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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Jun 28. 2023

견딜 수 없는 후회, 멈출 수 없는 합리화

고집쟁이의 영화추천 (8) : 멀홀랜드 드라이브 리뷰

제목 : 멀홀랜드 드라이브

감독 : 데이비드 린치

연도 : 2001년

런닝타임 : 2시간 25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 셜록홈즈 같은 추리물을 즐겨 보는 사람,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처럼 영화가 끝나고도 스토리라인과 상징성을 곱씹는 경험을 즐기는 사람, 매트릭스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테스트하는 줄거리에 관심이 가는 사람





난 누군가랑 약속을 잡으면, 만나기 직전에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정독하기를 즐긴다. 이 버릇은 친한 친구의 습관을 그대로 답습한 것인데,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내 친구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이에 서로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1년, 2년 전에 비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상대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만났을 때에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이유긴 하지만,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어렸을 때 했던 보물 찾기나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파란색 장미처럼 사소한 부분에서 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출처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알기 쉽다.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싶은지 말이다.

봉사활동을 자주 가는 U는 자기가 착하고, 곁에 두면 좋을 사람이면 좋겠다.

언제나 어딘가 바빠 보이는 Y는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연예인 영상을 자주 공유하고 춤 연습 영상을 올리는 B는 인생을 즐기는 남자로 보이고 싶다.


나는 이런 점이 인스타그램 같은 SNS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의 성과를 보고 느끼는 질투심이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장치로 작용하듯이, 남들의 눈에 비치고 싶은 나의 어떠한 버전은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동기와도 같다. 


하지만 여기에 주의사항이 있다면, 그건 나의 '이상적 버전'이 진짜 나와 같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어떠한 배경에서도 이는 나쁘지 않겠지만 (오히려 자신감이 생길 수도!) 선악의 경계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선한 선택을 모색할 때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의 결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아주 긴 1부와 짧은 2부로 나뉜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난 2부와 1부가 모두 꿈이라고 결론지었다. 다만 2부가 1부보다 조금 더 현실적일 뿐.


1부


1부는 전체적으로 뭔가 꿈같은 필터가 덮여 있다. 화면도 마치 할리우드 골든 에이지의 그것처럼 필터가 씌워져 있고, 대사도 현실적이기보다는 전형적이다. 주인공인 베티도 너무나 완벽하다.

베티는 젊고 아름다운 배우 지망생이다. 꿈을 좇기 위해 예전에 배우였던 LA에 있는 이모의 집으로 이사 왔다. 그녀는 성격도 밝아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며 티 하나 없이 맑기에 이모의 집에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여성을 봐도 이모의 친구일 것이라고 지래 짐작한다.

영화의 세트장에서, 베티

하지만 그 이름 모를 여성은 사실 이모의 친구가 아니다.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납치를 당했고,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억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베티의 집에 들어온 것이다. 여자는 벽에 걸려있던 리타 헤이워스의 포스터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임의로 "리타"라고 정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리타

리타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베티는 리타의 가방 속을 보는데, 돈다발과 특이하게 생긴 푸른 열쇠를 발견한다.


여기서 베티와 리타의 스토리라인이 잠깐 끊기고,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1. 윙키네에서 일어난 일

"윙키네"라고 불리는 식당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식당이 꿈에 나오는데, 코너를 돌면 끔찍하게 생긴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코너를 돌고, 바로 끔찍한 존재를 발견한다. 남자는 쓰러진다.

식당 뒤에서 발견한 끔찍한 존재

2. 영화감독 아담 케셔

아담 케셔는 끔찍한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을 여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은행 계좌로도, 물리적으로도 협박하며 "카밀라 로오드스"라는 배우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집에 가보니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침대에 누워있다. 게다가 이건 모두 아담의 수준 미달의 성행위 때문이라고 퍼붓는다. 게다가 어떤 이름 모를 카우보이가 나타나서 다시 한번 카밀라 로오드스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자네가 한다면 날 한 번 볼 것이고, 자네가 잘 못 한다면 날 두 번 볼 테야."

베티를 바라보는 아담 케셔

이 때문에 아담 케셔는 세트장에서 베티를 보고 그것이 로맨틱한 것이든, 예술적인 것이든 강한 끌림을 느끼지만, 그녀 대신 카밀라 로오드스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도 베티는 따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자리를 벗어난다. 리타가 "다이앤 셀르윈"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고, 그 이름의 주인을 찾아서 탐색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담을 협박하는 카우보이

베티와 리타는 다이앤 셀르윈의 집으로 간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썩어가는 다이앤 셀르윈의 시체가 있다. 리타는 소름 끼치게 비명을 지르고, 베티는 뭔가 체념한 듯 담담하게 리타의 입을 막는다. 

리타가 위험에 처해있을 것이라는 점을 파악한 둘은 집에 와서 리타의 머리를 베티와 같은 금발로 바꾼다. 그날 밤 베티는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금발 가발을 쓴 리타. 둘은 마치 쌍둥이 같다.

