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들에서 죽음을 다루는 여러 방식에 관하여
즈지스와프 벡신스키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컨셉아트로 출시 전 부터 주목받았던 scorn이라는 공포게임이 있다. 개인적으로 컨셉아트가 주는 기괴함이 마음에 들어 출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작품인데 공개 된 후 플레이 영상은 개인적으로 원했던 느낌은 아니어서 아쉬운 부분이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나의 생각일 뿐이며,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호러가 동양호러, 특히 대만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귀신이 나오는 종류의 공포인 탓인 것이크다.
지금부터 이야기 할 것은 코스믹 호러와 SF호러가 호러인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이 무섭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보다도, 무서움의 범주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공포와 다른면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단 공포란 무엇인가부터 이야기하자, 생물의 6대 감정 중 하나인 공포는 표정을 표현 할 수 있는 거의 대다수의 동물에게서 관찰 할 수 있을 정도로 근본적인 감정이다. 공포는 근원적으로 말하면 죽음과 관련된 감정이다. 얘를 들어 호러 장르가 주로 일어나는 공간은 간단하게 말해 시야가 제한되는 공간(어둠, 안개 속 등), 통상적으로 더럽다 라고 말하는, 오염되거나 질병이 옮을 가능성이 있는 공간(폐병원, 및 각종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배경 등),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르거나(숲, 광장 등), 퇴로가 확실치 않은 공간(좁은 통로 등), 즉 자연상태에서 우리가 죽음에 놓이기 쉬운 공간들이다.
호러의 스토리 역시 이와 연관지어 발생한다. 호러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을 생각 해 보자, 살인마는 더 말 할 것 없이 죽음과 직접 연결된 내용이고, 좀비 역시 질병, 죽음과 몹시 직접적으로 연결된 장르이다.
귀신의 경우에는 죽음과 무력함 사이에 감정이다. 귀신은 이미 죽은 존재로 그 자체 만으로 죽음을 상징할 뿐 아니라, 다른 인간을 죽음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존재이다. 다만 귀신이 앞선 두 키워드와 다른 점은 인간이 갖는 무력감에 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갈 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앞에서 내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죽음에게 노출 되면서 생기는 무력하다는 공포를 형상화한다. 이러한 무력감에 대한 공포는 주인공이 공격을 가 할 수 없는 장르인 생존호러 게임류에서도 나타난다.
앞서 말했던 이런 무력감과 공포의 장르는 동양에서 더 익숙했던 것이다. 쯔꾸르로 만들어진 일본 및 국산 공포게임들은 대체로 이런, 귀신에게 일방적으로 쫒기고, 주인공이 그나마 반격 할 수 있는 것은 영능력자의 도움을 받는 것(사실 더 나아가면 그 영능력자가 죽음으로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한 번 더 시사하는 경우가 많다.)뿐이라는 형태를 띈다. 반면 서양(여기서는 대체로 미국산 게임을 말한다) 호러는 공포의 대상을 척결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공격기가 없는 암네시아나 아웃라스트 같은 종류의 게임이 초반에 호불호를 탔었고 해당 게임들이 성공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생존호러 장르가 유명해진 것을 생각하면 문화권 별로 공포에 대한 감성이 다르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 수 있다.
앞선 이야기들은 직관적으로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몹시 시각적이고, 놀이공원 공포의 집만 가더라도 통로가 좁은데다 일방향적이고/언제 습격받을지 모르고/피와 곰팡이등 질병이 옮을 수 있는 것에 노출되어 있으며/해골과 같이 죽음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어렵잖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SF호러와 코즈믹 호러를 이해하려면 이보다 더 넓은 공포를 이해해야한다.
코즈믹호러란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것에 의한 공포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앞선 귀신 이야기와 비슷하겠지만, 코즈믹의 주요 키워드는 "거대한"에 있다. 코즈믹 호러에 등장하는, 아주 대표적으로 크툴루 시리즈를 보면 우주단위의 거대한 것들이다. 그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것은 그것들에게 깔려 죽을지 모른다 같은 단순 한 것 보다는, 자신의 무가치함 혹은 경외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죽음에 관한 감정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주변인이 죽게 됨으로서 다시 만날 수 없음에서 오는 박탈감과 슬픔,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죽은 후 영원히 혼자 남게 된다는 고독감이 외로움의 근원이다. 코즈믹 호러의 근간은 신 앞에 홀로 선 인간이다. 물론 대개의 작품들에서 서사를 진행하기 위해 다른 등장인물들을 등장 시키기도 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존재 앞에 인물들이 느끼는 것은 서로가 곁에 있음이 무의미 할 정도의 무력감과 심연 속에 혼자 있는 듯 한 고독이다.
