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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Feb 14. 2024

캐나다 친구들이랑 알프스에서 스키 타다가 피 난 썰

고집쟁이는 교환학생 (8): Les Arcs, 리옹

눈 위에 피가 흐르면 붉은색이 아니라 갈색에 가까운 노란색이라는 사실, 다들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혼자 교환학생 신분으로 유럽에서 살며 참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다!

입술 위에 아직은 좀 울퉁불퉁하게 남은 바늘자국을 핥으며 이번 글을 시작해 본다.




파리에 오자마자 빠르게 캐나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단체 채팅방에 초대됐다.

John이 일주일 전에 즉흥적인 스키 여행을 제안했다. Kevin, Laily, 그리고 내가 참여하며 첫 프랑스 국내 여행이 시작됐다. 

John은 Gare de l'Est에서 차를 렌트했고, 나머지는 음악이나 간식 따위를 준비해 갔다. 


알프스에 가까워질수록 산꼭대기에 구름이 걸린 형상을 자주 보게 된다


캐나다인들이라 다들 스키 실력이 상당할 줄 알았는데, 스키 경력만 10년이 넘는 John을 제외하면 Kevin은 평범한 수준이었고, Laily는 인생에서 처음 스키를 타보는 상태였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자주 스키장을 다녔지만, 마지막으로 스키를 탄 지 12년이 넘어서 조금 긴장됐다. 알프스 산맥 위에 스키장을 만들어놓은 거라, 한국의 스키장보다 훨씬 가파르고 안전장치가 적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라서 더더욱 걱정됐다. 하지만 대체 언제 또 알프스 산맥에서 스키를 타 볼 기회가 있을까? 

기대감이 우려를 이겼다.



스키를 빌리고 뒤뚱뒤뚱 걸어 나갔다. 내가 예전에 이걸 진짜로 한 적이 있다고? 스키 밑바닥이 뽀득뽀득한 눈에 자꾸 미끄러져서 걱정이 점점 커졌다.

리프트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와중에도 "못 내려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John이랑 Kevin이 자꾸 허세를 부리는 바람에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난도가 높은 코스로 시작했다. 결국에는 날씨 때문에 리프트를 운영하지 않는 가장 꼭대기를 제외하고 두 번째로 높은 고도까지 올랐다!


리프트가 생각보다 너무 높이 올라갔다. 


표정이 언 나를 보고 John이 거듭 설명했다. 

"내릴 때가 되면 엉덩이를 리프트 모서리에 두고, 그냥 무릎만 펴면 돼! 리프트가 널 앞으로 밀어줄 거야. 알겠지?"

꼭대기에 올라서 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John이 차를 몰 때 Laily가 계속 풍경을 보고 감탄한 다음에 John을 놀렸었다.


"우리는 감탄할 수 있는데, 너는 밖에 풍경 쳐다보지 마! 원래 자기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거 몰라? 절벽 밖으로 운전할 건가 봐!"


꼭대기에 오른 나한테 해 줘야 했던 조언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을 수 없이 아름답고 넓어서 위험하게도 자꾸만 언덕 밖으로 눈과 몸이 기울었다.


난 원래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다. 처음에는 좀 뒤뚱거리다가, 나중 가서는 완전히 감을 잡고 스키장을 날아다녔다. 정말 재밌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저 신났다.


속도를 때의 스릴, 갑자기 실력이 확 늘어난 날 보고 옆에서 계속 호응하는 친구들의 목소리, 꽁꽁 싸맸지만 얼굴을 스치는 바람,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와-소리가 나오는 풍경까지!


타고 있는 와중에도 "다음에는 샤모니에서 스키 타야지!"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스키를 타다가 너무 추우면 중간에 chalet에 들어가서 핫초코를 마셨다.

이제 문제는 가장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시작됐다.