그날 밤, 리타는 잠든 채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Silencio." "No Hay Banda." 그리고 베티와 함께 새벽에 Club Silencio라는 극장에 간다. 거기에는 특이한 공연이 펼쳐진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관객은 파란색 머리를 한 여인밖에 없고, 극장의 주인이 나와 계속해서 이상한 말을 반복한다.

여기에 밴드는 없지만 (no hay banda는 스페인으로 밴드가 없다는 뜻이다) 음악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것은 속임수다...

곧이어 여가수가 등장해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른다. 감정에 휩쓸린 베티와 리타는 눈물을 흘린다. 감정이 격앙된 여가수가 무대 위에 쓰러지지만, 마이크에서는 계속해서 노래가 나온다. 미리 녹음된 멜로디가 흐르는 것처럼.

클럽 실렌시오와 푸른 머리의 여인

공연을 보던 중 베티는 자신의 가방 속에서 파란 상자를 발견한다. 둘은 집으로 서둘러 들어와서 리타의 가방에 있던 파란 열쇠로 상자를 열고자 한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순간 베티는 사라진다. 리타는 베티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찾다가 결국 혼자서 상자를 연다. 그녀 또한 사라진다.


2부


2부의 첫 장면부터 조금 충격적이다. 다이앤 셀르윈이 시체로 누워있던 자리에서 우리가 "베티"라고 알고 있던 여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1부에 있었던 아름다운 필터나 비현실적인 다이얼로그는 사라졌다. 실제의 베티, 아니 다이앤은 신경질적이고 우울감에 휩싸여 있다. 


카밀라는 다이앤을 파티에 초대한다. 거기서 1부에서 주인공으로 내정되어 있던 "카밀라"처럼 생긴 여인이 마치 다이앤을 놀리듯이 진짜 카밀라에게 키스한다. 그리고 1부의 무능력한 감독, 아담 캐셔는 카밀라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그리고 파티의 배경에서 1부에 등장했던 카우보이가 문 밖으로 퇴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2부 카밀라에게 키스하는 1부 카밀라


이에 다이앤은 폭발한다.

카밀라의 살인을 사주하는 다이앤

다이앤은 살인청부업자를 찾아가 카밀라, 그러니까 1부에서 우리가 리타로 알고 있던 여인의 살인을 사주한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카밀라 때문에 다이앤이 캐스팅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다이앤과 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카밀라가 매몰차게 다이앤을 버렸기 때문이다. 


살인을 사주받은 남자는 다이앤에게, 살인이 끝나면 다이앤의 집에서 푸른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며칠 뒤 다이앤은 자기의 커피 테이블 위에 있는 푸른 열쇠를 발견한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1부 초반에 나왔던 노부부가 끔찍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다이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다이앤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로 달려간 후, 자살한다. 


클럽 실렌시오에서 봤던 푸른 머리의 여자가 속삭인다. "Silencio."




다이앤과 카밀라 사이에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1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먼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서 푸른 장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상징하고, 영화 속에 깔려 있는 메시지,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의미하는 장치이다. 푸른 머리를 한 여자가 이 영화의 비밀이다. 그녀는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조용히 공연을 내려다보고, 2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Silencio(침묵)."라며 시각의 끝을 넘은, 청각의 끝, 진짜 끝을 표명한다. 영화의 1부는 눈에 보이는 오케스트라이고, 2부는 오케스트라가 멈춤에도 흐르는 음악이지만, 이제 2부의 음악조차 멈췄기 때문에 정말 모든 꿈이 끝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꿈은 왜 꾸는 것일까? 그리고 현실의 경험을 조합한 요리라고 볼 수 있는 꿈에서 그 재료들은 어떻게 가공되는 것일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는 잠재의식에 깔려 있는 욕망을 꿈을 통해 해소한다. 하지만 잘 때 배고프면 밥을 먹고, 외로우면 연애를 하는 식의 단순한 해소가 아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우리의 잠재의식이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공되어서 꿈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럼 진짜로 다이앤의 욕망은 무엇일까?


먼저 간단한 것부터 볼 수 있다. 그녀는 살인이 실패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자신이 사주하긴 했지만, 다이앤이 칼을 들고 카밀라를 찌르는 살인이 아닌, 남자에게 사주한 살인이다. 그녀는 파란색 키를 보기 전까지는 카밀라가 죽어도 그것을 모르는 상태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썩 내키지 않는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려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인턴을 지원했을 때, "제발 떨어지게 해 주세요, " 빌거나 좋은 사람이지만,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게 이별을 고하러 나설 때 "제발 비 와서 약속 취소돼라, "하고 생각한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1부의 꿈에서는 살인을 사주받은 남자는 온갖 슬랩스틱 코미디를 찍으며 살인에 실패한다. 그리고 차에 타고 있던 리타는 차에서 탈출해서 도망친다. 마찬가지로 파란 열쇠는 베티가 아닌 리타의 손안에 있다. 여러 꿈속 장치로 다이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이 실패했길 바랐다.


