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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Mar 31. 2023

나의 본질을 거스를 수 있을까?

고집쟁이의 영화추천 (2)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제목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감독 : 웨스 앤더슨

연도 : 2009년

런닝타임 : 1시간 27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 드라이한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 (충청도식 화법을 좋아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잘 하는 일이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 mbti가 j인 사람 (깔끔한 화면 구성에 희열을 느끼는 나같은 변태들)




폴로 니트를 입고 맞춤법을 잘 틀리지 않으며, 왼쪽 손목에는 메탈 시계를 찬다.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사실 전반적으로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편견과 오만에 기반한 생각이고, 또 인간 군상을 1. 너무나도 나의 입장에서만 2.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보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 인정한다! 그래도 사실 영어유치원을 나와, 유학을 가거나 사립 초등학교를 거쳐, 국제중학교와 특목 고등학교 등을 졸업하고 상경대에 진학한 아이들에게서는 비슷한 향기가 난다. 그들은 “무엇이든 하면 즐겁게 잘 할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 그리고 “할 수 있다”가 합치된 20년을 살아오다가 그 세 가지가 분리된, 어찌 보면 극단에 있는 현실에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때에서야 그들의 자아가 시험대에 놓인다.


“해야 한다”가 강한 친구들은 공부를 한다. 학점을 잘 유지하고, 대부분 로스쿨… 어쩔 때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하고 싶다”가 강한 친구들은 논다. 그것도 아주 생산적이고 즐겁게 논다. 동아리에 들어가서 뮤지컬 무대를 만들 때도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계속 탐구하다가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람들도 있다.

“할 수 있다”가 강한 친구들은 나의 경험상 가장 고통스럽게 사는 부류인 것 같다. 괴롭지만, 멋있게. 그저 자신의 능력치가 그걸 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아쉽고 아깝다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가장 힘들지만 남들이 선망하는 길을 고른다. 


확정적인 분류는 당연히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인 아주 운이 좋은 친구들도 봤고,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를 동시에 해내는 멋진 친구들은 발에 챌 정도로 많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 같다 : 목적의식이 사라진 삶은 혼란스럽다. 모든 동물들이 성교 후에 우울한 것처럼. 이 세상에 왜 놓였는지 아는 사람은 적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간절한 작업이다.


난 지금까지 목적의식을 “운명”과 유사어로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해리포터 덕후여서 그런가? 그 스토리라인에서는 입학하면 “분류의 모자”가 용기, 친절, 현명함, 야망이라는 각각의 성격대로 각 기숙사에 나누어진다. 마리 퀴리가 방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스파이더맨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로미오가 줄리엣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 것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 이런 고통과 행복을 느끼며 존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길 바랐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자칫하면 흔하디흔한 midlife crisis, 젊고 싱싱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을 때의 자기 자신과 현실과 타협한 자아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로 보기 쉽다. 속물적인 아내와 자신을 혐오하는 딸, 무능력자처럼 느껴지는 직업을 갑자기 모두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멋진 차, 좋은 몸, 어린 여자와의 섹스를 좇는 American Beauty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난 이 영화가 나의 본질을 거스를 수 있는지, 또 나의 본질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그려냈다고 봤다.




미스터 폭스는 임신한 아내의 요청으로 12 fox-years (여우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니까!) 동안 자신의 본질이자 열정, 그리고 미스터 폭스가 생각했을 때 “여우라는 생명체의 본질”인 도둑질을 그만둔다. 대신, 지역 신문기자라는 평범한 직업에 만족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십 년간 돈을 모아도 변변한 내 집 하나 마련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스터 폭스는 과거의 영광, 현실적 한계, 그리고 강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도둑질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스터 폭스가 사는 동네에는 각각 자신들의 오리, 닭, 사과를 목숨을 걸고 지키기로 유명한 세 농부인 보기스, 번스, 그리고 빈이 산다. 미스터 폭스는 한다면 하는 여우이다. 그들에게서 도둑질을 해내고야 말겠어. 마지막 한 번의 도둑질, 그러곤 정말 그만이야.


웨스 엔더슨의 영화를 보다 보면 마치 설날, 일 년에 한 번 남짓 보니까 절대 친하지 않지만 사회적 기대 때문에 먼 친척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기분이 든다. 다만 그 친척이 알코올 의존증과 아주 약한 조현병이 있어서 듣다 보면 응? 어? 하며 “이게 사람이 한 생각과 결정이 맞나”라는 의문이 든다. 웨스 엔더슨 영화 속 캐릭터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평온하게 해낸다. 관객이 속으로 비웃으며 “저게 뭐야”라고 생각하다가도 엔딩으로 다가갈수록 자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여우임에도 불구하고, 웨스 엔더슨 영화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축에 속한다고 느꼈다. 이 영화는 스톱모션 방식으로 촬영했다. 스톱모션은 촬영할 대상의 모형을 만들고 모형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1프레임 단위로 계속 촬영해 편집해 주는 방식으로 만든다.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내가 사라져볼게, 얍!” 하는 영상을 생각하면 된다. 


