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고 와야 할 건, 아빠뿐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왔냐”라는 아빠의 질문에 다섯 번 정도 대답해 줄 때쯤,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아빠는 와상환자기 때문에 마중 나온 직원이 배드 그대로 옮겨 들어갔고 나는 남편과 둘이서 접수를 시작했다.생각보다 체크할게 많았고, 기재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런저런 주의사항, 면책사항에 대한 동의 동의 동의. 그러다 마지막에 내 앞에 내밀어진 세 번째의 연명치료중단각서를 마주했을땐 갑자기 볼펜을 꾹 눌러 부러트리고 싶을 만큼 강한 무언가가 치받쳐 올라왔다.
연명치료 중단각서 사인은 ㅅ병원에서 처음 해봤다. 말 그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인데 아빠 같은 고령의 중증환자들에게는 에크모나 CPR은 환자의 고통만 더해주지 예후는 좋지 않다.라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오랜 긴 고민 끝에 동의란에 사인을 했다. 아빠를 살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란 말을 해두고 싶다. 그렇게 해서 살더라도 고통만 받다 돌아가실 확률이 높단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싸인을 끝내고 많이 울었다.ㅇ병원에서 만난 두 번째 각서에도 비슷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땐 나도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고 그냥 사인을 했다. 의사 역시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아빠정도의 상태라면 대략 짐작 가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 법이다. 하지만 세 번째로 만난 각서에는 설명조차 없었다. 그냥 '알지 않느냐'라는 눈빛이었다. 무심결에 동의란에 사인을 하려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거지? 뭘 그리 잘못하며 살아왔길래 아빠 목숨을 포기한다는 동의를 세 번이나 해야 하는 걸까. 괜히 부아가 치밀어 손에 집히는 건 다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어내는데 저 멀리서도 아빠임을 알 수 있는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서류에 기재할 부분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당장 내 딸을 데리고 오라며 소리를 치는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귀에 익숙하게 꽂힐수록 불안함과 조급함이 몰려왔다. 분노의 이유는 뻔하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주변 컨디션을 캐치하시고 요양병원임을 직감. 그 후 난동일 테지. 시간상 타이밍이 딱 맞다. 오전에 투약한 수면제는 전혀 효과가 없는듯싶었다. 심장 어쩌고 하며 아주 극소량만 투여한 게 분명하다.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내 심장박동도 점점 빨라졌다. 나에 대한 원망 남편에 대한 욕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이런 쓰레기 같은 병원에 감히 나를 데려다 놔!!!!”
“당장 내 딸 데려와!!!!!!!!”
"이런 #)#$)%것들아!!!"
한없이 처연했던 노인은 사라지고 다시 못된 대머리 인형이 돌아왔다. 좀 전까지 엠뷸런스 안의 애틋한 장면은 싹 리셋되고 나는 다시 멘붕 속으로, 아빠는 분노 속으로 귀환해 버린 것이다.
지치지도 않는지 고함소리는 내내 이어진다. 펜을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해지고 반사적으로 자꾸 고개가 병실로 향하는데 남편이 듣지 말라며 두 손으로 내 귀를 막아줬다. 저렇게 화내고 소리 지르는 이면엔 '공포'라는 감정이 가득할 테지. 그 마음에 이입되어 눈물이 차오르는데 상황 파악을 대충 끝낸 데스크의 간호사들이 한마디 건넨다.
“보호자님, 아버님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저희가 진정시킬게요."
그 말에 마지막 보호자 서명 부분에 사인을 대충 휘갈기고 도망치듯 뒤돌아서는 찰나 아빠의 병실 앞에서 서성이는 간병사를 만났다. 한국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듯한 외국인이었다. 나는 내가 남에게 이렇게 90도로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첫 상대가 생판 모르는 외국인 간병사가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고개를 세울 틈 없이 한없이 굽신대며 인사를 했다. 부디 저런 우리 아빠라도 따듯하게 돌봐주기를... 너무 구박하진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 둔 현금봉투를 허겁지겁 손에 쥐여주고 돌아서는데 영문도 모른 채 하얀 봉투를 손에 쥔 채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봤던 그 젊은 간병사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뒤돌아야 한다. 이곳에 아빠를 두고 나는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내가 두고 와야 할 건 아빠뿐만이 아니었다.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과 동정심, 애틋함 그리고 남아있는 애정까지 모두 두고 와야만 했다. 하나라도 가지고 갈라치면 무언가가 한없이 무거워져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가까스로 한 움큼 덜어내 요양병원 문턱에 두고서야 비로소 발걸음이 떨어져 집으로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