또, 그녀는 카밀라가 날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의 카밀라는 섹시하고, 그것을 이용해 남을 조종할 수 있는 팜므파탈이다. 그래서 다이앤은 온 마음을 다해 카밀라를 사랑하지만, 카밀라는 이제 아담 캐셔와 결혼해야 한다며 다이앤을 버린다. 그 와중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이앤을 은근슬쩍 챙긴다. 파티에도 불러주고, 나무 덤불 사이에서 등장해서 직접 다이앤을 파티로 데리고 간다. 다이앤은 마음껏 카밀라를 싫어할 수도 없는 복잡한 상태에 빠진다.

카밀라가 온전히 다이앤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그녀는 멍청해져야 한다. 기억을 상실하고 다이앤에게 밖에 기대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야지 온전히 카밀라를 가질 수 있다. 

1부에서 기억을 잃은 카밀라가 유일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다이앤인 것처럼.


마지막 욕망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고, 공감 갔다. 다이앤은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은 사람, 좋은 배우였다면 좋겠다고 욕망한다. 


1부의 베티는 2부의 다이앤과 다르게 순박하고, 진심으로 리타(카밀라)를 돕는다. 이상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처럼. 다이앤은 1부에서는 그냥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한다. 아름다운 죽음도 아니고, 혼자 죽어 썩고 냄새나는 시체로 표현한다. 마음속 깊숙이는 자기가 그 시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리타는 미친 듯이 소리 지르지만, 베티는 침착하다.


2부에 따르면, 실제로 다이앤이 캐스팅되지 못한 이유는 카밀라가 더 오디션을 잘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담 케셔는 카밀라를 캐스팅한다. 하지만 1부에서는 온갖 요소들이 다이앤(베티)이 그 역할을 갖는 것을 방해한다. 

아담 캐셔는 계속해서 카밀라를 캐스팅하라고 협박당한다. 그리고 그 협박 뒤에는 할리우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강력한 내부 세력이 숨어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좋아했던 디테일은 카우보이이다. 아담 케셔가 받은 다른 협박들은 모두 할리우드의 내부 세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카우보이는 이와는 별개이다. 동기를 모를 카우보이는 별안간 나타나 아담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꺼낸다. 난 이것이 다이앤의 깊은 욕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캐스팅은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닌 할리우드 내부의 예측할 수 없는 운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이다. 어차피 다이앤이 조절할 수 없는 세력에 의해 불합격한 것이기 때문에, 다이앤이 더 좋은 배우였다 한들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는 위안이다. 카우보이는 운, 운명, 정해진 결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카우보이는 이 영화에서 두 번 등장한다. "자네가 잘못한다면 날 두 번 보게 될 것"이라는 대사를 기억하면 아주 흥미롭다. 카우보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두 번 등장했다는 것은, 1부에서 한 번만 그를 봤다면 한 번쯤 할 수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2부에서 다시 한번 봤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될 대로 돼라!"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나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이다.


글에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1부에서 베티가 다른 영화를 위해 오디션 하는 장면이 나온다. 1부의 비현실성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일개 신인 배우를 위한 오디션 현장이지만 주연 상대 배우를 포함한 감독, 프로듀서, 소속사 직원 등 열몇 명의 사람들이 방에 모여서 베티의 퍼포먼스를 본다. 거기서 베티는 웃고, 울고, 몸을 미세하게 떨다가 증오로 가득 차 소리를 지르며 열연을 펼치고, 박수갈채를 받는다. 하지만 거기서 유일하게 집중을 안 하고 있던 사람이 한 명 있다. 통통한 체구의 중년 감독인데, 다른 프로듀서들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동문서답을 한다. 곧이어 베티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서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은 그 감독을 지칭하며,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한물 간 감독이라고 설명하며, 베티에게 그의 말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 감독의 이름은, 2부에서 다이앤 대신 카밀라를 캐스팅한 감독의 이름과 같다. 다이앤은 불합격의 이유가 감독의 무능력함, 집중의 부재, 내부 세력, 거기에 더한 그저 할리우드의 알 수 없는 운명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 다이앤을 1부의 아름다운 꿈은 위로한다. 




베티로 둔갑한 다이앤이 마치 인스타그램 속 나처럼 느껴졌다. 어둡고 치사한 흑역사는 잘라내고 수많은 실패 중 손에 꼽히는 성공들, 평범한 얼굴에서 가장 예쁜 각도들, 주기적으로 오는 우울 중 간헐적인 행복들을 진짜 나인 것처럼 재구성한다. 다들 그렇다. 


그런 다이앤이 안타깝게까지 느껴진다. 모든 실패를 비극적인 운명과 타인의 무능력함으로 합리화시키고, 그것을 꿈에까지 투영시켜 자기를 방어하고 싶어 하는 기분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화의 범위를 벗어나는 악행을 저질렀을 때, 그 후회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 No hay banda. 밴드는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음악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던 것처럼.


이 글에서는 다이앤의 욕망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했지만, 데이비드 린치 영화인만큼 숨겨진 상징들과 의미를 찾는 것도 정말 흥미로운 과정이다. 볼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영화 중 하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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