냐..? 아주 못돼 처먹은 거 같으니. 너 여기 와서 앉아봐라. 이야기 좀 해야겠다. 어!? 이 새끼야!! 당장 안 와??!!"
어릴 적부터 들어온 저 쩌렁쩌렁하고 강압적인 목소리. 아빠의 고함소리를 듣자마자 당장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가야 해. 저기로 가야 해.'
하지만 너무 싫다. 무섭다. 아빠를 보는 것이 무섭고 그런 아빠를 보고 나쁜 마음을 먹을 내가 무섭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켁켁대는 아빠의 기침소리. 숨소리. 쩝쩝대는 소리가 방안을 빙빙 돌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현기증이 밀려온다. 이내 이성이 마비되고 본능적으로 아빠의 손이 가리키는 저 의자에 앉아 원망과 분노를 뒤집어쓸 준비를 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남편이 손이 나를 문밖으로 이끈다.
"아직 안 되겠다. 너 나가있어. 아버님 진정시키고 나올 테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어.. 내가 아빠랑 이야기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아냐 지금 아버님 여기서 더 흥분하시면 답 없어 그냥 나가있어."
남편의 재촉에 어딜 또 도망가냐는 아빠의 고함소리를 뒤로하고 신발을 대충 꾸겨 신고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이번에도 우리 부녀상봉은 실패였다. 아빠를 보기로 맘을 먹은 건 현 상태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2주 동안 남의 손에 부모를 보살피게 한 것에 대한 부채감과 의무감에 중압감이 더 컸다. 사랑의 마음이 아닌 의무감으로 문을 열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엔 아빠를 감당할 용기와 인내가 아직 자라나지 않았다. 무참히 짓밟힌 것들이 말라비틀어진 자리는 아직도 바싹거리고 있었기에 그런 내 맘을 알아채준 남편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스스로 못 견뎌서 나간 게 아니라 남편에게 떠밀려나갔다는 사실은 다행히 나를 아주 밑바닥까지 내리꽂진 않았고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며 비상계단에 앉아 남편을 기다렸다.
"아버님 오늘은 상태가 좀 안 좋으신데? 아래 속옷도 안 입고 그냥 담요 하나 덮고 계셔. 말도 횡설수설하시고.. 때가 된 거 같긴 한데... 요양보호사분은 왜 아버님이 정상이라고 하시는 거지? 정말 이상한데?"
조금 지친 표정의 남편이 말을 꺼낸다. 남편 역시 이틀 만에 본 아빠의 급변한 몸상태에 당황한 눈치다.
"왔다 갔다 하시나 보네. 근데 요양보호사는 통화할 때마다 아빠 절대 병원에 모시지 말라드라. 치매도 아니고 불쌍하다고.."
"아니, 본인이 책임져줄 부분이 아닌데.. 그렇게 조르듯이 말하시면 곤란하지.. 단순히 불쌍하다의 영역이 아니잖아 이건"
"아빠가 제대로 난리 피우는 걸 보면 그런 말 안 나올 텐데, 두고 봐. 우리가 왜 이러는지 알게 될걸"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똥테러 사건 이후 요양보호사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가 집에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 집에 못 갈 거 같으니 사위분이 오셔서 좀 챙겨야 할 것 같아요."
간략하지만 엄연히 계약을 했고 금액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사정으로 결근하거나, 혹은 시간을 맘대로 바꾸어 남편이 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으며
" 할아버지가 바지를 안 입어요.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 게 쉽지 않으셔서 그런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보기가 좀 민망하고 무섭고 좀 그렇네. 어휴.. 오래는 못 도와드릴 것 같아. 요즘은 화도 잘 내시고 말도 못 알아들으시고.. 이를 어째. 아이고 할아버지가 치매가 맞았구나.. 병원은 어디로 갈지 알아봤어요?"
'치매가 아니니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에서 '치매가 맞으니 병원을 가야 하실 것 같다'로 말이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면 함부로 그런 소리를 못할 텐데 싶어 그 빈약한 동정심과 오지랖에 피식하며 조소가 흘러나왔다.
'불쌍하고 병 걸린 노인을 요양병원에 버리려는 몰인정한 자식 '취급을 너무 성급하게 하지 않았는가.
그 후 아빠는 폭식과 설사를 번갈아 하며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려다 넘어져서 못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해졌고 그때마다 구급대원 혹은 경비원을 불렀다. 요양보호사는 한참 뒤에나 상황을 파악해 우리에게 연락했고 넘어져서 뒤통수에 조그마한 상처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그때부터 남편은 매일 아빠에게 들려 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거의 정신을 놔버렸다. 아빠의 상태가 시시각각 안 좋아진다는 보고를 받고 나면 그야말로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에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깨끗하게 씻기고 밥도 먹이고 하고 싶었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중심을 못 잡는 나를 보며 썬과 남편은 이 고비를 견뎌야 병원에 모실 수 있다고 다독였다.
차라리 몸만 아픈 상태라면 정말 한계까지 간병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빠는 둘 다 모두 정상 범주가 아니니 우리 집에 모시는 순간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혼자 문이라도 열고 나가는 순간 모르는 동네에서 길을 잃고 실종이 되실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시기 즈음 치매노인이 실종되어 일주일 뒤 하천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보도가 나왔다. 썬은 이게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결말이라고 했다.
또한 의료적 처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아빠를 집에 두고 보살피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효녀심청이처럼 이 악물고 집에서 모신다고 치자. 그렇게 집에서 돌아가시면 할 도리 다했다며 죄책감이 덜할지에 대해 생각해 봐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못했다.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인 상황. 진퇴양난이었다. 그리고 직접 모실 수 없는 이유를 일일히 갖다 붙이자면 모든 것이 걸림돌이었으므로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결국 아빠가 병원에 제 발로 가겠다고 할 정도로 쇠약해지는 걸 꾹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이 나에겐 생지옥 그 자체였다.
오롯한 고독과 죄책감. 그것은 매일 내 앞에 한가득 쌓여 있었고, 숙제처럼 꾸역꾸역 집어삼켜 비워야만 했다. 그래도 난 아빠를 포기하지 않았어.라는 사실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이렇듯 효녀가 되고 싶어 불효를 저지르는 있는 내 마음을 누가 알까. 아빠는 알까. 신은 알까.
집으로 퇴원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지난밤 사이 아빠는 또다시 낙상을 했고 이번에는 뒤통수가 꽤 크게 찢어졌다. 아침에 방문한 요양보호사가 아빠가 혼자서 지혈한 흔적을 보고 기겁하여 우리에게 연락을 주었고 우리는 집앞에 도착해 구급대원을 불렀다. 퍼렇게 질려 벌벌 떠는 나를 남편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게 했고 곧이어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절대 집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병원으로 가. 바로 옆에 ㅇ병원 있지? 거기로 모실 거야. 응, 병원 가신대. 응급실로 바로 쏠 거니까 입구에서 구급차 기다렸다가 입원 수속할 준비하고 있어."
와파린(항응고제)을 복용하는 아빠는 조그마한 상처에도 출혈이 크다. 생각보다 많은 출혈에 피가 멈추지 않자 무서워진 아빠가 돌연 마음을 바꾸어 병원으로 데려가달라며 구급 대원들에게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집을 뒤로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