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떼뜨망 Apr 05. 2023

이용하지 않고 아낄 수 있는가?

고집쟁이의 영화추천 (3) : 더 웨일 리뷰

제목 : 더 웨일

감독 : 대런 애러노프스키

연도 : 2023년

런닝타임 : 1시간 47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 불편함을 잘 견디는 사람 (자해 / 기타 자기파괴적 행위에 민감하다면 보지 마세요), 영화를 볼 때 분석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사람,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은 사람





내게 있어 완벽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완벽이다. 현상 세계 밖에 있는 원 같은 것 말이다. 어느 지름도 다른 지름보다 길지 않고, 어느 곡선도 다른 곡선과 상이하지 않다.

두 번째는 불완전함에서 파생되는 완벽함이다. 공복에 런닝을 한 뒤 차가운 샤워를 할 때 등을 따라 흐르는 얼얼한 물방울과 허벅지 근육의 움찔거림을 느낄 때의 완벽함, 남자친구의 살짝 쿰쿰한 냄새가 나는 맨투맨에 얼굴을 묻고 코가 뭉개질 정도로 세게 포옹할 때 느끼는 완벽함.

부분적으로 분석했을 때는 전혀 완벽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관조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소중한 완벽들이 있다.


진실도 마찬가지다.

"나 남자친구랑 계속 사겨도 되겠지?"라는 울먹이는 친구의 질문에,

"아니! 애초에 나한테 이걸 물어보는 것 자체가 계속 사귀면 안된다는 사실의 반증이야, 멍청아. 단순한 요구를 했다고 해서 너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 가스라이팅이 안 느껴져?" 라고 화낸다면, 그것도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난 너를 믿고, 너의 선택을 믿어. 너가 옳다고 느끼는 선택이 옳은 선택이야."라고 한다면... 난 그것도 일종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진실에 집착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잡기 위해 고래사냥에 나선 세 명의 사냥꾼이 있다. 고래를 잡으면, 난 행복할거야.


And I feel bad for Ahab as well, because he thinks that his life will be better if he can kill this whale, but in reality it won’t help him at all.
그리고 난 아합도 불쌍했다. 왜냐하면 그는 고래를 죽이면 자기의 인생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찰리는 혼자 사는 중년의 게이 남성. 대학교에서 비대면으로 비판적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https://www.univision.com/entretenimiento/cine-y-series/the-whale-video-transformacion-brendan-frase

그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250kg에 육박하는 초고도비만의 몸을 가졌다는 점. 거구를 지탱하는 지팡이나 눈 앞에 있는 물건을 집을 때도 사용해야만 하는 집게 없이는 몸을 제대로 겨누기도 어렵다.

그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간호사 친구 리즈 덕분이다. 매일 혈압을 재고, 휠체어를 가져오며, 음식을 포장해서 배달하기도 한다. "초고도비만인데 왜 패스트푸드를 가져다주는거지?"하는 의문점이 들었다면, 그건 아마 주변에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가까운 지인이 없어서일 것이다. 어쩔 때는 너무 괴로워하는 상대방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금의 따뜻함이라도 배달하는 것이다.

어느 날, 리즈는 평소처럼 찰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그가 일주일 안에 죽을 것이라는 사형선고이다. 찰리에게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딸과 다시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딸을 최대한 찰리와 분리시켜서 키우고자 한 전 아내의 요청을 무시하고 딸 앨리를 집으로 부른다.



1. 앨리 : 사과와 보상

https://collider.com/sadie-sink-the-whale-comments/



찰리는 역겨운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자신을 도와주는 리즈에게 순한 눈으로 거듭 "미안해"하며 사과하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좋은 대학 교수이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점은, 본인의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 


Do you ever get the feeling people are incapable of not caring? People are amazing.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아끼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기분이 들 때 없어? 인간들은 아름다워.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의 인생의 행보를 관찰하면 그닥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가깝다. 아내와 결혼해서 딸 앨리를 얻은 후, 학생 중 한명과 사랑에 빠져서 8살의 앨리와 아내를 뒤로 하고 남자친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8살에 아빠 없이 자란 앨리는 18살쯤에는 끔찍한 인간이 됐다. 찰리의 몸을 찍어서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조롱하는 글과 함께 올리는가 하면, 폭력적인 성향으로 친구 한 명 없고, 선생님과 엄마도 포기한 문제아다. 십년만에 자길 집으로 부른 찰리에게 느끼는 분노와 역겨움을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앨리에게 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 수업을 낙제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위기에 있는 앨리의 에세이를 대신 써 주는 대신, 앨리는 찰리의 십억대 전재산을 물려받는 것이다.


앨리는 알겠다고 한다. 

그녀는 찰리를 이용하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앨리의 목표는 찰리의 돈이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진심어린 사과와 그녀의 인생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였을 수도 있다.

앨리가 찰리에게서 사냥해내고자 한 이 두 가지 사냥감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찰리가 앨리에게 제공하지 못한 것들이고, 그로 인해 앨리의 인생이 더 나쁜 방향으로 틀어졌다는 면에서 말이다. 


찰리는 뒤늦게라도 돈, 사과, 따뜻한 말을 재물로써 바친다면 앨리에게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보면 서로를 사냥하고 있었을지도.




2. 토마스 : 구원

https://theface.com/culture/the-whale-ty-simpkins-interview-oscars-2023-call-sheet


토마스는 기독교에 기반한 사이비 종교를 선교하려고 찰리의 집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찰리의 목숨을 살린 선교사이다. 

