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내가 호칭을 부른 상대에게 어떤 의미건 특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 사람은 너무나 많고 멀리서 보았을 때 우리는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 이름을 지어주고 그 특정한 호칭으로 불렀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특정될 수 있고, 우리 역시 이름을 불러 준 그 존재에게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다.
장르와 관계없이 어떤 게임을 하던 시작 할 때 이름을 입력하세요 라는 창이 표시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타인간의 구분이 필요하고 길드, 친구, 결혼 등 소셜기능을 하기 위해 특정인을 어떻게 명명할지가 반드시 필요한 온라인 게임이라면 모를까, 싱글 플레이 게임 중에도 사용자명을 입력하라는 창이 뜨는 경우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온라인게임에서 닉네임의 의미는 명확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고, 누군가를 특정시켜 거래, 관계맺기를 하는데에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고유의 이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분할 다른 대상이 필요하지 않은 패키지 게임에서는 왜 닉네임 지정을 요청할까? 싱글 플레이 게임 중 특히 이름 설정을 하라는 시스템 창이 자주 나오는 곳이 경영 시뮬레이션과 연애시뮬레이션 장르 아닐까 싶다.
먼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닉네임의 명명은 세계관 몰입에 필연적이다. 내가 설정한 이름, 이용자에 따라 본명 혹은 본인이 자주 사용하는 별명등을 공략대상인 캐릭터가 불러주는 것은 플레이어가 캐릭터에게 더욱 깊은 애착을 갖게 만들며, 모니터라는 제4의 벽을 넘어 마치 그 대상이 자신과 직접 교감하는 듯 한 느낌을 제공한다. 이는 연애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게임내 인물과 플레이어간의 관계와 감정을 건드리는 장르이기에,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공식 이름이 따로 있더라도 플레이어가 직접 불리고 싶은 호칭을 설정하도록 하는 시스템은 다른 어느 장르 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다.
경영시뮬레이션 역시 그 이유는 세계관의 몰입에 있다. 경영 시뮬레이션에서는 인물의 이름 보다 가게의 이름을 중요시 하는데, 그것은 게임의 주체가 인간 보다는 성장하는 주체인 가게에 있기 때문이다. 이때 몰입과 애정은 게임내 다른 인물들과 플레이어가 아닌, 플레이어와 경영 대상의 관계이다. 현실에서 반려동물의 이름을 정하는 것 처럼 자신이 키우고 있는 존재를 특정화하고 애착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앞서 말한 싱글플레이에서 닉네임의 역할과 비슷한 요소들이 있다.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다른 플레이어도 아닌 NPC가 게임 초기에 설정한 닉네임으로 플레이어를 부를 때가 있다. 게임은 카메라의 관점에서는 1인칭 혹은 3인칭(숄더뷰, 백뷰, 탑뷰 등)으로 진행되며, 서사 및 진행의 관점에서는 플레이어의 행동(컨트롤)이 캐릭터의 움직임으로 직접 지시된다는 점에서 1인칭에 가깝다. NPC가 플레이어를 여보게, 나 모험가 와 같은 비특정적 단어 대신, 설정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이 1인칭의 시점에서 게임 속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제공한다.
물론 온라인 게임들에서 NPC가 이름을 부르는 것이 특정 NPC와 플레이어의 유대관계를 높이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 성적 매력을 느끼라고 만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를 부르는 것은 남성일 수도 여성일 수도, 심지어는 인간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때 플레이어의 이름을 부는 것은 전적으로 세계관 그 자체의 몰입과 캐릭터에 대한 애착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패키지를 판매하면 끝인 싱글 플레이들과 달리 온라인 게임은 플레이 자체는 무료로 할 수 있으나 성장이나 꾸미기 기능 등을 위해 플레이어들이 부가적으로 구매하는 아이템이 게임사의 매출에 해당한다. 플레이어가 얼마나 세계관과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가, 또 그 캐릭터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는 곧 게임에 얼마나 돈을 쓸 것인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게임을 플레이 할 것인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에서 역시 플레이어에게 플레이어가 직접 지정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