코즈믹 호러가 접근하는 지점은 틀림없이 죽음과 관련된 본능이지만 생존과 직결되는 앞서 말해 온 일반적인 호러들에 비하면 고차원적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철학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코즈믹 호러는 사람에 따라 그리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무교인 사람에게 코즈믹호러는 그 공포감이 덜 할 수 있는데 종교의 근간이, 죽은 후 영원히 혼자가 된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에게 초월자적 존재가 그 곁을 함께 해 준다. 혹은 죽은 후를 구원해 준다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죽은 이후 홀로됨에 대한 공포가 종교에 깊이 빠져든 인간에 비해 대체로 약한 무교인에게 그러한 공포와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은 그리 와닿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코즈믹 호러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이 나는 개인적으로 SF 호러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SF호러는 대체로 멸망이후의 세계 혹은 기계문명으로 인간성이 훼손된 경우들을 주로 다룬다. <매트릭스>(1999)에서 주인공이 막 눈을 떴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 캡슐 타워를 원경으로 바라보는 것과 게임, <SOMA>(2015)가 SF호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SF호러에서는 죽음에 대해 기존의 것과 다른 시선을 던진다. SF세계관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신체적 죽음 뿐 아니라 인간성의 훼손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근대적인 휴머노이드에 대해 공상할 수 있게 된 이래로 인간성과 기계문명은 항상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는 할란 엘리슨의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한다>(1968)애서도 다루어진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면서 게임 SOMA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육체의 생존을 말하는 것인가, 영혼의 생존을 말하는 것인가. 반대로, 스스로가 인간이라 생각하는 AI는 살아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까지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난제이다.
이러한 죽음에 관한 논의들은 흥미롭고 철학적이지만, 아쉽게도 직관적인 죽음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물론 그렇기에 SF호러의 경우 일반적으로 살해 당하거나 사고사로 죽는 전통적인 공포물들에 비해 현실적이고 끔찍한 죽음들의 상황을 상정하려 노력하지만, 그 죽음 자체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육체적 죽임과 거리가 있는 탓에 가까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SF 호러가 흥미로운 것으로 느껴지지만 사람에 따라 무서운 것으로 느껴질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Scorn>(2022)으로 다시 돌아오자, scorn과 에일리언 시리즈는 비슷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곳이 코즈믹과 SF호러의 사이 공간이라 생각된다. 단순히 SF적 배경 특성을 갖는 문제 보다도,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외계생물의 등장은 그 규모가 크다면 코즈믹에,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제한된 방식으로만 퇴치할 수 있다면 귀신과 관련된 호러와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좀비물이 갖는 근원적인 공포, 코즈믹호러나 귀신에 관한 공포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더러움, 오염됨에 의한 불안 역시도 제시한다. 각종 외계인을 배경으로한 스릴러, 호러 장르들에서 끈적한 점액질이나 외계인의 내장등이 등장하는 것, 외계에서 온 병 등이 다뤄지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Scorn은 낯설고 거대한 외계 행성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주인공이 기생생물이라는 점에서 SF 호러가 갖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몸이 없는 형체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다른 기체의 도움으로 숨쉬는 이는 살아 있는 것인가, 한 몸에 사는 두 인격은 각자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는 복합적이지만, 아쉽게도 앞서 여러번 말했던 직관적 호러와는 거리가 있다. Scorn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던 징그러운, 죽음이나 질병을 연상케하는 일러스트가 이것이 호러게임임을 깨우치게 만든다. 이는 장시간 플레이를 한 이들에게는 눈의 피로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였다. 그러나 이것 조차 없었다면 Scorn의 위상은 호러게임에서 실상 심해 생존게임 수준 취급을 받는 <subnautica>(2018)(사실 서브노티카도 심해로 들어가면 코즈믹 호러풍의 거대 생물들이 나타난다)나 <the Forest>(2018) 수준으로 떨어졌을지 모를일이다.
이와 같이 코즈믹 호러와 SF호러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호러 보다는 철학적 내용을 건드린다. 작품의 수준과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철학적 메시지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다지 직관적이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게 왜? 라고 생각할만한 영역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호러가 가장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인데 철학이 개입하는 것이 공포감을 주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르들을 호러 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들이 호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이 무섭게 하려는 연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안감을 주는 배경음악을 사용하고, 징그러운 시각 효과들을 준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호러 보다는, 긴장과 불안을 준다는 데에서 스릴러 혹은 아직 명명되지 않은 제3의 장르에 더 가깝지 않은가 라고 종종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