토마스는 호모포비아를 가진 극단적인 기독교인이기에 찰리에게 극심한 혐오와 관심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사실 그가 말하는 전도사가 아닌 것이다. 개인적인 구원을 위해 찰리에게 접근했고, 찰리를 본인이 구원하면 본인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단순한 악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찰리에게 아주 무례하게 행동한다. 


구원자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서, 찰리를 구원한다면 본인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삶이 며칠밖에 안 남은 찰리지만, 간의 벼룩을 내듯이 자신이 빨아먹을 수 있는 마지막 feel-good의 한 방울까지 얻고자 한다. 




3. 찰리 : 자기 파괴


마지막 사냥꾼은 찰리 그 자신이다.

찰리는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이중성이 있다. 

웃는 찰리는 너무나도 긍정적이다. 웃는 찰리가 가진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면, 토마스를 해치려는 앨리의 행위는 따뜻함에서 비롯된 행위로 보인다. 절망적인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과 농담을 하고 창문 밖 새들을 위해 치즈를 썰어서 내놓는다. 

우는 찰리는 상황의 절망을 온 피부로 느낀다.


You could have just fucking called me. All this time. You could have been part of my life.
전화라도 할 수 있었잖아.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도 안 했으면서. 내 인생의 일부가 될 수 있었으면서
Ellie. Look at me. Who would want me to be a part of their life?
앨리. 날 봐봐. 도대체 누가 날 자기 인생의 일부가 되길 바라겠어?


찰리를 죽인 폭식이라는 소재, 그리고 그의 남자친구를 죽인 우울증이라는 소재는 1.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이루어지는 살인이라는 점 그리고 2.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리즈가 아침에 찰리의 심박수를 재고,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곧 죽을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끔찍한 소식을 듣고도 습관적으로 초콜릿으로 가득 찬 서랍을 열어서 하나를 먹기 시작하다가, "아, 이러면 안되지"하는 마음에 다시 서랍에 던져두고 서랍을 닫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잰 심박수를 구글에 검색해본다. 삶이 일주일 남은 시한부임이 확정된다. 우울증의 파도에 잠식된다. 곧바로 서랍을 다시 열어서 남은 초콜릿들을 하나하나 삼킨다. 씹지도 않고, 맛도 느끼지 않고, 자신을 벌주는 것처럼, 마치 더 나은 삶을 바랄 가치도 없는 것처럼 자해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그가 한 나쁜 선택들에도 불구하고 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설득된다. 이 영화로 화려하게 복귀한 브랜던 프래이저의 연기력과 선한 파란 눈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https://www.insider.com/brendan-fraser-starved-george-of-the-jungle-brain-memory-loss-2022-12

실제로도 브랜던 프래이저의 개인사는 찰리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헐리우드에서 엄청난 섹스 심볼이었고, 그동안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10년간 배우 생활을 중단하고 외모에 큰 변화가 올 정도로 큰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이 영화로 복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했다. 그 정도로 찰리의 이중성을 엄청나게 잘 연기했다.


천성이 선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행한 과거의 악행과 주변 사람의 불행에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4의 아픔이 10으로 다가온다. 찰리의 여러 선택들; 고도비만으로 이어지는 나쁜 습관들,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앨리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결정, 되도록이면 도움을 안 받고 피해를 안 주려는 태도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벌처럼 느껴진다.


찰리는 고래인 동시에 아합인 것이다.


 



위 세 사람은 모두 찰리를 이용한다. 그런데도 정말 찰리가 말하듯이 "인간들은 아름다"울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대를 이용하지 않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가장 사랑하는 애인에게서는 내가 매력적이라는 확신과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고자 한다. 가장 존경하는 부모님에게서는 경제적, 정서적 안정을 바란다. 가장 친애하는 친구에게서는 기댈 수 있는 어깨와 멋진 불금을 얻고자 한다. 

아무리 에리히 프롬에 빙의해서 사랑과 존경과 친애를 일방향적인 사랑으로 정의하려고 해도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찰리의 말도 맞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아끼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참 따뜻한 영화라고 느꼈다. 


이 영화는 엄청나게 호불호가 갈린다. 그리고 스토리라인에 대한 비판을 많이 읽었다. 일부는 동감이 간다. 특히 찰리를 "감정도 없는 동물"로 표현하는 동시에 그를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캐릭터로 그려내서 건강하지 않은 메세지를 보내는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난 이 영화가 감독이 정교하게 의도한 메세지를 목구멍으로 쑤셔넣는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다르게 느낀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개념들은 어떤 필터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남자친구가 오래 사귄 여자친구에게 더 이상 설레지 않지만 관성으로 돌아온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설레지도 않는데 여자친구를 보고 싶다는건, 사랑이 아닐까?

부모가 시험에서 불합격한 아들에게 실망하고, 실패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망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아들의 능력을 믿었다는 뜻 아닐까?


이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 위해, 사냥하기 위해 곁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곁에 있어야 한다. 곁에 있다면 아끼게 된다. 


찰리는 "진실"에 집착한다. 대학 수업 학생들에게도, 토마스를 처음 봤을 때에도, 진실을 말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가장 솔직한 앨리의 에세이를 사랑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찰리의 고통과 정신과 육체까지 이용하지만, 그리고 찰리 또한 앨리와 리즈를 구원의 도구로 이용하지만, 찰리는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서 삶을 돌아봤을 때 인간의 아름다움을 본다. 필터에 가려진 진실을 본다. 고래사냥은 성공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캐릭터들의 결정의 경중, 선악을 판단하고 분석하기보다 공감하고, 고통을 함께 느끼려고 노력하며 보길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경험한 해방감과 희망을 함께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본질을 거스를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