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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중 견인차를 부르다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4탄

by 공구부치


2024년 3월 26일, 횡단 15일차. 400키로를 달려 옴스크 도착.




옴스크에서는 예카테린부르크로 가기 전에 쉼과 정비를 위한 알찬 계획이 서있었다. 외부 수도꼭지 밸브도 사고(바깥에서 바로 물을 틀 수 있다), 안전한 렌타 마트 앞에서 차박하고, 낮에는 주요 도심을 둘러보고 맛있는걸 사먹을 생각이었다. 날씨도 좋아서 맛있는 것들을 열심히 채려 먹으며 옴스크로 향했다.


햄을 넣은 카레와 애호박계란소시지볶음




앞날을 모르고 간만에 깔끔하고 넓은 트럭카페에서 조식 즐기는 중




“여기는 포트홀이 없군” 만족하며 미리 찾아둔 캠핑카 주차장으로 향했다. 러시아 횡단 중엔 파크포나잇(세계 캠퍼의 차박지 공유앱)을 전혀 보지 않았는데,(차박지가 곧 트럭카페기 때문에) 도시로 들어가며 여기도 있는지 슬쩍 열어본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엔 이르티시 강변에 수도, 전기, 와이파이까지 완벽한 캠핑카 주차장이 하룻밤 100루블이라고 적혀 있었다. 캠핑카를 위한 주차장이라니! 어떤지 한번 다녀와보자 싶어 네비를 찍고 그리로 향했다.


부유해보이고 한적한 동네로 들어가야 강가에 주차장이 있다고 나온다. 옴스크는 한결 푹해진 날씨로 녹아내리는 눈때문에 겨우내 켜켜이 쌓여 단단하게 얼어버린 눈 사이로 차 바퀴가 가는 길만 두줄로 깊에 파여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캠핑카 배가 긁힐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후진하자!” 하는 찰나 우리 차 바퀴는 도랑에 빠지고 차체가 단단한 얼음에 걸려서 한껏 기울어져 한쪽 바퀴는 완전히 들려서 헛돌고 있었다. 차량 하부에 있는 디퍼런셜(차동기어)이 얼음에 걸린 것이다.


이런 길은 절대 가지 말자


처음에는 둘이서 자구책을 써보다가(사람이 차안에 들어가 무게중심 맞추기, 무작정 밀기 등등)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나섰다. 우리가 가려던 주차장에 관리실이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다만 물건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니 근처에는 계신듯했다. 눈밭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마음이 급했다. 골목길 길막하고 기울어진 차에서 오도가도 못한채 오늘 밤을 보내게 될지도!



그 순간 차를 한대 발견했다. 고맙게도 한 분이 도와주러 와서 바퀴 밑에 나무판자도 넣어보고 노력했으나 해결은 안됐다. 그 분이 번역기로 “나는 안될것 같아”라고 하는 순간 나는 입으로 “스바시바(고마워요)”했지만 “제발 가지 말아요…!”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곧이어 그 분은 다른 아저씨를 데려왔다. 그분이 여기 관리자라며 우리에게 ”우리 주차장 오려했지?“라며 대번이 알아보는 제스추어를 취했다. 관리자가 왔다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와중에 아까 봤던 트럭이 짐을 내리고 다시 나가는 것을 보고 하나가 헬프미를 외치며 쫓아갔지만 놓쳤다. 트럭 정도면 우리 차를 끌어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트럭이 땡겨도 소용없을것 같긴 하다.



시간이 흐르며 길을 지나던 동네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도와주었다. 하지만 깊이 박혀버린 무거운 캠핑카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시도 중




견인차 도착 ㅎㅎ



결국 견인차를 부르게 되었다. 비용은 4천루블(약 6만2천원). 여행경비가 모자랄까 쫄아있던 나는 한국 절반 가격의 비용에 안심했다. 아저씨는 농담조로 “루블이야 달러가 아니야~“라고 했다. 견인차는 매우 신속히 도착했다.



자 나가보자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모인 끝에 차는 배를 얼음에 긁으며 무사히 빠져나왔다. 날 추워지는데 어딜 가냐며 여기 근처 호텔에 자고 가라고 연신 걱정하는 아저씨들과 빠이빠이하고 마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저씨들 덕분에 우리 외롭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허기를 채우려 끓여먹은 신라면 맛은 두고두고 기억할것 같다.


고마운 옴스크 사람들


고생끝 신라면



시베리아 횡단 여행에 긴장이 떨어져갈때쯤 겪은 오늘 일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생기도 생겼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어떻게든 해결된다.



우리는 다시 시베리아를 통해 한국으로 복귀할때 이 캠핑카 주차장에서 하루 자보자고 했다ㅋㅋ 아무튼 다시 일상을 챙기기 위해.. 집수리를 위해 몇가지를 구입, 외부수도밸브를 장착하고, 워크스루 통로의 누수 부분에 실리콘을 발랐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공구부치의 일상



옴스크는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조용한 줄만 알았던 마트 주차장은 새벽3시에 굉음을 내는 도로작업이 계속되어 눈꼽만 떼고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처음엔 바로 옆에서 헬기가 뜨는 줄 알았다. 피난길조차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이었다.



계획대로된게 하나도 없지만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멋진 관광지를 못 가도, 이 도시의 모습을 다 보지 못한채 지나쳐도, 이 도시에서 보낸 하루 덕분에 우리는 옴스크를 내내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길



그리고 몇가지 메모들.



+저녁에 들른 쇼핑몰에서 여권검사를 당했다. 테러 이후 당연한 반응같기도 하지만… 옴스크는 카자흐스탄과 인접해서 이슬람 사원도 눈에 띌만큼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이번의 비극이 그들에게 괜한 차별과 혐오가 가중되는 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렌타마트는 멤버십카드 가격이 일반가와 큰 차이가 난다. 고맙게도 계산대에서 직원들은 매번 손님이나 직원의 멤버십카드를 빌려 찍어준다. 고마운 부분이다. 결국 1일 1쇼핑으로 렌타에 빠져서 결국 투먼 쯤 갔을때 멤버십카드를 발급했다.(앱)



옴스크를 떠나 다음 도시, 투먼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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