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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May 11. 2023

욕망이라는 게임의 규칙

고집쟁이의 영화추천 (4) : 욕망의 모호한 대상 리뷰

제목 : 욕망의 모호한 대상

감독 : 루이스 브뉘엘

연도 : 1977년

런닝타임 : 1시간 45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 연애를 3번 이상 해 본 그리고 실패해 본 사람, 영화를 보면서 가볍게 웃고 싶은 사람





깔끔한 정장 차림의 백발 중년 마테오는 파리로 행하는 기차에 탔다. 뭔가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인데, 무슨 이유일까? 우리 질문의 싱그럽고 아름다운 대답이 창 밖에 보인다. 머리를 하나로 땋은 예쁜 소녀가 애타게 마테오를 찾는 것이다. 그를 발견한 소녀는 무언가 항의를 하려고 하지만, 마테오가 양동이에 미리 채워둔 물을 소녀의 머리 위로 쏟아버린다.



소녀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멍하게 서 있다가, 곧 바리바리 챙겨 온 짐을 바닥에 던지고 기차에 몰래 탑승한다.

마테오와 같은 칸에 있던 탑승객들은 이 기행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는 못한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탑승객 중 심리학자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마테오는 콘치타(소녀의 이름이다)와의 역사를 회상한다.



콘치타는 마테오 집의 시녀로 취업했고, 마테오는 저항 없이 한눈에 그녀에게 빠져버린다.

망설임 따위는 개나 줘버린 마테오는 그날 밤 콘치타를 자신의 방으로 부르고 취하려고 하지만, 콘치타는 옅게 웃으며 거절하고 방에서 나간다. 다음날 아침,  콘치타는 사라졌다. 일을 그만둔 것이다.


마테오는 그녀를 그리워하지만, 찾을 방도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다시 그녀를 마주치게 되고, 마테오의 접근에 거부감이 들어서 도망간 줄 알았던 콘치타는 알고 보니 마테오에게 조금의 호감을 느꼈었나 보다. 마테오에게 집 주소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 이후 콘치타와 마테오는 정말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관계를 이어간다.


마테오는 미친듯한 집요함으로 콘치타의 몸을 얻기 위해 온갖 작전을 펼친다. 집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중년의 남성이 뽀뽀도 제대로 안 해주는 여자에게서 어떻게든 섹스를 쥐어짜 내려는 모습은 코믹함을 넘어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브뉘엘은 이런 모습을 아주 경쾌한 톤으로 그려낸다; 몰입감보다는 우화를 읽을 때 느끼는 가벼움을 느낀다. 전주 국제 영화제를 방문해 이 영화를 봤는데, 관객들도 이런 의도를 읽고 동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콘치타가 자기가 몸을 주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처녀이기 때문이라고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밝힐 때, 마테오가 눈을 반짝이며 비굴하게 웃는다. 같은 극장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폭소했다.


정조대를 준비해 온 콘치타


콘치타는 이에 대해 "전 당신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어요." "제 기타는 제 것이에요, 제가 원할 때, 원하는 사람을 위해 연주할 거예요" 하며 마테오의 접근을 거부한다. 마테오에게 왜 이렇게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하며, 마테오는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며 몰아세운다.


이 영화를 감상할 때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콘치타의 역할을 위해 두 명의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이다.

콘치타의 서구적, 차분하고 우아한 측면을 연기하는 캐롤 부케와 남미적, 정열적이고 다혈질적인 측면을 연기하는 안젤라 몰리나는 둘 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상이하다.

콘치타라는 캐릭터는 스페인 여자이지만, 캐롤 부케는 마테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인이고 안젤리 몰리나는 실제로 스페인 출신이다. 두 명의 콘치타를 캐스팅한 브뉘엘의 선택은 한 사람을 사귈 때에도 처해진 상황과 관계의 발전 정도에 따라 거의 두 명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평범하게 데이트할 때에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싸울 일이 생기면 믿을 수 없이 유치해지는 남자친구, 평소에는 사랑스럽지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바로 잔인해지는 여자친구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좌 캐롤 부케, 우 안젤라 몰리나


마찬가지로 영화 중 마테오에게 희망을 주거나, 순결을 지켜도 마테오의 비위를 맞출 때에는 캐롤 부케가 연기하지만, 미친 듯이 화를 내거나 춤을 추거나, 당돌하게 돈을 요구할 때에는 안젤라 몰리나가 연기한다.

끝끝내 마테오에게 집과 집문서를 얻어낸 후, 자정에 마테오를 불러낸 뒤, 문 앞에 세워두고 그 바로 앞에서 마테오가 죽을 듯이 역겹고 싫었다며 열을 내고, 자신은 한 번도 마테오를 사랑한 적 없었다며 자신의 젊은 남자친구를 문 앞으로 불러내 관계를 갖는 시늉을 내는 장면을 연기할 때에도 안젤라 몰리나가 등장한다.


마테오는 상실감을 넘어 새하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 다음 날 마테오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아무 일도 없었단 얼굴로 그를 찾아온 콘치타를 코피가 터질 지경으로 때리기 때문이다.





통상의 연애가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일까? 썸을 탈 때는 회심의 한 방을 날리기 전까지 가벼운 공을 서로에게 건네는 탁구 같다고 느꼈다. 어쩔 때는 밀당의 중간지점을 찾으려는, 계속해서 균형이 가운데에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치우치는 줄다리기 같기도 하고, 어쩔 때는 같은 팀에 선 채 세상을 상대로 전략적으로 행하는 축구 같기도 하다.

요즘 나는 연애가 죄수의 딜레마의 형태와 닮았다고 느낀다.


서로 협력을 선택하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겠지만, 한 명이라도 배신을 입술 뒤에 숨기고 있다면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배신을 선택하는 것도, 배신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실패의 쓴 맛을 느껴본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계속해서 협력만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어야 할 테다.


마테오와 콘치타의 관계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마테오에게 마지막 무기는 결혼하자는 프러포즈, 콘치타에게는 순결이다. 양측 모두 알고 있다. 마테오가 결혼하자고 하면 콘치타의 승리이다. 언젠가 그녀는 떠날 것이다.

콘치타가 섹스를 허락하면 마테오가 이긴 것. 떠나는 사람은 마테오일 것이다.

결국 둘은 이 복잡한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만난다. 테러리스트의 불꽃으로 표현된 어지럽지만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며 영화는 끝난다.


집요한 욕망과 사랑이 아닌 동기로 시작된 연애는 서로를 속고 속이는 싸움과 다를 것이 없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으면서 멍청한 선택을 하는 마테오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악하게 못된 콘치타 중 누구에게 동조가 되는가? 노년의 브뉘엘이 남긴 마지막 작품을 감상하며 자기 자신을 비웃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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