나중 가서 내가 실력이 많이 올라오니, Kevin과 John이 레드 코스로 내려오자고 제안했다. (black -> red -> blue -> green 순으로 어렵다)

Laily는 엄청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이 레드 코스로 내려오게 됐다. 나는 큰 문제없이 코스를 완주하고 chalet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는데, John이랑 둘이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Kevin이랑 Laily가 안 내려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Laily를 도와주려던 Kevin이 넘어져서 둘이 서로 엉킨 채로 한참을 기다리다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거였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원래의 계획보다 귀가가 늦어졌다.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넷이 조심스럽게 코스를 내려갔다. 그때쯤 되니 날씨도 많이 추워져서 장갑을 낀 나도 손이 언 감각이 느껴졌다.


마지막 코스 하나를 남기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Laily가 많이 힘들어해서 나머지 두 명이 그녀를 거의 들어 올리다시피 해서 내려와야 했다. Kevin이랑 John은 나보고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얘기했다.


순조롭게 내려가고 있었는데, 밑에 자꾸만 울퉁불퉁한 언덕들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머릿속으로 "어..? 어..?"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떻게든 몸을 가누려고 노력하니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다가 정말 갑자기 커다란 턱이 느껴졌고, 그 상태로 앞으로 풀썩 넘어졌다. 


"윽" 하는 느낌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 뒤에서 한 여자분이 "Tu es bien?(괜찮아?)" 하면서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Non, aide-moi!(아니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잘못 들었는지 아니면 내가 웃고 있어서였는지 엄지를 척 들어 올리고 쌩 지나가버리셨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좀 더러운 장소에 넘어져서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앞의 눈만 갈색으로 얼룩덜룩한 것이었다! 


'아 이게 뭐야' 하면서 입을 쓸었는데, 선명한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ㅋㅋㅋㅋ

정체불명의 갈색 자국은 내 피였던 것이었다. 

닦아내려고 했는데 멈추지를 않았다. 


'도대체 뭐지?'


아프지가 않으니까 공포감이 더 컸다. 이빨이 부러졌는데 너무 아파서 감각이 마비된 건가? 아니면 코피가 났나? 핸드폰 화면을 켜서 거듭 확인했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


눈 위에 엎어져서 10분 정도 기다렸더니 뒤에서 John이 오는 게 보였다. 

날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거의 날 안다시피 해서 보건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거의 언덕의 가장 아래서 넘어져서 가까운 곳에 응급실이 있었다. 


입술을 꿰맨 직후

별 건 아니었다. 넘어지며 본능적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고, 윗입술에서 피가 난 것이었다!

빠르게 한 바늘을 꿰매고 약을 처방받았다.


별 건 아니었다. 다만 의사가 꿰매기 직전에 John에 대해 "남편 분께 들어오시라고 할까요?"라고 해서 조금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정말 동양인들의 나이를 가늠을 못하는 것 같다)



다음 날에는 Laily와 근처 호텔에서 스파와 야외 온천을 즐기고, 뷰가 엄청났던 식당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Laily는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정말 귀엽고 발랄한 친구라, 친해지기 쉬웠다.

전 날의 근육통이 모두 풀렸고, 핫초코로 인해 냉기도 사라졌다. 


그날 저녁에는 정말 귀여웠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직접 닭고기와 불닭볶음면 요리를 해 먹고, 슈퍼볼을 보며 카드게임을 했다.


산꼭대기에 걸린 구름을 보며 일어났던 너무 예쁜 숙소

돌아오는 길에 생택쥐베리의 고향이기도 한 Lyon에서 현지 음식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는 한 번도 어떤 이유로든 다쳐서 이런 종류의 시술을 해본 적이 없었다.

타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하고, 보험료까지 청구하는 과정이 생소했다.


당시에는 당연히 무섭고 당황스러웠지만, 나름 재밌었다.

새삼 지금까지 좀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하게 자라온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상처를 꿰매본 적도, 스포츠를 하다가 다친 적도 없었는데! 


내 인생 첫 바늘이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가 생긴 상처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얘기하면 조금 이상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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