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가

by 우지니

배우자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에너지와

체온이 같아야 한다.


어떤 의미일까?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여야 한다.

남자와 여자를 빚대어 개와 고양이에 비유하곤 한다. 개와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개는 좋을 때 꼬리를 쳐들고 흔들어 되는 반면 고양이는 꼬리를 내리고 차분해진다.

개는 경계태세에 돌입하면 꼬리를 내리는 반면 고양이는 꼬리를 바싹 세우곤 한다.

이런 개와 고양이가 어느 날 길에서 만났다.

개는 너무 반가워서 꼬리를 들고 흔들기 시작했고 고양이 입장에선 “어라~한번 해보자는 건가”라는 인식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고양이는 개가 마음에 안 들어 꼬리를 바짝 세우자 개는 좋아하는 줄 알고 몸을 비비러 더 다가서다 고양이 앞발에 뺨을 맞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처럼 이들의 언어가 다른 것이다.

남자와 여자처럼. 오죽하면 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보면 남자와 여자를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전혀 다른 개체로 서로의 소통방식과 이해범위가 다름을 말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말보다 행동에 집중하여야 한다. 나의 이런 생각은 어느 날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확신을 하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작은 행성에 살고 있는 꽃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외롭지만 까다로웠던 꽃은 이런 마음을 아는지 이것저것을 어린 왕자에게 거칠게 요구하면서 결국 둘의 관계는 무너졌고 무너진 이후에나 어린 왕자는 꽃도 자신을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


어린 왕자 中 - 대수롭지 않은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몹시 불행해졌다.

어느 날 그는 털어놓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했어. 꽃들의 말엔 절대로 귀를 기울이면 안 되는 법이야. 바라보고 향기를 맡기만 해야 해.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로 뒤덮었어. 그런데도 나는 즐길 줄 몰랐어. 그 발톱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실은 측은해했어야 옳았던 거야…”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그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만 했어”


실천하기에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온통 상대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오히려 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주는 영향력이 분명히 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오해와 불신을 주기도 한다. 사람은 아무리 많은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오해와 불신으로도 무너질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즉, 상대의 행동에 집중하자.

그녀의 발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에너지가 같아야 한다.

사람의 에너지가 서로 다르면 어느 한쪽은 매우 피로해지고 어느 한쪽은 매우 무료함을 느낀다.

이러한 관계는 장기적으로 진행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럼 사람의 에너지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그것은 에너지 충전 방법이다. 내가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그것을 충전하는 법이 동적이야 정적이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을 열심히 하고 조금 지쳤을 때 어떤 사람은 조용한 카페에서 책과 차 한잔으로 또는 집(근교 조용한 곳)에서 OTT나 멍 때림, 가벼운 산책 등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하거나 쇼핑, 캠핑, 동호회 등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럼 여기서 질문? 결혼은 에너지가 업된 상태인가, 다운된 상태인가? 엄밀히 얘기하면 다운된 상태이다.

즉,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것이든 아임 오케이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가 다른 사람이 만나면 불편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쉼법이 다르면 조금의 감정소비를 통해 각자의 쉼법을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자의 쉼법’에서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은 체온이 같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면 하루 종일 손을 잡고 다닌다. 어느 겨울 남녀가 이른 아침 데이트를 위해 만나게 된다. 그리고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면서 포옹을 잠시하고 이내 손을 잡는다. 손을 잡는 순간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쪽은 차고, 한쪽은 따뜻함을 느낀다. 그리고 건네는 말. “어~손이 차네.” 또는 “아~따뜻해” 그리고 그들은 계속 손을 놓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의 손에 온도가 같아짐을 느낀다. 서로에게 스며든 것이다.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차갑다고 이내 손을 뿌리치거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여 손을 잡지 않으면 그들은 본연의 그들의 체온처럼 멀어질 것이다.(ps : 싫으면 애초에 손도 잡지 않는다. 손을 잡는다는 건 “나 너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어”라는 행위언어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서로의 가는 삶의 지향점과 행복의 기준인 것이다.

서로의 가는 지향점과 행복의 기준이 같을 때 서로의 곁을 지키며 함께 할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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