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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18. 2023

굶주림에 대하여

어르신, 보통이 아니시네요



“썬, 요즘은 어때?”

“말도 마, 불안해서 하루하루 잠도 못 자고 힘들다야”


퇴원하고 아빠를 당신 집에서 모시기로 한 뒤의 전쟁 같던 시기. 썬의 시아버지가 한 발 앞서 요양병원에 입원에 성공하셨을 때의 대화다. 골 하나만 넣으면 끝날 것 같은 경기의 연장전 끄트머리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똑같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비로소 역전에 성공한 썬의 승전보를 듣고 싶었으나, 무용담은 커녕 그녀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폭력/기피 환자 보호자들은 불안이 단짝일 수밖에 없다. 온갖 난관을 뚫고 병원에 모셨다고 해서 성취감 따위의 것은 언감생심이며 결국 다른 차원의 문제적 상황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불안도 뭔가 부러웠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른 아빠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한숨 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때였다.




그러나 곧이어 썬의 불안은 순서가 되었다는 듯 나에게 방문했으며 그제야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아빠를 입원시킨 다음 날 아침. 머리맡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에 몸서리치며 기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불안해 뒤지겠네 진짜’


불안의 원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핸드폰. 낯선 고요였다. 그 아래로 분명 무시무시한 불행이 도사리고 있을게 뻔하다. 아빠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분명 난리가 났을 텐데 왜 아무 연락이 없지? 도둑이 제발 저린 양 기어코 무언가 확인하고자  간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가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라든지 사 가야 할 게 있나요 등 쓰잘데기없는 서두를 늘어놓는 나에게 눈치 빠른 간호부장의 대답이 이어졌다.


“보호자님, 휴, 어르신 보통이 아니시네요~그래서 새벽에 안정제 조금 들어갔고요~ 일단 저희 쪽에서 케어를 해볼게요."


보통이 아니다. 보통이 아니다…

끊고 나서도 한숨 섞인 보통이 아니라는 간호부장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맞지 이게 정상이지.. 울 아빠 보통이 아니지. 암.


일단은!! 일단은.. 일단은???

보통이 아니란 말 다음으로 일단은이라는 말이 턱 걸렸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어쩌지? 쫓아내나? 썬에게 우리 아빠 쫓겨나면 어쩌냐고 울먹거리며 연락하니 썬은 깔깔대며 대답했다.


“나도 그때 그랬어!!! 야~근데 우리 아버님도 어디 가서 빠지진 않아!! 우리 아버님 안 쫓겨났으면 너희 아버지도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날 저녁 간호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난동 때문에 일반 병실은 안 되겠고, 집중 케어실로 옮긴다는 연락이었다. 집에 가라는 말만 아니면, 어디든 황송하다. 그 자리가 썬의 시아버지 옆자리라 해도.

그렇게 우리의 망나니 할아버지들은 각각 옆자리에 나란히 누워 빌런 브라더스가 되었다.







굶주림은 서글프다.



아빠는 병원에 가는 내내 배가 고프다며 호소하셨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굶주림은 서글픈 것이다. 더군다나 집안의 가장 역할이 역전돼버린 어느 시점부터, 먹을 거 하나는 아쉽지 않게 먹이며 아빠를 키웠기(?) 때문에 이상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아빠의 왕성한 식욕은 나에게 서글픔이었다.


썬의 시아버지는 연세는 많지만 치아는 튼튼하셨고 따라서 병원밥을 드셨다. 그래서 썬은 종종 고기반찬을 해 보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을 본 나도 그 정도야 껌이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며 기대를 했었다.

병원에서 허락만 해준다면 아빠가 좋아하는 연어초밥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사갈 수 있다. 음. 가끔 빵 정도는 드셔도 괜찮겠지? 넉넉하게 챙겨 보내면 썬의 시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노나 드실 테니 그것 참 따스한 모양새겠다 싶었으나 아빠는 연하장애가 심각하여 오인성 폐렴 초기가 왔고 콧줄을 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콧줄을 한다면 뺄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는 말과 함께.


콧줄을 한다는 소식은 뜻 이상으로 나에게 쓰라렸다. 그토록 먹는 걸 좋아하는 양반이라 젊을 적부터 미식가 수준의 입맛 덕에 (feat반찬투정) 엄마와 할머니가 골치 아팠다고 했다. 근데 이젠 코로 들어가 맛을 느끼기도 전에 배가 차버리는, 오로지 하루 할당량의 영양만 채워지는 유동식에 생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라니. 아빠에 대한 연민이 훅 몰려왔다.


아빠에게는 이제 의식주 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안락했던 집. 행복하게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집착적인 의복에 대한 욕심.

이제 어느 것 하나 아빠에게 남지 않았고 상실은 내 선택의 결과이다.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한 선택이 다 옳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아빠에게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네가 나의 모든 걸 빼앗아갔어도 괜찮다고. 너는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러니 모두 괜찮다고.

하지만 그 대답은 결코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빠의 허기짐만큼이나 나 역시도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조금은 긴 시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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