보통 스톱모션은 특유의 끊어지는 느낌을 살리며 이루어진다. “레고” 시리즈나 “패트와 매트”같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웨스 엔더슨은 스톱모션 영화임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때때로는 모형 여우들을 움직이는 제작자들의 손이 화면에 드러나기도 하고, 추격전 씬에서는 캐릭터들이 거의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하지만 미스터 폭스와 아내와의 대화 장면, 또는 미스터 폭스의 독백 장면 등 진지하고, 감독이 강조하고 싶은 장면에서는 스톱모션의 어쩔 수 없는 빈틈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화면을 만들어냈다. 머리카락이 날리고, 눈물이 천천히 떨어진다. 인형으로 만든 영환데, “오… 연기 잘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인 도둑질을 절실하게 하고 싶은 미스터 폭스, 옆에서 남편의 허황된 꿈을 지켜보며 절망하는 아내 펠리시티, 그런 아버지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닮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주어졌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우울한 아들까지 모든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쉽다. 웨스 엔더슨이 만들어낸 동화세계에 빠져서 우스꽝스러운 전개에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가슴이 뭉클해지는 영화이다.


결국 미스터 폭스는 도둑질에는 성공하지만, 그 대가로 보기스, 번스, 빈에게 추격을 당하게 된다. 그들은 미스터 폭스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미스터 폭스의 집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도 살고 있는 공동체의 보금자리를 파괴한다. 미스터 폭스는 본인의 욕심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욕심이 큰 만큼 머리도 똑똑하기에 금방 꾀를 낸다. 자기와 가족들은 물론, 잃어버리는 꼬리의 명예와 이웃들의 평화까지 지킬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엔딩 20분 전에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 나온다.


추격전의 과정에서 미스터 폭스는 보기스, 번즈, 빈에게 자랑스러워하던 꼬리를 빼앗긴다. 무모한 도전의 끝에 현실의 차가움 속에서 자아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꼬리를 되찾으러 아들과 함께 이동하던 중, 야생 늑대를 마주한다.


두 발로 걷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영화 속 다른 동물과는 달리, 늑대는 네 발로 걷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는다. 진정한 야생 동물, 진정한 사냥꾼이다. 그들은 그저 하염없이 바위 위에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늑대의 실루엣을 바라볼 뿐이다. 


미스터 폭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What a beautiful creature”


“난 늑대와 다를 것 없어. 나 정도면 야생동물이지. 야생동물이 아닌 여우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야생동물스러운 여우일 거야.”


미스터 폭스는 타고난 사냥꾼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사냥꾼이 아니라,,, 그저 지역 신문의 보잘것없는 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면, 내게 남는 건 뭐지? 

늑대는 여우에게 선망과 존경의 존재, 또 절대 닿을 수 없는 이상향. 늑대인 척을 하는 여우와 늑대의 본질은 분명히 차이가 있으니까.


인건의 뇌는 속이기 쉽다. 동상이나 전쟁으로 인해 팔이 잘려나간 사람이 때때로 팔에서 간지러움을 느끼고 긁을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고 한다. 팔의 부재에 적응하기 위해 뇌 속 신경세포를 관할하는 시냅스들이 재구성되어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한다.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서, 가짜 플라스틱 팔을 갖다 대고 그것이 진짜 팔이라고 뇌를 속이면, 그 플라스틱 팔을 긁었을 때 간지러움이 해소된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몸속 세포가 완전히 바뀌고, 없는 팔도 있다고 속일 수 있다면… 여우는 스스로에게 자기가 늑대라고 속일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본 늑대들은 자신이 늑대라고 믿는 여우는 아니었을까,


미스터 폭스가 늑대를 봤을 때, 절망감이 들었을까? 어쩌면 안도감이 들지는 않았을까? 


연세대 경영 학생들은 축복이자 저주를 갖고 태어났다. “무엇이든 하면 즐겁게 잘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뭘 해도 후회가 남는다.

코코 샤넬은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커리어에 일생을 바치면, 코코 샤넬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을 것이다. 가족에 일생을 바치면, 죽기 전에 “아, 그래도 내가 흥미를 느낀 분야에 온전히 빠져볼걸” 하는 후회가 남을 것이다.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중년이, 아니면 죽기 전까지도 모를 것 같아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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