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특정 집단을 비판하는 컨텐츠가 늘어나는가
2년여 전 부터 유튜브 등지에서 카푸어와 관련된 컨텐츠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실제 그들의 행보가 부정적인 경우도 많고, 파국을 향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컨텐츠들 중에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시리즈의 조회수를 따지면 천만뷰에 가까운 경우들도 있다. 이런 범국민적 인기는 실제 그러한 류의 사람들을 겪거나 보지 않았음에도 그들을 혐오하는 일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혐오의 대상은 카푸어에만 단정되지 않는다, 이전에 범국민적으로 혐오 되었던 존재들로는 된장녀가 있었고, 오타쿠도 있었고, 그 외에도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나 성별,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특정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공공연한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여기서 주목할만한점은 혐오 하는 대상이 욕하는 이들과 큰 차이를 갖는다는데에 있다. 카푸어와 관련된 영상을 주로 보거나 댓글을 쓰는 사람들은 '나는 저렇게 살지 않는데 저들은 내가 보기에 부정적이다' 라는 것을 사고의 기반을 갖고 있다. 이것을 넓게 보자면 피해자를 욕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근래에는 잘 사용되지 않지만 불과 10년 전 까지만 해도 성범죄를 겪은 여성에게 옷차림이 야해서, 밤늦게 다녀서와 같은 비난을 한 경우를 봐 왔을 것이다. 이러한 말들의 기저에는 나는 <밤 늦게 다니지 않고>, <옷을 야하게 입지 않고>, <여자가 아니므로> 그와 같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 혹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다. 피해자와 자신들 사이에 차이점을 발견함으로서 자신은 그들과 다르기에 안전하다라고 믿고 싶다는 것이다. 이를 귀인 편향 혹은 귀인 오류라고 한다.
카푸어나 된장녀등과 같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역시 이와 비슷하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과소비를 하지 않으니, 적은 돈이지만 잘 아끼고 있으니, 그들과는 다른 안전한 삶을 영위 할 것이다. 가 혐오의 기저에 깔려 있다.
여기에 살을 붙이는 몇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합리성이다. 자신 혹은 사회가 판단했을 때 해당 집단이 욕을 먹어 마땅하다 라는 결론에 다다른다면 대중들은 그들에게 비난을 가하는데 거리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누가 보아도 나쁜 사람이며, 그들을 욕하고 반면교사 삼는 나는 사회적 규범을 잘 지키는, 혹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인자로 보일 수도 있다. 혐오 대상의 비도덕성은 자신의 양심적 가책은 없애면서 자존감 까지 충족할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요인이 된다.
두 번째는 유튜브의 필터버블 효과와 커뮤니티의 에코챔버 효과이다. 필터버블 효과란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이 서비스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필터링 된 정보들만 추천받게 되어 마치 버블 속에 갇혀 있듯 필터링 된 정보들에 의해 확증편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에코챔버 효과는 이와 유사하게, 본인이 자신과 유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고 글들만 읽으면서 해당 현상이 실제 현실에서 보는 것 보다 크고 확증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효과이다.
코로나 이후 유튜브와 스트리밍 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스마트폰과 각종 커뮤니티와 sns의 발달로 이러한 문제들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합리적 혐오와 온라인에 의한 확증편향 효과를 잘 보여주었던 사건이 2021년 의대생 한강 익사사건일 것이다. 특정 유튜버들은 해당 학생이 함께 있었던 친구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의혹을 제시해 왔고, 그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유튜브는 해당 유튜버의 다른 영상들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영상들을 추천해 주었다. 그 결과 해당 학생의 죽음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의 블로그, 혹은 그들이 새로이 개설한 진실을 요구한다는 카페등에 결집하면서 에코챔버 효과를 발생시켰다.
살인의혹을 믿는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 하지않는 입장에서 그들의 집단 행동은 망상증으로 보였지만, 반복되는 정보에 노출되고 카더라성의 의견들 마저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진실처럼 느끼게 된 이들에게, 사망자의 친구는 법의 처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로 낙인 찍혔다. 그렇기에 그들은 경찰과 시사 프로그램들이 매수되었고, 해당 친구는 악플을 받아 타당한 인물로 생각하고 활동을 지속해 왔던 것이다. 이 사건이 독특한 지점은 이전까지 혐오의 표출과 인터넷에서의 집단행동이 대체로 10대나 20대들 위주로 진행되었던 것에 반해 이번 사건은 중장년층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특히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유튜브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그것에 대한 신뢰가 공영 방송에 대한 신뢰를 넘어섰음을 시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혐오가 그 자체로 나쁜것 만은 아니다. 그것을 표출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대화하기 보다, 선을 긋고 혐오해 버리는 것이 개인의 정신적 시간적 에너지를 상당히 절약 할 수 있는 판단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나 바다라는 말도 이제는 아득한 옛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인터넷에서는 수 많은 일들이 생기고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떠다닌다. 하루에 유튜브에 업로드 되는 영상의 길이가 60년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모든 정보를 이해하고 양측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은 힘들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에 가깝기에, 이들의 취사적 정보 습득과 선택적 혐오와 수용은 어찌보면 진화적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혐오 표출은 그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안전한 일탈 행위가 될 수 있다. 혐오에 동조하는 이들은 혐오의 대상에 의해 부정적 감정을 겪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기저에는 현실적 문제로 쌓인 피로와 분노가 누적되어 있다. 부정적 감각이 쌓여 있던 이들이 보다 만만해 보이며,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한 것으로 느껴지는 대상에게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표출함으로서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의 효과 역시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혐오에 대한 온라인상에서의 표현은 동질감과 소속감을 일으킨다.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느끼는 소속감, 더 나아가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장기적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유대감, 수 많은 추천 등을 받으며 느끼는 인정 받았다는 느낌등은 윗문단에서 언급한 스트레스 해소 뿐 아니라 안정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커뮤니티에 소속되고 에코 챔버 효과에 빠져 드는 것은 그들이 좋은 사람이며 적절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확증 편향을 일으켜, 스스로를 더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그들 집단 밖에 있는 이가 보기에 적절한 판단을 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말니다.