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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16. 2023

요양병원 가는 길

아빠 나 미워하면 안 돼. 그리고 아빠 혼자 둬서 미안해.


중환자실 퇴원날


모든 게 마무리가 되었다. 수납도 끝났고 이대로 아빠를 들어 옮기기만 하면 된다. 조금의 타이밍도 엇나가선 안되므로 오전부터 묵직한 긴장감이 목덜미를 뻐근하게 짓눌렀다.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순환기내과 담당의가 데스크에 나를 앉혀놓고 몹시 송구하기 이를 데 없다는 투로 아빠의 예후가 안 좋을 거라는 말을 꺼낸다. 충격적인 비보를 접한 내가 주저앉아 오열이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눈치였으나 무덤덤한 내 표정을 보곤 살짜기 놀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ㅅ병원에서부터 아빠의 소견서를 넣은 여러 군데의 요양병원까지, “아빠를 어떻게 살게 할 건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내드릴 건지를” 생각하란 말을 나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고 아마도 의사는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흠, 그래도 너무 비정한 딸로 보이지 않았을까? 아무려면 어때. 


상담을 끝내고 어마무시한 양의 내복약과 처방전을 챙기고 나니, 요양병원에서 온 직원이 중환자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빠의 전원 사실은 중환자실 간호사, 의사, 보호자, 그리고 직원까지 모두 지켜줘야 할 오프더레코드였기에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혹시라도 새어나가면 모든 것이 망하므로 나는 아빠가 무얼 물어볼 때마다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 않으려 엄청나게 노력해야만 했다.

요양병원에도 일부러 이름이 찍히지 않은 민무늬 이불을 요청했고 아빠의 예민함을 줄이기 위해 오전에 수면제까지 투약하였으니 할 수 있는 대비는 모두 한 셈이다. 모두의 배려로 아빠는 ㅇ병원 산하의 (고급) 종합병원으로 전원 하는 줄 알고 있었고 다행스럽게 큰 이슈(라 쓰고 난동이라 부른다) 없이 순조롭게 퇴원 수속이 마무리되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직원과 아빠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멀뚱히 서있던 직원에게 말을 걸어본다.


“제 친구 시아버지도 그 병원에 계세요. 추천받고 가는 거예요.”

“아, 예.. 그러시구나. 혹시 환자분 성함이..?”

“김 ㅇㅇ 어르신이요.”

“아… 김ㅇㅇ어르신... 네.. 그렇군요..”


머쓱한 침묵에 약간 무안해졌지만 짧은 찰나 직원의 낯빛이 어두워진 걸 느꼈다.

난 이 느낌이 뭔지 안다. 아빠가 난동 부릴 때마다 보여준 병원 직원들의 그것과 비슷하거든.

안타깝게 되었군요. 여기 한 분 더 갑니다.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찰나의 순간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앰뷸런스 안 

남편은 병원으로 미리 출발하고 또다시 아빠와 나만 남았다.

아빠는 종종 흥분상태가 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온순했고, 이따금씩 눈곱이 들러붙어 안 떠지는 눈을 힘겹게 뜨고는 “여기가 어디냐” , “어디로 가느냐”를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응. 아빠 우리 병원으로 가는 길이야,” “거의 다 왔어 아빠 좀만 참자”라고 다독여 주었는데,  ㅅ병원의 퇴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궁극의 목표 달성 직전인데, 성취감보다는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달려들어왔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3월의 봄볕이 마음을 흔든다.

괜히 “사랑해 아빠”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미안해"라는 말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껏 말했다.


“아빠 나 미워하면 안 돼. 아빠 내가 너무 사랑해 그리고 아빠 혼자 둬서 미안했어”


아빠의 눈에 회색이 스친다.


“으응, 그래 알지 내 딸, 고맙다”



아빠를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로지 병원으로 모시는 길밖에 없었기에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가는 것이 큰 슬픔은 아니었으나, 그 외의 감정들에 자유로울 순 없었고, 대부분은 아빠에 대한 애틋함과 안쓰러움이었다. 이가 다 빠져 말려들어간 입술을 들썩이며 "병원에서 밥을 한 끼도 안 줘서 배가 무척 고프다, 저기 병원 가면 밥을 좀 먹을 수 있나?"라고 물어봤을 땐 미간에 후추를 뿌린 듯 따끔해서 눈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응 그래, 아빠 병원 가서 바로 밥 먹자"


요양병원으로 가는 한 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따듯하게 서로를 향해 아름다운 말을 나눴다. 국도를 달리는 앰뷸런스 안은 해가 따스하게 들어와 먼지마저 한 올 한 올 아름다웠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던 그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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