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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Mar 01. 2024

유럽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고집쟁이의 세계여행(모로코1): 야시장, 아이트 벤 하두, 경제 구조 

유럽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모로코!


후끈한 열기를 기대하고 내린 공항의 공기는 의외로 포르투갈보다 쌀쌀했다. 수분이 적은 아프리카의 땅은 상당 부분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태양의 뜨거움을 쉽게 견디지만 그만큼 쉽게 흘려보낸다.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전통 가옥 숙소인 리아드로 이동을 시작했다.

생소한 광경에 창 밖을 계속 쳐다보게 된다. 


차보다도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아빠, 엄마, 딸 아들 한 명씩 하나의 오토바이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엄마의 머리는 눈을 제외하고는 히잡으로 둘둘 가려져 있었다. 폰으로 사진을 찍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머지 표정을 알 수 없으니 그 감정이 견제인지 궁금증인지 무관심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걱정이 많은, 나의 동행자 친구 헤일리는 얼른 폰을 집어넣으라고 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0살까지 살았는데, 아이폰 같은 최신 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자동차 창 너머로 그런 비싼 물건이 보이면 무작정 걸어와 핸드폰을 뺏으려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난 괜히 긴장해서 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창에 고개를 기대고, 가로가 세로보다 긴 벽돌처럼 생긴 건물들과 그 앞에 아랍어로 휘갈긴 듯이 적어둔 사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음성들도 귀 기울여 들었다. 웬만하면 단어 한 두 개의 뜻은 유추할 수 있는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 달리 베르베르어와 아랍어는 내 귀에 외계어 같았다.


어떤 나라든 여행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야시장 구경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현지 사람들 구경도 너무 재미있다.

리아드에 집을 맡기고 야간 시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싱싱한 과일로 만든 주스는 3천 원, 삼각형 원통의 도자기 그릇에 담긴 신기한 tajin이라는 요리는 5천 원밖에 안 했다. 유럽의 사악한 물가에 지친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이나 유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적극적인 호객 행위도 인상 깊었다.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내 관심을 끌려고 했다. 평생 들을 "니하오"와 "곤니치와"는 모두 들은 것 같다. 인도계 사람인 헤일리를 볼 때마다 "sister"이라고 부르며 손을 잡는 등 과감한 스킨십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착각받을 때와 같이 조금 짜증이 뒤따랐다. 

내 얼굴만 보고 국적을 예상하는 게, 대화 한 번 나눠 보고 성격을 짐작하거나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큼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또, 나의 가장 작고 의미 없는 특성인 국적 하나로 인해 쉽게 말을 거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투어가 시작되었다. 

첫 목적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아이트 벤 하두. 11세기 모로코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하라 인들의 전통 주거지다. 

붉은 진흙에 물을 섞어 쌓아 올린 네모난 건물들이 보였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강수 피해가 있을 때면 금방 다시 진흙으로 보수 공사를 한다고 한다.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케시까지 오는 상인들이 머물렀다는 이 도시.


생김새가 특이하고 "아프리카"라고 했을 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의 모습을 가져서,  "왕좌의 게임, " "글레디에이터, " "더 머미" 등 다양한 영화가 촬영된 곳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 지역의 경제 구조는 농업 10%, 영화 산업 30%, 그리고 관광 60%로 이루어져 있다. 


할리우드나 그 외의 영화 스튜디오가 아이트 벤 하두에 촬영을 오면 필수적으로 정부에 허가비를 낸다. 또 현지인들은 자주 엑스트라나 보안 스태프로 고용된다고 한다. 우리 가이드도 "왕좌의 게임" 엑스트라로 등장했다고! 스타랑 사진 찍으려면 가이드가 끝나고 남으라며 능청스럽게 농담했다.


흥미로운 동시에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10%의 농업을 제외한 나머지 90%는 타국인들의 주머니에 의존한다는 말 아닌가?


사프란, 포스페이트, 인디고 등 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은, 그 자원의 완전한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정부, 자체적인 신사업을 고안하기에는 너무 낮고 불평등한 교육 수준, 그리고 홀로서기를 하기 전에 막대한 자본 유입에 익숙해져 버리게 만든 거대한 관광 및 영화 산업 플레이어들로 인해 몇 십 년간 그대로 성장을 멈췄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기념품 강매도, 조금은 무례한 호객 행위도, 내 뒤로 메아리처럼 울리는 "아리가또"도 어제만큼 거슬리지 않았다.

100번의 "아리가또" 중 30명은 일본인일 테고, 30명의 일본인 중 5명이라도 그들이 판매하는 카펫, 키링, 자석 따위를 구매할 것이다. 이게 모이고 모여서 전체 경제의 30%를 이룬다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열심히 내 관심을 끌고자 하는 심리가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마라케시 시골 부근은 내가 방문한 곳들 중 가장 비위생적이고 혼란했다. 지난 10년간 놀라운 경제 발전을 했고, 빈곤층의 비율이 6.4%로 줄었다는 보도 자료와 대비되는 모습에 의아했다.


마지막 날 묵은 리아드의 호스트는 굉장히 친절하신 분이었다. 새벽 네시에 공항으로 떠나는 우리를 위해 싼 값에 택시를 불러주고, 위험할 수 있다며 심지어 같이 차에 타고 공항까지 배웅해 줬다.

너무나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신기해서 어떻게 영어를 이렇게 잘하냐고 질문했더니, 자기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영어를 배운 거라고, 학교에서의 교육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는 사뭇 진지해진 말투로 모로코의 교육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부유층만이 학교에 갈 수 있다. 학교에 진학해서 파일럿, 선생님이 되겠다며 꿈을 키우던 아이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고 한다.


여기서 본 단서들을 바탕으로 이해한 모로코가 발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유로에 비해 가치가 너무 적은 디르함(모로코의 화폐 단위)의 바잉 파워로는 내수 시장이 형성될 수 없다.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너무나 유혹이 크다. 할리우드와 관광객으로부터 매년 30억 달러 넘게 굴러 들어오는데 교통, 통신 등 자국 인프라를 구축할 유인이 적다. 특히나 왕이 존재하고 정부가 부패한 모로코이기 때문에.

게다가 교육과 헬스케어 등 공적 영역이 민영화되며 빈곤층이 사회적 계단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봉쇄되었다. 파일럿,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어린이들은 택시 운전사나 기념품 가게 직원의 삶에 만족하게 된 것이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타국 의존도가 높아 미래가 불투명해진 모로코. 

체계적 불평등, 식민 지배 시기, 또는 사하라 사막 같은 관광지 셋 중 하나라도 부재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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