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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7탄

by 공구부치 Dec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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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의 시베리아 도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포트홀이 싱크홀 마냥 큰 것만 빼면 걱정했던 눈길은 아니었고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하얀 들판에 수두룩하게 자란 하얀 자작나무는 그림같았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 도로를 달리는 기분 가슴 벅찼다.


하지만 나의 생리현상은 그런 풍경을 달리는 것이 꿈이 아닌 실제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똥이 마려워 졌다.

그림같은 풍경을 보며 “우와!”를 하던 그때,

들판과 자작나무가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도로 위에서…


다행히 우리의 레디에는 생태화장실이 있었다. 이전에는 대변은 시도를 해보지 않아 마음에 큰 벽이 있었으나 다른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다.


“여보. 나 급해.“

“주유소까지 참을 수 없을까?”

“없어.(단호하게)”


나의 표정을 보고 사안의 시급함을 느꼈는지 짝꿍은 고개를 끄덕였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간 소변만 보던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았다.

우리 화장실은 생태화장실로 소변과 대변이 분리되는 시스템이라 대변은 생분해 봉다리에 떨어지고 소변은 호스를 통해 플라스틱 통에 담겨 나중에 비우면 된다.


처음 치고는 대범하게 잘 일을 치루고 대변봉다리를 잘 묶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원래는 땅을 파서 묻으려고 생분해봉투를 샀지만 한겨울 시베리아 땅은 삽도 안들어갔다.


“나중에 그 봉다리가 터지면.. 어떡할거야?”

“다음엔 두겹으로 싸서 버릴게”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는 걸까?”

“개똥도 쓰레기통에 버리고, 애기 귀저기도 쓰레기통에 버리잖아……“

“……. ”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도 더이상 설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똥쟁이.. 아주 예민한 대장을 가지고 있어 신호가 오면 5분안에 해결을 봐야 하는 민성대장증후군이고, 짝꿍은 변비였다.


나는 영원히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자 외로웠지만 쾌변의 상쾌함이 더욱 컷다.


(여행 중간쯤 배탈이 난 짝꿍은 결국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것 말이다.)


어쨌건 나는 다시 풍경을 보며 달릴 여유가 생겨 하바롭스크로 향했다.


우리는 5시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도시에서 잘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아 지도에서 무료 주자장을 찾아 도착해보니 아무르강가에 위치한 멀티스포츠센터였다.


차를 대충 세우고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 아무르강가를 둘러 보기위해 서둘러 차 밖으로 나갔다.

주위는 온통 눈밭이고, 아무르 강은 꽝꽝 얼어 그 위를 걷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린 가족에게 화상통화로 해지는 아무르강의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줬고, 마지막으로 친구의 부탁이던 아무르강의 물결이라는 러시아 민요를 BGM으로 하여 아무르강의 영상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해주었다.


한동안 우리는 석양의 아무르강에 잔뜩 취해 추위도 모르고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펼쳐진 풍경과 싸한 바람과 노래를 듣고 있자니 여행이라는 시청각의 한가운데 진입해있구나 싶어서, 아주 오랫동안 시뮬레이션했던 그 여행속으로 마침내 들어서는 느낌이다.


산책나온 시민들 속에 섞여 시베리아횡단의 두번째 저녁이 저물고 있었고, 한국에서 가져온 미니 밥솥이 맛있는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3월의 아무르강3월의 아무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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